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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는 좋은 소식 하나와 좋지 않은 소식 하나가 있다. 좋은 소식부터 먼저 전해드리자면 2017년에는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이 2018년에는 무려 7530원으로 16.4%나 올랐다는 것이고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드리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경제는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겠다. 이미 옆동네에서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가 해고되었다는 이야기가, 앞동네에서는 대학교 청소 노동자가 해고되고 학생들이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뒷동네에서는 아르바이트 구하기 힘들다는 파트타임 노동자의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고 있는 상태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충남도 최저임금 인상이 외식비 상승에 영향 미친다'(2018.01.22.뉴시스)는 기사는 소비자 물가 상승 요인 중 임금 요인에 방점을 찍고 있고 '캐나다도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로 몸살'(2018.01.21.중앙일보)이란 기사는 해외의 사례를 빌려 캐나다 또한 임금이 상승한 뒤 물가가 상승했다고 전한다. 이 뿐인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학 근로장학생 제도 운영 비상'(2018.01.21.중도일보)이라는 기사는 최저임금의 여파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소비자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고작'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사단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르게 인상한 최저임금 때문에 일어났다고.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허리를 휘게 하는 것은 작년보다 200% 오른 가게 임대료와 보증금, 본사와의 불공정한 계약에 따른 높은 가맹료, 내려갈 일 없이 찔끔찔끔 오르는 카드 수수료같은 것이 아니다.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망하게 하는 것은 고작 1,060원 오른 최저임금일 뿐이다.

물가를 결정하는 것은 인건비 뿐만이 아니라 원료비, 유통비, 유지비 등 총체적인 값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겠지만 이마저도 중요하지 않다. 소비자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고작 1060원 오른 최저임금일 뿐이다. 돈이 없다는 대학 곳간에 오고갈 데 없이 쌓여있는 8조 원의 사립대학 적립금은 대체 뭘까. 어찌됐건 대학에 청소 노동자 고용할 돈 한 푼 없는 이유는 그저 1060원 오른 최저임금일 뿐이다. 이렇게 7530원은 한국 경제를 망가뜨릴 괴물이 되어가는 중이다.

한 시간에 1060원, 하루 중 8시간은 8480원, 한 달 중 23일이라면 19만5040원 오른 임금 때문에 사업장 수천 개가 망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분명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문제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꼬박 최저임금을 맞춰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가 차도 사고 집도 사는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가게의 수익은 어디로 사라지기에 사장님은 물론이거니와 노동자까지 망한다는 것일까.

놀라운 사실은 7530원이란 괴물이 시장을 좀먹는 와중에도 한국은 꾸준히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을 제외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경제성장률 마이너스를 찍고 도태된 적이 없다. 나라는 꾸준히 부유해지는데 왜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가난해지고 있는가. 경제 성장의 효과를 톡톡히 입고 자수성가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꾸준히 성장하는 나라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가난하다. 아무리 일을 해도 소득이 채워지지 않는 '워킹 푸어(Working Poor)', 소득을 위해 삶의 모든 시간을 노동에 쏟아 부어야만 하는 '타임 푸어(Time Poor)'가 그러했다. 높은 주택매매가에 빚을 내고 대출 이자에 쫓겨 사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 높은 보증금에 빚을 내고 대출 이자에 쫓겨 사는 '렌트 푸어(Rent Poor)', 아이를 키우느라 빚을 내고 대출 이자에 쫓겨 사는 '베이비 푸어(Baby Poor)'까지. 소시민을 지칭하는 언어는 언제나 가난이란 꼬리표를 달고 만들어진다.

부유한 나라 속에서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가난한 시민들이라니. 모순되어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뱅이는 더욱 가난뱅이가 되는 일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소득불평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적은 소득과 그에 비해 많은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은 매번 대출로 적자를 메우며 살아간다. 그렇게 +1도 0도 아닌 –1을 가리킨 삶의 방향을 역으로 회전시키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소득이 늘어나거나 둘째, 지출이 줄어들거나.

그 첫째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공사가 바로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규직 아래 비정규직, 비정규직 아래 파견직, 파견직 아래 더 많은 저임금 노동이 있다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의 값이 먼저 상승해야 한다. 그래야 연쇄 작용을 일으켜 전체 노동의 값이 상승할 수 있다. 이 값은 –1의 삶을 살아야 하는 소시민들이 0의 삶으로 나아가 +1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의 토대가 마련된다. 이것이 소득불평등을 바로 잡을 첫 번째 방법이다.

이제 돈이 필요하면 시간을 버려야하고 시간이 필요하면 돈을 포기해야 한다는 명제는 참이 되었다. 방송인 김생민이 입 마르도록 이야기하는 '노동 이즈 베리 임폴턴트(Work is very important)'가 우리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서, '돈은 안 쓰는 것이다'가 지출을 줄이기 위한 질서가 되었다.

이 구식이다 못해 짠내 나는 가르침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믿어야만 하는 유일한 경전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만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신조어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돈을 벌기 위한 일과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시간의 균형 즉 돈과 시간의 균형을 외쳐야만 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처사 또한 결국, 또 다시, 최저임금 인상이다.

임금은 최소한 우리의 소득을 보전함과 동시에 시간을 자유로이 누릴 수 있을 때까지 올라야 한다. 최저임금이 절대‧상대적으로 낮은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규칙은 거침없이 무너뜨리고 새 규칙을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노동을 할 동기이자 이유가 되고 지속가능한 삶의 기본이 된다. 최저임금은 이렇게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매번 상기시켜줄 뿐이다.

우리의 삶은 무조건 노동으로만 또는 소비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이마에 찍히는 월급 명세서나 우리의 손에 잡힌 물건의 가격표에 적힌 숫자로만 채워지지도 않는다. 숫자 바깥에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고 기억으로 새겨지는 삶이 있다. 가장 최소한의 물질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라도, 가장 최소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최저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최저임금'이 필요하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불평등에 맞서 경제 질서의 원칙을 재정립하기 위한 최선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의 일상을 지키길 원한다면 주저 없이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맞이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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