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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실생활과 밀접한 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디까지나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에 반기를 들고 실용적인 독서를 지향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책이 바로 요리책이다.

요리책이야말로 실용적인 독서를 대표한다. 책을 읽고 나서 뭔가를 얻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 요리책이 최고다. 의외로 꼭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닌 재미로 보기에도 요리책은 훌륭한 선택이다. 요리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음식과 요리>

<음식과 요리> :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음식과 요리> :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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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이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1260쪽짜리 <음식과 요리>가 내 책상 위에 올려졌을 때 '정신승리 거리'를 찾는 것조차 만만찮겠다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책장을 넘기는 것도 운동인데, <음식과 요리>를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은 100kg짜리 역기를 드는 것과 진배없어서 책상에 모신 채 힘겹게 구경했다.

어서 이 괴물을 내 책장의 한가운데에 모셔두고 나의 서재 방문객들의 찬사를 받고 싶다. 옆에서 보면 영락없이 고시공부를 하는 자태로 '나, 이 책을 읽었소'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 나섰다. 정가가 무려 8만8천 원인 명저답게 금방 나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누구도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하고 공생적인 파트너십의 결과물임을 쉽게 망각할 수 없었다. 또 누구도 돼지와 소가 죽은 덕분에 우리가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낯익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것을 지켜보았고, 정기적으로 마구간을 들었고, 자신의 일상 식사를 위해 그 동물들이 목숨을 읽게 될 도살장을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 세월이 흘러 이제 고기를 먹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들이 씹고 있는 그 살의 주인이 살아 있는 생명체 일 때의 모습을 본 사람은 매우 드물다.

자신들이 그 동물들을 실제로 죽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매우 드물다. 포장의 세계에서 먹는 행위가 죽이는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도덕적 의미를 지닌 것임을 떠올리지 않기란 아주 쉽다. (....) 고기란 이제 마켓에서 산구입한 깨끗이 포장된 꾸러미일 뿐이다. 자연은 그것과 별 관계가 없다." - 월리엄 크로넌 <음식과 요리> 201쪽

내가 시골에서 자랄 때 닭과 소는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 어머니는 농사일하다가 끼니때가 되어서 집에 돌아오시면 '말 못 하는 짐승이라 배고파도 말도 못 한다'며 소여물을 먼저 챙기고서야 식사를 하셨다.

지금도 우리 집에서 살던 소들의 '얼굴'이 생생하다. 송아지가 팔려나가면 어미 소는 여물을 내팽개치고 며칠간 목이 터지라 울었다. 소와 함께 살았지만, 실수로라도 소들은 내 발을 밟은 적이 없고 꼬리로 내 뺨을 때린 적이 없다.

겁이 많고 도망 다니기 바빴던 암탉들은 병아리를 거느리면 그 어떤 맹수보다 무서웠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희생되었다. 송아지는 팔려나갔고 닭은 제사상에 올려졌다. 그들과의 이별은 사람이 늙어 죽는 것과 다름없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닭고기를 맛나게 먹었다. 서기 2000년생인 내 딸아이도 내가 '닭고기'라고 불렀던 '치킨'을 좋아한다.

닭고기라는 말에는 '닭의 희생과 미안한 감정'이 스며있지만 '치킨'이란 말에는 닭이라는 생명체는 배제되어 있다. 치킨은 콜라와 과자처럼 '공산품'이 되었고 닭이라는 모성애가 강한 생명체와는 별개로, 그저 먹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고기란 이제 마켓에서 구입한 깨끗이 포장된 꾸러미일 뿐이다"라는 '월리엄 크로넌'의 한탄이 19세기의 것임을 아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무자비한 사육환경'에 고통 받는 소와 돼지 그리고 닭을 연민하여 고기를 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좀 더 인간적인 사육환경을 의무화한다면 '치맥'은 어쩌면 상위 1% 귀족들만의 음식이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고기에 환장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사육환경이 잔인하게 된 것은 인구의 증가로 인한 대량소비에 기인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채링크로스 84번지> 개정판이 나와서 얼른 샀고 다시 읽었다.

무명작가와 헌책방 주인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가 아끼는 책은 책 속의 주인공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같은 책을 두 권 가지고 있는 사치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뉴욕의 가난한 작가와 궁핍했던 영국의 헌책방 직원의 인연을 이어준 것은 '헌책'과 '고기'다.
"친애하는 한프 양. 달걀과 혓바닥 고기 통조림 두 상자가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을 아시면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모두 당신의 매우 자상한 마음씨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 <채링크로스 84번지>62쪽

대량소비를 위한 잔혹함과 '좀 더 인간적인 사육환경'의 간격은 줄어들 수는 없는 것인가?

<Foodran's 365 저염식 다이어트 레시피>

<365 저염식 다이어트 레시피> 소금 설탕 없이 만드는 맛있는 건강 밥상, Foodran's
 <365 저염식 다이어트 레시피> 소금 설탕 없이 만드는 맛있는 건강 밥상, Foodran's
ⓒ 42미디어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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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소금과 설탕을 과도하게 많이 사용하는 것이 불만인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집에서 먹는 밑반찬을 간단하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의 큰 장점은 삼계탕이나 고등어구이처럼 소금이 많이 쓰여서 맛은 좋지만, 건강에는 해로울 수 있는 음식을 저나트륨 조리법을 사용해서 열량을 대폭 줄이는 요리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집안 대대로 짜게 먹는 습관이 몸에 밴 나로서는 아내가 타박을 해도 틈만 나면 아내 눈을 속여 가면서까지 짠 음식을 즐긴다. 오래된 식습관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짜게 드신다고 어머니께서는 일부러 싱겁게 요리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보란 듯이 어쨌든 짠 음식을 찾았더랬다. 싱겁게 요리를 하지 않으면서도 짜게 먹는 사람이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이란 얼마나 가정에 평화를 가져오는가 말이다.

이 책은 저염식으로 만든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는 저염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요리법을 구성했다. 요리 재료도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것을 주로 사용했다. 이 책이 요리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이유다.

<요리 초보자도 맛있게 만드는 일본 가정식 260>

<요리 초보자도 맛있게 만드는 일본 가정식 260>
 <요리 초보자도 맛있게 만드는 일본 가정식 260>
ⓒ 시그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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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음식에 대해서 보수적인 사람도 드물다. 이십 년 전에 태국 여행을 갔을 때는 한국에서 미리 사 간 김치를 끼니때 마다 먹었다. 퓨전 요리가 자랑인 싱가포르에 갔을 때도 기어코 한국 음식점을 찾아서 된장찌개를 먹었다. 이토록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해서 거부감이 강한 내가 유독 아무 거리낌 없이 맛있게 먹는 것이 일본 음식이다.

물론 일본 음식이 워낙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또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라서 요리도 우리와 괴리감이 더 적다. <요리 초보자도 맛있게 만드는 일본 가정식 260>은 가정에서 요리 초보자도 쉽게 일본 집밥을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일본 요리를 할 때 기본적으로 꼭 알아야 할 사항 즉 계량법, 육수를 내는 방법, 재료를 밑손질 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일본 사람들이 집에서 먹는 가정식이라 재료도 구하기 쉽고 조리법도 간단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서 생활했거나 여행을 한 사람이 일본에서 먹었던 요리가 갑자기 먹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치면 웬만한 요리는 다 나와 있다고 봐야 한다. 무려 260가지의 레시피를 자랑한다.

<나 혼자 먹는다>

<나 혼자 먹는다> : 이것이 진짜 혼밥 혼술
 <나 혼자 먹는다> : 이것이 진짜 혼밥 혼술
ⓒ 그리고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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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이다 보니 종종 혼자 밥을 먹는데 의외로 장점이 많다. 우선 무엇을 먹을까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음식점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메뉴를 정할 때 남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이 음식값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싼 메뉴를 선택하는 때도 있다.

더치페이가 편안하지 않은 세대이다 보니 음식을 다 먹고 나서도 눈치를 봐야 한다. 멋지게 벌떡 일어서서 음식 값을 계산해야 할지 아니면 대충 딴청을 보다가 다른 사람이 음식 값을 내도록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혼자 밥 먹기를 자주 하다 보면 혼자 밥 먹기를 요리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사 먹는 음식은 금방 질리니까 말이다. <나 혼자 먹는다>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준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이른바 자취생 요리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름대로 짜임새가 있어서 본격적으로 요리법을 알려주기 전에 '혼밥족을 위한 장보기 리스트'라는 꼭지가 있다. 기본기가 탄탄한 책이다.

아무래도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가정과 혼자 사는 사람은 장보기를 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1장이 밥 요리, 2장은 면 요리, 3장은 국물 요리, 4장은 별미요리를 다룬다. 목차만 봐도 자취생 즉 혼밥족을 뼛속까지 잘 알고 이 책을 썼다는 확신이 든다. 음식 재료도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취생이나 혼밥족을 사정을 고려해서 아무리 궁핍한 살림이라도 구석구석을 뒤지다 보면 나오는 평범한 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요리법을 알려준다. 요리를 자주 하지 않는 혼밥족들은 막상 마트에 가도 뭘 사야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혼밥족이 요리할 때 꼭 필요한 것들만 알려준다. 참으로 실용적이면서도 유쾌하다.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시리즈>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시리즈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시리즈
ⓒ 서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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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54>,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55> 이렇게 3권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 집밥 열풍을 일으킨 백종원이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에 나왔던 요리법을 담은 책이다.

이 요리책은 엄마보다는 아빠를 위한 요리책이다. 일반인들이 따라 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말을 사용해서 요리를 처음 해보는 아빠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더구나 초보자도 쉽게 따라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양념계량을 할 때 일반인들이 정확히 잘 모르는 계량컵, 계량스푼 대신에 집에서 흔히 쓰는 밥숟가락, 종이컵, 차숟가락 등을 사용한다.

이 책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짜장면, 짬뽕, 함박스테이크 등과 같이 아무래도 배달을 시키거나 식당에 직접 가서 먹어야 할 것 같은 음식을 집에서 쉽게 요리가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느긋하게 요리를 할 시간이 없어서 패스트푸드나 배달음식을 자주 먹는 직장인들이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훌륭한 집밥을 먹게 하는 간단 요리법은 다른 요리책에서 찾기 힘든 장점이다. 하라는 대로 하면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하는 요리책이다.


음식과 요리 -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해럴드 맥기 지음, 이희건 옮김, 이데아(2017)


태그:#요리,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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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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