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카우트>(2007)의 한 장면. 세영(엄지원 분)과 호창(임창정 분)

영화 <스카우트>(2007)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흥행한 영화가 모두 좋은 영화가 아니듯 좋은 영화 역시 매번 흥행하는 건 아니다. 2018년 기준 스무 편의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나왔지만 여전히 한국 상업 영화의 하향평준화는 최근까지 영화계의 화두였다. 

그럴싸하게 기획되고 포장된 영화들 틈에서 나름 의미 있는 성적을 낸 작품들, 장르는 저마다 달랐지만 거기엔 공통적으로 한국사회의 특징을 바라보고 통찰력 있게 녹였다는 특징이 있었다. 치열한 취재와 탄탄한 구성력을 기반으로 한 사실적 다큐멘터리도 의미 있지만 현실과 역사적 특징을 잘 반영한 상업영화는 보다 많은 관객에게 나름의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만큼 감독과 제작사의 고민이 더 필요한 지점이다. 

아래 소개할 영화들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적절하게 녹이며 상업적 성공과 관객들의 공감을 함께 얻은 작품들이다. 그리고 2018년, 또 어떤 영화가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도 덧붙였다.

김현석 감독의 뚝심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분노와 슬픔이 담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비튼, 발랄하고 유쾌한 영화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분노와 슬픔이 담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비튼, 발랄하고 유쾌한 영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 (주)리틀빅픽처스


자타공인 생활형 코미디와 드라마에 강한 김현석 감독은 사회적 비극, 역사적 비극을 상업영화에 훌륭하게 녹인 좋은 사례를 만들어냈다. 첫 시작은 < YMCA야구단>(2002)이었다. 겉으로만 훑어보면 조선 최초의 야구단을 다룬 스포츠 영화 같지만, 경술국치라는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에 끌고 들어와 그 안에서 웃고 우는 평범한 사람들을 조명했다.

선비 출신 야구선수 이호창(송강호)은 의병활동을 위해 집을 떠난 형과 서당을 운영하던 아버지에 비할 때 보잘것없는 존재로 치부되곤 했다. 그와 일본 유학생 출신 오대현(김주혁) 등이 의기투합 해 만든 YMCA 야구단은 을사조약의 치욕 아래 자신들의 울분을 스포츠로 승화시킨다.

영화는 마냥 승부에 집중하지 않는다. 나라를 뺏기고 삶의 터전을 잃은 민초들의 사연을 묘사하며 '패할 수밖에 없었던' 하지만 그 자체로 위대했던 도전을 그렸다. 영화는 당시 160만 관객을 모으며 큰 흥행은 아니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다.

김현석 감독이 그 다음 주목한 건 다름 아닌 광주항쟁이었다. 영화 <스카우트>가 바로 그 광주항쟁을 기묘하게 녹인 사례가 된 것. 역시 야구 이야기였다. 대학 야구부 직원 호창(임창정)은 당시 라이징 스타였던 광주일고 3학년 선동열(이건주)을 스카우트 해오라는 미션을 받고 광주로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하기로 한 날 대규모 시위에 휩쓸리며 경찰에 붙잡힌다. 영화 말미엔 1980년 5월 18일 그때의 이미지들이 등장하며 관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다. 유쾌함 속에 녹인 시대적 비극이었다.

이 전후로 <화려한 휴가> <꽃잎> <박하사탕> 등 광주항쟁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작품이 있었으나 모두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소소한 휴먼드라마이면서 동시에 관련자들의 상처를 동시에 어루만진 상업영화로는 <스카우트>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최근작 중 <아이 캔 스피크>도 빼놓을 수 없다. 별난 할머니 옥분(나문희)의 이야기로 시작하던 영화는 중후반부를 넘으며 숨겨진 사연을 공개한다. 동네의 온갖 작은 불법들을 호통치던 옥분 할머니가 과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고, 숨겨왔던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일본의 사과를 당당히 요구하게 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겼다. 소소한 코미디와 이 할머니의 각성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영화 역시 33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죽여주는 여자>

 <죽여주는 여자> 한 장면.

<죽여주는 여자> 한 장면.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2016년 개봉한 <죽여주는 여자>는 '박카스 할머니', 다름 아닌 종로 일대에서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한 할머니를 조명한 작품이다. 소재만 놓고 보면 굉장히 우울하고 또 진지하게 다가갈 법한데 이재용 감독은 이를 드라마로 풀었다. 성병 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렀다가 자신의 고객 중 한 명이었던 재우(전무송)를 만나게 된 소영(윤여정)은 자신을 죽여달라는 재우를 두고 갈등에 빠진다.

영화는 정말로 그 부탁을 실행에 옮긴다는 의미와 뭇 노인들을 성적으로 만족시킨다는 의미의 '죽여주는'이라는 단어를 통해 관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 영화의 톤은 전반적으로 담백하다. 여기에 더해 소영의 집주인으로 등장하는 티나(안아주), 같은 세입자인 도훈(윤계상)은 각각 트렌스젠더와 신체가 불편한 가난한 작가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느슨한 연대 또한 이 영화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게 하는 주요 요소였다.

<굿바이 싱글>

 영화 <굿바이 싱글>의 한 장면. 국민 진상 독거 스타 고주연(김혜수)는 소속사 식구들을 모아 놓고 자기의 임신 계획을 발표한다.

영화 <굿바이 싱글>의 한 장면. 국민 진상 독거 스타 고주연(김혜수)는 소속사 식구들을 모아 놓고 자기의 임신 계획을 발표한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배우 김혜수가 오랜만에 코미디 연기에 도전한 영화 <굿바이 싱글>은 미혼모가 중심에 선 영화다. 사회적 보호대상이지만 자신의 과거와 행동을 부끄러워하기 마련인 여성의 위축을 오히려 관객 앞에 웃음과 드라마로 승화시킨 사례다.

잘 나가던 연예인 주연(김혜수)이 자신의 인기 유지와 명예를 위해 남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여중생 단지(김현수)를 품고 이해하는 흐름으로 바뀐다.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진중한 물음을 던지며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영화 역시 2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염력> 

 영화 <염력> 의 한 장면.

영화 <염력> 의 한 장면. ⓒ NEW


국내 상업영화에선 없다시피 했던 초능력자, 그것도 히어로물로 알려진 영화 <염력>이 관객과 만남을 준비 중이다. 이미 언론 시사회에서 관련 정보가 나왔듯 이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 물이 아니다. 평범한 남자이자 가장 석헌(류승룡)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아내와 딸 루미(심은경)를 버리고 야반도주 한 사람이며, 루미는 엄마를 잃고 상가단지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이다.
 영화 <염력>의 한 장면.

영화 <염력>의 한 장면. ⓒ NEW


영화는 재개발 광풍에 몰린 세입자들을 조명하면서 자본이 이들을 진압하는 모습을 곳곳에 그려냈다. 충분히 2009년 용산참사를 떠올릴 수 있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 역시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언급했다.

그간 용산참사를 다룬 여러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두 개의 문> 그리고 그 후속작인 <공동정범>이 곧 개봉하는데 그 참사의 폐부로 들어간 다큐멘터리와 함께 <염력>을 비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상업영화에서 우리 사회 비극을 다루며 동시에 그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가간 노력이 <염력>에 엿보인다.

과연 <염력>이 앞서 언급한 영화들처럼 관객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이와 별개로 민감하고 중요한 사회적 아픔을 상업영화로 다양하게 풀어가는 시도는 충분히 응원 받아 마땅한 일이다.

염력 굿바이 싱글 죽여주는 여자 아이 캔 스피크 류승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