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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2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을 했다. 청와대를 따라했지만, 내용과 현장 분위기는 180도 달랐다.
 지난 1월 22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을 했다. 청와대를 따라했지만, 내용과 현장 분위기는 180도 달랐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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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6일 오전 10시 37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이 지난 1월 2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렸다. 홍 대표는 화제가 됐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과 비슷하게 진행했다.

대통령이 질문하는 기자를 선택하고, 사전 각본 없이 자유롭게 질의하고 응답했던 모양새는 같았다. 그러나 신년 기자회견은 자유한국당 출입 기자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질문하라고 했더니 답변 거부한 홍준표

<미디어오늘> 기자 : "기자에게 이 질문 하지 말라고 하고, (이전에도) 'KNN과 SBS를 빼앗겼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언론관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홍준표 대표 : "이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

질문을 받겠다고 기자들을 모아놓고, 막상 질문을 하니 답변을 거부한다. 이것을 과연 기자회견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질문도 민감한 분야가 아니었다. 불과 2주 전에 홍준표 대표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좌파 정권이 들어서니 SBS도 뺏겼다. 지금 부산에 KNN밖에 없는데 KNN도 회장이 물러났다. (정권이) 아예 방송을 빼앗는다" 발언에 대한 질문이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KNN도 뺏겼습니다’ 발언 영상을 보는 KNN 아나운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KNN도 뺏겼습니다’ 발언 영상을 보는 KNN 아나운서
ⓒ KNN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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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언론사 사장들을 발끈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기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KNN 앵커와 아나운서는 홍 대표의 발언 영상이 나오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KNN이 제작한 영상 'KNN은 뺏긴 적이 없습니다'은 조회수가 70만이 넘었다.

"SBS라는 방송은 그거 내가 <모래시계> 드라마 만들어서 키운 방송입니다. 어떻게 홍준표가 키워준 방송에서 그따위 짓을 할 수 있느냔 말입니다. 내 집권하면 SBS 8시 뉴스 싹 없애버리겠습니다." - 2017년 5월 부산 유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SBS 8시 뉴스 없애버리겠다고 그랬습니까?" - 2017년 12월 28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 12월 SBS에 출연했다. 주영진 앵커의 질문에 홍 대표는 오히려 '제가 SBS 8시 뉴스 없애버리겠다고 그랬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마지못해 사과는 했지만, 홍준표 대표의 언론관은 기자라면 상종조차 하기 어려운 폭군에 가까웠다.

막말을 막말이라 부르지 못하는 기자

기자의 질문에 ‘막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홍준표 대표
 기자의 질문에 ‘막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홍준표 대표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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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자회견에서 <문화일보> 기자는 '평소에 막말 관련 논란이 많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말투를 순화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홍 대표는 '막말한 사례를 이야기하면 대답하겠다. 내가 막말한 거 어떤 게 막말이냐?'라고 되물었다. 기자가 '너무 많아 가지고'라고 하자 홍 대표는 '또 이야기해보세요. 많아 가지고가 아니고'라고 응수했다.

기간 논란이 됐던 '막말'을 홍준표 대표는 '막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자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기자회견장이 아니라 말다툼하는 모습 같다.

<더팩트> 기자 : "얼마 전 조국 수석에 '조국인지 타국인지, 사법시험에 못 붙은 한'이라고 말했는데, 조국 수석은 사법시험에 응시한 적이 없다. 이것은 팩트가 아니지 않냐."
홍준표 대표 : "사법 시험 응시했다고 말한 게 아니라, 그냥 통과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팩트 문제가 아니지 않냐. 자, 이쯤 하자."

기자를 가리켜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대화를 하려는 기자는 '팩트'를 말할 수 없다. 팩트를 논하면 '팩트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의미를 질문하면 '팩트를 말하라'고 한다. 이쯤 되면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소속이 어디야? 이제부터 질문 하지마

오마이뉴스 유성애 기자가 소속을 밝히고 질문하자 홍준표 대표는 ‘오마이뉴스가 우리 당에 출입하나?’라고 반문했다
 오마이뉴스 유성애 기자가 소속을 밝히고 질문하자 홍준표 대표는 ‘오마이뉴스가 우리 당에 출입하나?’라고 반문했다
ⓒ JT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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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자 : "(소속을 밝히며) <오마이뉴스> 유성애 기자...
홍준표 대표 : "<오마이뉴스>도 우리 (당) 출입합니까?"
<오마이뉴스> 기자 : "(황당한 표정으로) 네."
홍준표 대표 :  "아이고~ 죄송합니다."
<오마이뉴스> 기자 : "'평양 올림픽'이라는 발언과 관련해 나경원 의원이 같은 말을 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의식이 일본 극우 정치인 발언과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준표 대표 : "나경원 의원 생각은 개인 생각이다. '평양올림픽'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것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생략)"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오마이뉴스>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출입하느냐'고 묻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출입기자가 아니라면 답변을 하지 않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이날 기자들은 유독 자유한국당 당직자로부터 '소속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말은 자유롭게 질문을 받겠다고 했지만, 소속에 따라 질문을 받고 답변을 받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한국경제> 기자가 홍준표 대표에게 대구시장 직접 출마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홍 대표는 '직접 출마는 없다'라고 답한 뒤 '더 이상 언론에서는 방금 이 기자가 질문한 것 하지 마라'고 말했다.

자유질문이 아니라 질문을 통제하고 선별하겠다는 강압적인 태도다.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반말과 폭언을 듣는 기자들

세계일보 기자가 질문을 하자 홍준표 대표는 ‘주머니에 손 좀 빼고’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기자가 질문을 하자 홍준표 대표는 ‘주머니에 손 좀 빼고’라고 말했다.
ⓒ JT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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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기자가 질문을 하자 홍준표 대표는 '주머니에서 손은 빼라'고 주문했다. 이 상황만 놓고 보면 교장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장면이다. 질문하는 기자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도 출입기자에게 반말을 예사로 하는 홍 대표가 '상호 예의'를 말하는 것도 우습다. 지난 2011년 7월에는 <경향신문> 기자가 질문했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었다.

<경향신문> 기자 : "이영수에게 돈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홍준표 대표 : "그런 걸 왜 물어, 너 진짜 맞는 수가 있어. (민주당이) 내 이름 말했어?"
<경향신문> 기자 : "야당에서 실명을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표 : "너 나에게 이러기야? 내가 그런 사람이야? 버릇없이 말이야."

당시는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홍준표 대표에게 자금의혹을 질문한 기자는 '맞는 수가 있다' '버릇없이 말이야'라는 반말과 폭언을 들었다. 정치인에게 '갑질'을 당하는 '기자'가 바로 자유한국당 출입기자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 중에서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사전에 질문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 대통령의 선택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 중에서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사전에 질문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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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신년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질문을 하기 위해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일각에서는 외신기자에 비해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출입기자들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운 장면에 불과할지 모른다.

대통령에게 질문을 선택받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한국당 출입기자에게는 대화가 되지 않는 정치인에게 질문하는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

질문을 하라고 해놓고 기자들 자리는 페이스북 생중계를 위한 모니터와 카메라 뒤에 배치했다. 홍준표 대표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기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따라하기에 희생양이 됐다.

평소 필자는 언론과 기자를 향한 비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이번 자유한국당 신년 기자회견을 보니 기자들이 안쓰러웠다. 참으로 '극한직업'이다. 앞으로는 갑질 정치인 대신에 국민만 바라보고 기사를 쓰는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정치미디어 The 아이엠피터 (theimpeter.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홍준표, #신년기자회견, #자유한국당, #출입기자,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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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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