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어린시절 이문열이라는 작가는 내게 너무나 양가적인 존재였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국민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이라는 이름을 내게 처음 알려주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읽었을 때에는 물론, 나이를 들어가며 새로 접할 때마다 늘 색다른 교훈과 재미를 안겨준 작품이었다.

헌데 그런 훌륭한 작가로서의 모습 이외에도 나는 이문열이라는 사람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가 각종 정치 및 시사 이슈들에 대해 색이 뚜렷한 입장을 여과없이 발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모습과 달리 '발언자'로서의 이문열은 기대 이하였다. 네티즌들을 '인터넷 탈레반', '질 낮은 포퓰리스트' 등으로 칭하는 등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그를 둘러싼 여론도 상당히 극단적으로 나뉘게 되었고, 내가 그를 보는 시선도 그러했다. 한편으로는 뛰어난 작가, 다른 한편으로는 아집에 사로잡힌 이상한 사람.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작품보다 새로운 논란으로 '이문열'을 접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은 부정적 일변도가 되어갔다.

<사람의 아들>은 그렇게 굳어져가던 내 인식을 완전히 흔들어 놓은 소설이다. 나는 10대의 마지막,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야자시간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별 생각없이 도서관에서 들고 온 책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당시에 내가 고민하던 주제를 관통하는 것이었고,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워가며 이 책을 완독했다. '이문열은 역시 대단한 작가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불어넣어 주었다. 동시에 내 사고의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책

 사람의 아들 (민음사, 1979)
 사람의 아들 (민음사, 1979)
ⓒ 민음사

관련사진보기

<사람의 아들>의 줄거리는 쉽지 않다. 현대의 이야기와 고대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이중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서의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이다. 80년대를 배경으로, 남경사가 '민요섭'이라는 인물이 살해 당한 것을 계기로 그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그려내는 틈틈에 '아하스 페르쯔'라는 기독교 전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살해당한 민요섭이 써내려갔던 작품으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 담겨 있는 문건이다. 동시에 작품의 한 축인 고대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경사는 동료들이 무관심한 이 이야기에 강한 흥미를 느낀다.

<사람의 아들>은 겉으로 범죄 느와르의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회의,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의 이야기가 놓여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사람은 '아하스 페르쯔'의 내용이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아하스 페르쯔라는 인물은 종교적 갈등과 고행이라는 인류와 종교가 존재한 이래 지속되어 온 물음을 겪어나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신에 대한 그의 믿음이 흔들리며, 신이 없는 세상에 대한 고뇌가 시작된다. '실존'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10대의 마지막 길목에서 나는 매일 매일 괴로움과 혼란을 경험하곤 했다. 늘 당연하게 지내오던 것과 달리, 이제는 내가 진로부터 삶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선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하려해도 그 앞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쉽게 결정을 내리지도 생각을 다듬지도 못했다. 대학 진학이나 진로 선택과 같은 문제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에 그런 고민이 더욱 괴로웠었다.

<사람의 아들>은 그랬던 나 자신에게 위로를 안겨주고 힘을 낼 수 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하스 페르쯔가 당시의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당연스레 자신을 지탱해준 기준이 사라지고, 스스로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처한 고통스러운 인물. 그의 경우는 그것이 신앙의 문제였고 나는 미래에 대한 것이었지만, 본질은 같게 느껴졌다.

종국에 <사람의 아들>은 우리가 종교와 신의 후예가 아닌 '사람'의 아들들임을 인식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것이 페르쯔의 결정이었다. 자신이 의지하던 존재를 딛고 새로운 기준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나는 책을 덮으며 나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홀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외부의 가치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타인의 도움에 나 자신을 맡기지 않는 길로 걸어가고자 다짐했다.

그 뒤로도 몇 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지금이 되었다. 늘상 힘든 일이 많았고, 여전히 당시의 고민들은 끊이지 않고 따라 붙었지만 그럴 때 마다 다가오는 감정상의 어려움을 금세 이겨낼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 이 책을 통해 느낀 감정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를 마주하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사람의 아들>이 내게 해 준 역할이고, 논리나 학문이 아닌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책 속의 금융읽기] [블록체인과 법/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