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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저녁식사 자리에 다녀온 친구가 기분이 무척 상했다며 열변을 토했다. 들어본즉슨, 그녀를 초대한 부부간에 일정 조율에 문제가 있었던지 다툰 것으로 보였고, 졸지에 그녀가 불청객 신세가 되었던 것. 정말 불편했겠구나, 맞장구를 치며 듣다가 친구의 이어진 말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누구를 밥 빌어먹으러 온 거지로 아나!"

그녀의 불쾌함을 이해하면서도, 내 짐작을 뛰어넘는 분노에 뜨악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관계와 각자의 내밀한 속사정을 다 알 수 없으니 그랬겠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 필요 이상으로 울화를 느낀 적이 없지 않다. 지나가는 행인의 반말에도 시시때때로 마음이 상했으니, 남 말할 것도 없다. 그때마다 내 마음 기저에 깔린 것은 내가 지금 무시 받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 자존감이 문제인 것이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책표지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책표지
ⓒ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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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존감으로 환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거의 모든 것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에 의하면, 1980년대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자존감이 한국에서는 30여 년쯤 지나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미국식 자본주의로 변화된 시점이며, 공동체가 아닌 개인 이기주의에 의해 사회가 굴러가게 된 뒤라는 분석이다.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공동체를 붕괴시킴에 따라 개인은 원자화·파편화됐다고 한다. 이에 고독이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로 부상했고, 그 고독을 방어하거나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자기방어 무기로서 자존감이 각광받게 된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제 익숙한 개념이지만, 자존감의 정의를 책에 기초해 짚어보자면 이렇다. 자존감이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기초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개념화할 수 있고, 그 개념에 의거해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요즘, 너도 나도 스스로의 자존감이 낮아서 문제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 오늘날 한국인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스펙중심주의. 쉽게 말해 돈, 외모, 학력 등으로 서로를 평가한다는 것. 많은 이들이 이것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압력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낮은 자존감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만인이 만인을 혐오하는 사회'라고 하니, 우리에게 '혐오'라는 말이 이토록 익숙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나의 자존감을 손상시키는 실체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존감을 정상화시키는 첫걸음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했듯이,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 쓸모, 사회에 대한 기여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일단 자신을 올바른 사회적 가치로 평가할 수 있어야 자존감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잘못된 가치로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들이 '가짜 자존감(pseudo self-esteem)'에 매달릴 때도 사회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들은 사회적 쓸모와는 관련 없는 돈, 학력, 사회적 지위 등에 연연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쾌감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혐오'로 이어진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혐오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하며, 심한 경우 나 자신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다. 따라서 나를 혐오하는 사람은 인간을 혐오한다. 다만 나보다 만만해 보이는 특정한 사회 집단을 찍어서 표적 혐오할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존감, 이것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존감이 유전적 특징이나 성격 특성과는 별개의 후천적 심리라는 것에 희망을 걸고, 우리 모두 개인적인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까.

이 책의 특별함은 그 해결책에 있다. 저자는 낮은 자존감으로부터 오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의 변혁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아무리 개인이 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정립한다고 해도, 사회적 압력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자존감을 무참히 파괴하고 불행한 삶으로 떠밀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병든 사회에 있다. 따라서 사람을 정당한 기준으로 평가하지 못하도록 강요하며 자존감 문제 해결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한국 사회를 변혁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식 자본주의에 의해 무너진 관계와 공동체가 복원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수용해주며 사랑해주고 존중해주는 소속 집단의 존재는 잘못된 사회가 강요하는 스트레스를 치유해주고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굳건히 고수하도록 돕는다. 즉 선한 이웃들과의 굳건한 연대나 건강한 소속 집단은 자존감의 수호자이자 중요한 원천인 것이다."


책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의 자존감을 강화시키는 방법 역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세상을 바꿔야 하고, 그것을 위한 연대와 실천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다른 각도로 보면, 심리학자인 저자가 세상의 변혁을 위한 실천의 하나로서 집필한 것이 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독자에게 숙제를 던져주는 책이다. 책에 설득되었다면, 그 실천의 구체적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일상에 넘쳐나는 혐오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며, 내 자존감 지키기에만 급급해온 나로서는 책을 덮자마자 정답이 떠오르진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만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낼 것을, 조심스럽게 다짐해본다. 그것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행위일 것이기 때문에.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김태형 지음, 갈매나무(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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