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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한 박정희 정권은 부랑자, 고아들을 충남 서산에 가뒀습니다. 바다를 막아 땅을 일구게 했습니다. 이들과의 강제 결혼을 위해 부녀자도 끌려왔습니다. 보상 대신 그들 앞에 놓인 것은 20년 상환으로 갚아야 할 빚 뿐. 대부업자는 국가입니다 [편집자말]
꿈이 있었을 겁니다.

서산개척단의 삶을 증언한 단원들은 모두 "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산개척단의 삶을 증언한 단원들은 모두 "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고 입을 모았다.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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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분명히 꿈이 있었습니다.

'갱생'이라는 미명하에 강제로 끌려와 합동 결혼식을 치른 서산개척단 여성들
 '갱생'이라는 미명하에 강제로 끌려와 합동 결혼식을 치른 서산개척단 여성들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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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창한 소망도 아니었습니다. 수놓는 법을 배우면 그래도 먹고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을 겁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덮을 이불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박한 꿈을 국가는 여지없이 짓밟아 버렸습니다.

서산개척단 윤기숙씨
 서산개척단 윤기숙씨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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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중국점과 가구점을 전전하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고아원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혼자였던 그 소년에게 조금 고생하면 땅과 집 한 채를 가질 수 있다는 속삭임은 참으로 달콤했을 겁니다. 국가는 소년을 속였습니다.

서산개척단 성재용씨
 서산개척단 성재용씨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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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건달이었습니다. 국가는 그에게 총부리를 들이댔습니다. "깡패 새끼"라는 이유만으로 스물 한 살이었던 청년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삽을 들고 곡괭이 질을 해야 됐습니다. 그의 바로 옆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죽음이 무서웠습니다. 국가는 '갱생'이라고 했습니다.

서산개척단 정화자씨
 서산개척단 정화자씨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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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오마이뉴스>는 이조훈 감독과 함께 이제까지 열 두 차례 전했습니다. 국가가 '서산 개척단'이란 이름으로 국민의 꿈을 짓밟은 이야기였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국민을 때리고 죽인 이야기였습니다. 강제로 일을 시켰고, 강제로 결혼까지 시켰던 이야기였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속아서 왔다는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정권이 바뀌면 좋아지겠지' 했는데, 소금기 가득한 땅을 옥토로 바꿔놨지만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국가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가 반 백 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서산개척단 정영철씨
 서산개척단 정영철씨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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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백한 사실을 확인한 많은 독자분들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24일 오후 5시 23분 현재 715명이 1128만 9177원을 모아주셨습니다. 국가에게 꿈을 뺏기고 그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던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어르신들은 너무 고마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조훈 감독은 전화통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밝혀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르신들이 엄청 감동하셨다"면서 "주변 지인 뿐 아니라 흩어졌던 서산 개척단 단원들에게서까지 응원의 전화가 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굉장히 많이 힘을 받으셨다"고도 했습니다.

오는 31일 청와대 앞에 그분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어르신 70여명이 모여 오랜 세월의 고통을 증언할 예정입니다. 이 사건을 처음 제보했던 KBS <1박 2일> 유일용 PD도 현장에 나와 힘을 더할 거라고 합니다. 이 감독은 "국가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전 정부, 전 정부, 현 정부 이런 문제가 아니라, 오랜 세월 국가가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는 사건이라는 지적입니다.

 대한자활개척단 발대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종필, 1968년 5월 13일, 뒤로 대한자활개척단 단장 김춘삼의 모습이 보인다.
 대한자활개척단 발대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종필, 1968년 5월 13일, 뒤로 대한자활개척단 단장 김춘삼의 모습이 보인다.
ⓒ 이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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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훈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위한 마지막 취재가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어르신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그 일, 어르신들이 용기를 내는데 도움을 주신 독자님들 덕분에 너무 힘이 났다"며 역시 "너무 감사 드린다"고 전했습니다.

영화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완득이> <아수라> 등의 음악을 책임진 이재진 음악감독의 결합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감독은 "좋은 음악이 만들어졌다"면서 "영화를 통해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아직 소개되지 않은 미공개 영상들을 영화에서 접하실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비록 다음(Daum) 스토리펀딩은 종료되지만, <오마이뉴스>는 이조훈 감독과 함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기꺼이 스토리펀딩에 동참해주신 독자분들 그리고 어르신들을 함께 모시고자 합니다.

'서산 개척단 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집'이란 말은 어르신들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니까요.


태그:#서산개척단, #이조훈, #김종필, #박정희,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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