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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이따끔 사람들로부터 내가 쓴 글에 대한 칭찬을 받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나 스스로 그만한 글을 써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손사래를 치는 말은 '글을 참 진솔하게 쓴다'이다. 나는 정직함은 글 쓰는 사람이 가장 철저하게 지켜야 할 윤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완벽하게 따르진 못한다.

개인적으로 가진 모범생 콤플렉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성소수자 인권이나 페미니즘과 관련된 글을 쓸 때는 더욱 그렇다. 흠이 있는 글을 쓰면 운동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괜한 표현으로 책잡히는 일이 생길까 고심한다. 분노하는 나는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지만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손으로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바꾼다.

사실 이는 나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운동을 하는 사람은 더욱 그럴 것이다. 안 그래도 설득이 어려운 낯선 주장을 해야하는데 괜한 오해를 만들게 되진 않을까 염려스럽다. 사람들이 글의 내용이 아니라 단어 몇가지에만 주목을 하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 말, 평이한 말, 오독의 여지가 없는 말을 찾게된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모든 말하기는 협상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동성애자인 나의 사연을 글에 담을 때, 나는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사람들의 편견을 강화시킬 위험이 없으면서도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을만 하지만 동시에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는 쉽지 않다.

나를 뒤흔든 <성의 변증법>의 한 문장

 <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 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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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계를 뛰어넘는 비범한 글쓴이가 등장하곤 한다. 이 모든 두려움과 우려, 움츠러듦을 극복한 사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주말 오후 나른함에 취해 <성의 변증법>을 읽던 나는 한 문장에서 정신이 확 들었다.

'임신은 야만적이다.'


누구나, 그리고 특히나 당사자라면 한 번쯤은 할법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신성시 하는 문화적 풍토(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기이할 정도로 이 풍토가 임신한 사람 개개인을 향한 처우로 연결되지 않는다. 당장 지하철 임산부석에 대한 반응을 보라)와 모성을 이상적 규범으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밖으로 꺼내기가 불가능한 말이다. 나는 불시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책장을 덮은 후 대학 시절 단짝이었던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커밍아웃을 했을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사이였다. 결혼과 가족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었다. 친구는 평소와 달리 내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새였다.

뜸을 들이던 그녀는 조용히 나에게 자신은 때로 임신이 두렵다고 이야기 했다. 남자인 친구한테는 처음 해보는 말이라고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도 지금껏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있잖아 임신을 하고 그 아이가 뱃속에서 크면 클수록 몸 속의 장기가 뒤로 밀리고 뼈가 약해진대, 그러고 나면 내 몸은 어떻게 될까?"

그 말을 듣자 친구의 공포가 단숨에 이해가 됐다. 그러나 글로 쓰는 문제는 달랐다. 임신 공포증에 대한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친구의 두려움은 없는 것도 부풀려진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공유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난 그 진실을 계속해서 에둘러 갈 것 같다. 직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로 쏟아내지 못할 것이다.

직면의 대가

사실 임신에 관한 것 뿐만일까. 당장 내가 안고 있는 생각, 감정, 경험 중에서도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는 머뭇거리거나 아예 털어 놓을 생각조차 못하는 것도 많은 것을.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바로 그것을 꺼내 놓는 일을 해낸 셈이다.

사실 <성의 변증법> 전체에 걸쳐서 그녀는 그 일을 하고 있다. 성을 하나의 계급으로 분석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그녀는 가족, 사랑, 인종에 걸쳐 모든 금기시된 주제들에 거침없이 다가선다. 그러나 이처럼 날카로운 통찰과 비범함에는 대가가 따르기도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생애는 그리 평온하지 못했으니까.

그녀의 행적을 다룬 책의 마지막 글에 따르면 파이어스톤은 편집증적 정신분열증에 시달렸고 잠시 안정을 되찾은 몇 년을 제외하고는 평생 그 병으로 고통 받았다. 그리고 2012년 그녀는 뉴욕에 있던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발병 원인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정통 유대교를 강요하는 답답했던 집안 환경, 오빠의 자살과 이후 이루어진 가족과의 절연 그리고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까지 그녀의 녹록지 않았던 가족사가 원인일 수도 있다. <성의 변증법>의 성공과 갑작스런 유명세, 그리고 이것이 당시 파이어스톤이 참여하던 운동에 미친 영향을 지목하는 사람도 있다.

그녀는 결코 실패한 삶을 살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 보아도 수긍이 된다. 이 책의 번역자인 김민예숙은 옮긴이의 말에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 역사상 재능이 있는 여성들이 가부장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의 벽에 부딪혀 자살하거나 정신 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파이어스톤 역시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다. 파이어스톤이 분석한 억압 받는 계급, 여성의 삶은 무엇보다도 본인의 것이었다. 이미 25살에 그것을 꿰뚫어 볼만큼 예민한 통찰을 지닌 사람에게 이 세상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이 책은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전과는 같은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하다못해 독자도 그런데 이를 품었다 토해낸 작가는 어땠을까. 책의 처음에 파이어스톤도 말하지 않는가. '견뎌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를 위한다고. 마찬가지로 보부아르 역시 여성이 제 2의 성임을 간파한 작가였다.

보부아르는 끝까지 견뎠지만 파이어스톤은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인생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의 변증법>은 진실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이를 풀어낸 작가가 만든 소중한 성과다. 파이어스톤은 끝끝내 무너짐으로써 그 일이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알려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느 숱한 글쓴이들이 감히 드러낼 수 없었던 용기와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성의 변증법>은 파이어스톤이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런 점에서 이론서로서는 흔치 않게 이 책은 읽는 이의 감정을 건드린다. 저자의 결연함이 마음을 뒤흔든다. 마지막으로 책에 인용된, 파이어스톤의 부고 기사에 달린 댓글의 일부를 전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결코 되돌아오지 못했다니, 그렇게 높이 날아야만 했다니,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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