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급 기밀>의 한 장면

영화 <1급 기밀>의 한 장면 ⓒ 미인픽쳐스


'누가 진정한 애국자일까?' <1급기밀>은 이런 질문을 갖게 만드는 영화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에서 벌어지는 방산 비리를 소재로 한 영화는 꼼꼼한 취재를 통해 비리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야전에 있다가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부임한 박대익 중령(김상경 분)에게 어느 날, 공군 전투기 파일럿 강영우 대위(정일우 분)가 찾아와 전투기 부품 문제를 제기한다. 문제가 있는 부품인데도 미국의 특정 업체 부품만이 공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박 중령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강영우 대위가 전투기 추락 사고를 당하고, 이를 조종사 과실로 만들어 사건이 은폐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게 된다. 뒷조사를 통해 차세대 전투기 도입에 관한 미 업체와 미국 국방성, 한국 국방부 간에 진행되고 있는 모종의 계약을 알게 되면서 번민한다. 군인정신이 투철한 박 중령은 국익을 위해 이를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언론사 기자와 힘을 합쳐 이를 폭로하려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시련뿐이다.

이미 알려진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1급기밀>은 방산 비리를 줄기로 내부 고발자가 겪어야 하는 시련과 눈치를 보는 언론의 모습 등을 다루고 있다. 사회 전반의 일상적인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 덕분에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겉으로는 국가 안보를 강조하지만 군 내부와 방산 업체 로비스트 등이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비리의 실상은 국가 안보를 자신들의 치부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작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구석으로 몰리며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2년 전 세상 떠난 감독의 '매국 행위 보수' 비판

 영화 <1급 기밀>의 한 장면

영화 <1급 기밀>의 한 장면 ⓒ 미인픽쳐스


<1급기밀>은 이 같은 방산비리의 흐름과 이를 추적하는 군 내부의 양심, 외압을 물리치고 보도하기 노력하는 기자의 모습 등을 알기 쉽고 재밌는 구성으로 다뤘다. 긴박감 있는 전개는 방산비리의 기본적인 개요를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전달한다. 4대강, 자원외교와 함께 이명박 정권의 대표 의혹으로 지적되는 방산비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의혹의 불길을 확산시킬 만큼 휘발성도 커 보인다.

후반부 전개가 일부 촘촘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 연출적인 기교는 약해 보이지만 꽤 재밌게 만들어졌다. 영화의 힘이 상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감독의 뚝심이 강하게 엿보인다. <1급기밀>이 매우 역설적인 감정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영화에서 전달되는 감독의 의지 때문이다.

말로는 애국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매국 행위를 하는 가짜 보수의 실체를 진보성향의 감독이 정면으로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 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개인적 이익의 수단으로 활용해 결과적으로 국가 안보를 약하게 만드는 군 내부의 부정직한 행태를 영화로 비판하는 감독의 죽비는 매섭기만 하다. 안보를 팔아먹는 가짜보수 세력에 대한 홍기선 감독의 고발장과도 같다. 이는 <1급기밀>이 주는 쾌감이자 묘미다.

국가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작품이지만,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현실과 이를 고발하는 감독 사이에서 '누가 진정한 애국자일까?'하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쪽은 방산비리를 고발해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다른 한쪽은 국가안보를 방패로 삼아 계속 비리를 저질러 국가적 손실을 일으키려 한다면, 누가 진정 국가와 사회를 위하고 있는지 대번 판가름 난다. <1급기밀>은 그 판단의 기초를 제공한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상영관 확보 어려워" 방산비리 소재 때문?

 영화 <1급 기밀>을 연출한 고 홍기선 감독이 김옥빈 배우와 함께 촬영장면을 확인하고 있다.

영화 <1급 기밀>을 연출한 고 홍기선 감독이 김옥빈 배우와 함께 촬영장면을 확인하고 있다. ⓒ 미인픽쳐스


<1급기밀>을 연출한 홍기선 감독은 한국영화운동의 1세대다. 1980년대 영화집단 '장산곶매'를 통해 5월 광주를 다룬 <오! 꿈의 나라>를 만들었고, 충무로로 진출해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선택>을 통해 비전향 장기수 등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미군 병사의 한국인 살인 사건을 토대로 한 <이태원 살인사건>에선 미완의 살인사건을 다시 되살려내면서 끝내 진범이 한국으로 송환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2016년 12월 홍기선 감독이 <1급기밀> 촬영을 마친 후 3일 만에 급서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급 기밀>은 홍 감독의 유작이 됐다. 홍기선 감독은 '현실참여형' 감독이라 평가받곤 했는데, 홍 감독의 유작 <1급기밀>에는 그가 꾸준히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변혁을 애썼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감독이 방산비리를 소재로 선택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영화는 국가안보를 팔아 아까운 국민세금을 유용하고 말로만 떠드는 애국과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실제적인 애국의 차이를 설명한다. <1급기밀>의 고발에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두렵고 불편하게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1급기밀> 제작사는 개봉을 하루 앞둔 23일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대로 된 상영의 기회조차 제한되고 있다"면서 "가장 용기 있는 한국영화라는 관객들의 호평 속에도 상영관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다수가 영화 개봉 5일에서 1주일 전 사전예매가 시작되는 것에 반해 <1급기밀>은 개봉 하루 전에야 대부분의 극장 예매가 오픈됐다는 것이다. 이어 "일부 극장에서는 오전과 심야 각 1회씩, 교차상영 등이라는 불공정한 시간표를 편성받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개봉후 상영시간 배정은 한국영화라는 이점이 무색할 정도로 들쭉날쭉이다. 영화적 재미를 갖춘 작품임에도 상영관들의 홀대가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대기업 투자 배급이 아닌 것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영화 속 방산비리를 고발한 내부 고발자 박 중령의 용기 있는 결단은 온갖 압박과 감시를 따라오게 했는데, 상영 기회 제약이 영화의 장면을 재연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1급기밀 방산비리 김상경 정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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