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뵐게요. 감사합니다."

정현은 이번에도 자신을 믿고 응원해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멋진 승리 직후에 이어진 인터뷰 도중 이례적으로 플레이어 박스에 있는 코칭 스태프와 가족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기쁨을 나눴다. 영어 인터뷰 끝에 마이크를 손에 쥔 정현은 자신이 쓰고 있는 테니스의 새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응원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세계 랭킹 58위)이 우리 시각으로 24일 오전 11시 10분 호주 멜버른 파크에 있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8 호주 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테니스 샌드그렌(미국, 세계 랭킹 97위)과의 8강 경기에서 2시간 28분만에 3-0(6-4, 7{TB}6, 6-3) 완승을 거두고 메이저 대회 남자단식 역사상 첫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첫 세트, 정현의 시원한 스매싱

 정현의 준결승 진출을 알리는 호주오픈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정현의 준결승 진출을 알리는 호주오픈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호주오픈


두 선수 모두 메이저 대회 8강은 첫 경험이다. 낯선 이름들이 일으킨 돌풍이 멜버른 파크를 휘몰아친 셈이다. 샌드그렌에 비해 프로 입문이 3년이나 늦은 정현이었지만 그래도 메이저 대회 단식 경쟁 경험이 더 많은 정현이 경기 초반부터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다.

첫 세트 세 번째 게임에서 세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잡은 정현이 자신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포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샌드그렌의 받아치기가 네트를 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2-1로 승기를 잡은 정현은 바로 이어진 자기 서브 게임에서 15:40으로 더블 브레이크 위기를 맞았지만 21개의 랠리 끝에 중요한 포인트를 따내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포핸드 스트로크 위력이 뛰어난 샌드그렌을 좌우로 많이 뛰게 만들며 스트로크 방향도 가능한 백핸드 쪽으로 공을 몰아주는 경기 운영 방법을 택한 것이 정확하게 먹혀들기 시작했다.

첫 세트 열 번째 게임을 포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기분 좋게 시작한 정현은 샌드그렌이 힘들어 하는 백핸드 쪽을 줄기차게 공략하여 뜻을 이뤘다. 단 한 개의 포인트도 내주지 않고 러브 게임으로 첫 세트를 따낸 정현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타이 브레이크, 멋진 포핸드 다운 더 라인

상대 공략법을 확실하게 익힌 정현은 두 번째 세트 첫 게임부터 샌드그렌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샌드그렌의 서브 게임이었지만 정현의 백핸드 크로스가 오른쪽 옆줄 위에 정확히 떨어지며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얻었고 여전히 샌드그렌의 백핸드 쪽을 파고들며 귀중한 브레이크 포인트를 따낸 것이다.

이어진 두 번째 게임에서 무려 37개의 긴 랠리가 이어졌는데 샌드그렌의 포핸드 스트로크 실수가 나왔다. 스트로크 싸움이 길어질수록 정현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셈이다.

네 번째 게임에서 포핸드 발리 실수를 저지르며 자기 서브 게임을 내주기도 했던 정현은 두 번째 세트 후반부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역전-재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여덟 번째 게임에서 정현은 자기 서브 게임을 하나 더 잃으며 3-5로 게임 스코어에서 밀렸지만 열 번 째 게임에서 25회의 랠리 끝에 완벽한 144km/h 속도의 백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샌드그렌을 꼼짝 못 하게 묶어버렸다. 5-5 이후 6-6 게임 스코어 상태에서 타이 브레이크를 시작한 것이다.

타이 브레이크 대결에서 샌드그렌은 과감한 서브&발리 전술을 들고 나와 정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발리 공격 2개를 연거푸 성공시키며 타이 브레이크 점수 5-4로 달아난 샌드그렌을 상대로 정현은 내리 3개의 포인트를 따냈다. 스트로크 싸움을 걸어 샌드그렌의 포핸드 실수를 이끌어낸 것이 주효했다. 64분이나 걸린 두 번째 세트 마지막 포인트는 정현의 포핸드 다운 더 라인이었다.

여섯 번째 매치 포인트 기회 잡아내다!

마지막 세트에 몰린 테니스 샌드그렌은 무더위 속에서 지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 번째 세트 네 번째 게임에서 서브를 넣은 샌드그렌이 네 차례의 듀스 끝에 더블 폴트를 기록하며 궁지에 몰렸고 침착한 스트로크 싸움을 건 정현은 샌드그렌의 포핸드 크로스 실수를 이끌어내며 브레이크에 성공했다.

정현은 여섯 번째 게임에서 171km/h 속도의 서브 에이스로 4-1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아 한결 수월하게 경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홉 번째 게임을 자기 서브로 시작하여 40:0 점수판을 만들며 러브 게임으로 이 경기를 끝낼 기회를 잡았다. 꿈에도 그리던 4강으로 가는 매치 포인트 기회가 세 개씩이나 자기 앞에 놓인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으리라.

여기서 샌드그렌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내리 세 포인트를 따내며 따라붙었다. 예상 밖으로 싱거워 보였던 8강 세 번째 경기가 마지막 순간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었다. 그 뒤로 듀스가 네 번이나 이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네트 앞으로 달려든 샌드그렌의 발리는 정현이 보기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확함이 돋보였다.

그래도 샌드그렌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백핸드 서브 리턴이 옆줄 밖에 떨어지며 여섯 번째 매치 포인트 기회가 정현에게 찾아왔고 2시간 28분 17초만에 정현의 포핸드 크로스가 경기를 끝냈다. 베이스 라인에 우뚝 선 정현의 키가 더욱 커 보였다.

이로써 메이저 대회 4강 진출이라는 또 하나의 위대한 역사를 쓴 정현은 남자 테니스계의 황제라 불리는 로저 페더러(스위스, 세계 랭킹 2위)와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공화국, 세계 랭킹 20위) 경기를 주목하게 됐다. 이 경기(24일 오후 5시 30분 예정) 승자와 정현이 만나는 준결승전은 오는 26일(금) 오후 5시 30분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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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8 호주오픈테니스 남자단식 8강 결과(24일 오전 11시 10분, 로드 레이버 아레나-멜버른 파크)

★ 정현 3-0 테니스 샌드그렌
1세트 6-4(37분), 2세트 7-6(타이 브레이크 7-5, 64분), 3세트 6-3(47분)
테니스 정현 호주 오픈 테니스 샌드그렌 로저 페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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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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