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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현의 두번째 정규 앨범이 발표되었다.

종현의 두번째 정규 앨범이 발표되었다. ⓒ SM 엔터테인먼트


1월 23일 정오, 샤이니 메인보컬  종현의 새 앨범 < Poet | Artist >가 발표되었다. 소품집 < 이야기 Op. 1 > 이후 아홉 달 만이다. 작년에 촬영한 타이틀곡 '빛이 나(Shinin)'의 뮤직비디오 역시 공개되었다.

많은 언론에서는 이 앨범이 종현의 유작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종현을 추모하는 기사를 썼을 때, 나는 음악인 종현을 기억하는 일에 집중하고자 애썼다. 이 글 역시 마찬가지다. 가십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그가 만든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유작 대신 새 앨범이라는 표현을 쓰겠다.

말끔하고 수려하게


2년 전, 종현은 첫 정규 앨범 < 좋아 – The Album >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알앤비를 감각적으로 결합시켰다. 신보< Poet | Artist >는 첫 정규 앨범의 연장선에 있는 듯 보인다.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기반으로 공간감과 그루브를 형성해낸 곡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흥겨운 타이틀곡 '빛이 나(Shinin)'를 비롯, 콘서트에서 선공개되었던 '환상통(Only One You Need)' 등을 통해 종현의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환상통, Take The Dive, 어떤 기분일까, 사람 구경 중, 와플 등 총 다섯 곡이 콘서트에서 공개되었던 바 있다).

SM 스테이션 프로젝트에서 함께 작업했던 일렉트로닉 프로듀서 임레이(IMLAY)는 이번 앨범에서도 세 곡의 작·편곡에 참여했다. SBTRKT 등의 영국 뮤지션을 연상시키는 'Rewind'도 빼놓을 수 없다.

퓨처 개러지(Future Garage)를 기반으로 한 'Rewind'는 절제된 그루브는 물론, 종현의 목소리를 이용한 효과음을 가미하는 등 숨은 묘미가 있다. 물론 이 앨범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감은 종현의 탁월한 노래 솜씨로 인해 비로소 완성되었다(단 한 곡만을 추천하라면 'Take The Dive'를 추천하고 싶다. 격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성이 매력적이다).

작사가 김종현, 그의 섬세함

종현은 수록곡 대부분의 노랫말을 쓰면서 개성 있는 문체를 뽐냈다. '기름때(Grease)'에서는 떨쳐내고 싶은 기억을 흰옷에 묻은 기름때에 비유했다. '사람 구경 중'에서는 주변의 작은 풍경을 놓치지 않는 종현의 섬세한 시선을, '어떤 기분일까'에서는 '절제된 야함'을 엿볼 수 있다.

앨범 제목에 적혀 있는 '시인'이라는 정체성이 어색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와플'(#Hashtag)은 종현의 기발한 표현법과 고뇌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곡이다. 제목만 보면 간식처럼 달콤한 사랑을 노래할 것만 같다. 편안한 키보드 연주를 듣고 있으면,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함정이다!

'가만히 있어도 물어뜯을 걸 갖다 줘 고맙지 뭐
 /걸레짝 되면 또 딴 얘깃거리 갈아타면 되지 뭐'

 '와플 먹어 너도 한번 씹어 악플 먹어'

- '와플(#Hashtag)' 중에서

'악플'과 발음이 비슷한 '와플'은 종현이 유명인으로서 감내했던 애환에 대한 고백이다. 해쉬태그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소문들은 왜곡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루머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대중은 유명인의 삶을 가벼운 유희거리로 여긴다. 

 종현은 신보에서 자신의 개성있는 문체를 뽐냈다.

종현은 신보에서 자신의 개성있는 문체를 뽐냈다. ⓒ SM 엔터테인먼트


종현은 이에 대한 환멸을 호소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독특한 언어로 그려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콘서트에서 #해시태그의 모양을 보고 '와플'의 모양을 떠올렸다며 이 노래를 소개했다.  즉, '와플'은 루머에 대한 맹신을 형상화하기 위한 대상인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은 이 곡에서도 드러난다. 작사가 김종현이 시도한 '이미지의 전복'이다.

앨범의 구성은 정석적이다. 흥겨운 곡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앨범이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반전된다. 정제된 재즈 풍의 'Sentimental'를 지나, 피아노와 목소리 위주로 전개되는 발라드 '우린 봄이 오기 전에'(Before Our Spring)를 듣고 나면 재생 시간이 끝난다.

'우린 봄이 오기 전에'는 '따뜻한 겨울'이나 '한숨'처럼 위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곡이다. 따뜻한 멜로디, 그리고 묘한 여운을 남기는 가사는 마무리에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늦겨울과도 잘 어울린다. 이 곡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이번 봄은 예전보다 빨리 온다지요
차갑게 얼은 겨울은 아직 그대로인데
어찌해야 하나 고민 말아요
난 괜찮아요 또 내게도 봄이 오겠죠

'우린 봄이 오기 전에(Before Our Spring)' 중에서

2015년 이후, 종현은 늘 솔로 앨범에서 주도권을 쥐어왔다.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 역시 그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신뢰했다. < Poet / Artist > 에서도 그는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고, 곡의 스타일에 맞춰 자유자재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열정이 넘치는 결과물이다.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종현의 부고를 접하고 '하루의 끝'을 듣는 동안, 나는 그가 '슬픈 스물일곱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 생각이 짧은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를 기억할 수 있는 단어는 많이 있기 때문이다. 샤이니의 메인 보컬, 진취적이고, 섬세한 뮤지션, 혹은 음악 앞에 한없이 진지했던 예술인. 종현이 어떤 식으로 정의되든, 그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종현이 청취자들과 함께 푸른 밤을 채웠듯이, 그가 빚어낸 음악은 앞으로 많은 이들의 일상과 동행할 것이므로.

종현 빛이 나 환상통 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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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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