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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없이 펼쳤던 책입니다. 사실 지인분께서 선물해 주셨던 책입니다. 어떤 책인지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첫 장을 펼쳤습니다. 책의 첫장부터 신선한 글이 있었습니다.

일러두기
한 권의 책은 수십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인지도 모릅니다.
'언어의 온도'라는 숲을 단숨에 내달리기보다,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하듯이 찬찬히 거닐었으면 합니다.
본문 곳곳에 스며 있는 잉크 무늬는 디자인적인 요소입니다.
창작자의 의도를 너른 마음으로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뭐지? 뭔지 모를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계속해서 책장을 넘겼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것,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들을 본인의 시선으로 '따뜻한 언어의 온도'를 담아 쓴 책입니다. 철학책은 아니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던 것에 대해 또 다른 시선을 보여줍니다. 책을 읽다보면 절로 '아...' 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죠.

언젠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맞은 편 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는 데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듯 했다. 할머니가 손자 이마에 손을 올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손자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대꾸했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순간 난 할머니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의 유형을 몇 가지 예상해 보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라거나 "할머니는 다 알지" 같은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 어설픈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반대로 말하면 안 아파본 사람은 아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를 소개하며 저자는 자연스럽게 삶의 이치를 보여줍니다. 읽다보면 좋은 문장이 너무 많습니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우린 사랑에 이끌리게 되면 황량한 사막에서 야자수라도 발견한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다가선다.

그 나무를,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뛰어간다. 그러나 둘만의 극적인 여행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서늘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내 발걸음은 '네'가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힘 좀 내"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런 멘트에 기운을 얻는 이가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힘낼 기력조차 없는 사람 입장에선, "기운 내"라는 말처럼 공허한 것도 없다. 정말 힘든 사람에게 분발을 종용하는 건 위로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이 책은 "말, 마음에 새기는 것", "글, 지지 않는 꽃", "행, 살아 있다는 증거"의 3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잘 읽힙니다. 저자는 '찬찬히 거닐듯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읽다보면 그리 안 됩니다.

저는 첫 장을 펼치고 글이 예뻐서, 감정을 깨끗하게 해주는 느낌이 좋아서 빨려들어가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좋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책을 접으며 한 장 한 장 읽어갔습니다.

 책표지/이기주/말글터/2016.8.11/13,800원
 책표지/이기주/말글터/2016.8.11/13,800원
ⓒ 말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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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 도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선택해서 읽는 책이 좋아서 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을 알고나니 '그럴만 하다'는 것과 '사람들의 마음이 비슷하구나, 외로워 하는구나, 조용하지만 듬직하게 어깨를 토닥토닥 거리는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이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들을 위로하고 싶었던 건 아닌 듯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또 우리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것에 대해 잊지 말라고 책을 쓴 것 같습니다.

책은 '당신의 삶이 허무하지 않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들려줍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말해줍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우리,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우리, 행복하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이런 우리들이 많아지면 외로운 사람도 덜할 것 같습니다. 나의 본 모습을 보고 상대를 배려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사람들로 인해 감동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아팠던 분이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듯, 최소한 아프지 않았던 사람이 아픈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없어졌으면 합니다. 차가운 말 한 마디는 상대에게 차가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상처주는 차가운 말이 아닌 희망을 주는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언어의 온도'가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이 책을 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자 이기주씨에 대해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습니다. 좀 놀랐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찾아본 내용을 소개드리자면 이기주 작가는 서울경제와 헤럴드 경제 등에서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8년 가량 일했고 이명박 정부시절이던 2010년엔 기자를 그만두고, 대통령실 연설기록 비서관실에서 스피치 라이터(연설문 작성자)로 근무했습니다.

2012년엔 자유선진당 부대변인으로 비례대표 20번에 이름을 올린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2017년 7월 현재, 출판사 말글터(<언어의 온도>를 출간한 곳)의 대표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즉 정치에 뜻을 두고 활동을 하시다가 현재는 출판사 대표를 하고 있다는 건데요, 약간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정치인들 중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분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자 이기주씨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뒤끝이 개운치는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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