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연 신년 기자회견에서 준비된 회견문을 읽은 후 일부 기자들을 향해 비켜달라며 손짓하고 있다.
▲ 홍준표 "이제 그만 찍으세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연 신년 기자회견에서 준비된 회견문을 읽은 후 일부 기자들을 향해 비켜달라며 손짓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어머니의 걱정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두고 자유한국당의 몽니가 가관이다.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팀 남북한 단일팀 문제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 때문인지 당 대표까지 나서서 연일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해 맹공 중이다.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
"주사파 세력이 장악한 문재인 정권의 평양올림픽"

한심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독려하는 법을 만들던 이들 아니던가.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어도 넘지 말아야 할 금도가 있다. 내세울 것이 색깔론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내부에서 이렇게 재를 뿌려댈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남북평화는 다른 나라 이야기인가.

그러나 그들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막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색깔론에 휘둘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터,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이게 말이 되냐?"
"네? 뭐가요? 왜 이리 흥분하셨대요?"
"북한 놈들 말이다. 왜 저렇게 사람들을 많이 내려 보낸데?"
"응원단, 예술단 말씀하시는 거죠? 그게 뭐 어때서요?"
"어떻다니. 저것들 다 우리가 재워주고 먹여주는 거라며. 왜 우리 정부는 쓸데없는 데다 돈을 쓰고 있다니. 문재인 정부가 잘하고 있는 것 맞아? 아버지도 지금까지 열 내시다가 막 출근하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유한국당 소리에 과연 누가 호응할까 싶더니 당장 박근혜 탄핵에 찬성했던 우리 어머니조차 저들의 빨갱이 놀음에 넘어가셨구나. 주위 분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늘 보시는 보수언론들이 그렇게 접근을 하니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구나.

"아니죠. 그 돈이 얼마나 된다고요. 그렇게라도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평화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면 아깝지 않죠."
"그래도. 그게 다 우리 세금인데. 너무 한 거 아니냐? 그렇게 많이 넘어올 필요는 없잖아."
"규모가 크면 그만큼 세계적으로도 이목을 끌 거고 전쟁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거예요. 물론 올림픽을 한다고 북한이 곧바로 테이블에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계기는 되지 않을까요? 저들이 많은 사람을 내려 보낸다는 건 그만큼 성의를 표하는 거고. 그 돈 얼마 안 돼요. MB나 박근혜가 해먹은 거에 비하면 새발에 피도 안 돼요."
"모르겠다. 주위 사람들이 하도 뭐라고 하니까 네 생각이 궁금해서 전화해봤어."

자유한국당 김재경, 이종명 의원, 디지털소통 부위원장인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사진)를 비롯한 당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앞에서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에 태극기와 함께 인공기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문제삼아 '달력 소각' '은행장 사퇴' 등을 요구하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엄마부대 주옥순, 초등생 통일 그림 달력 소각 요구 자유한국당 김재경, 이종명 의원, 디지털소통 부위원장인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사진)를 비롯한 당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앞에서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에 태극기와 함께 인공기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문제삼아 '달력 소각' '은행장 사퇴' 등을 요구하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이 생각하는 평창올림픽

그렇게 끝난 어머니와의 통화. 나중에라도 어머니를 만나면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빠와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까꿍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빠, 할머니는 북한 사람들이 오는 게 싫대?"
"응? 아냐. 그냥 걱정되셔서."
"북한 사람들 와서 우리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돈이 아깝다는 거 아냐?"

날카로운 녀석. 전화 내용만 듣고도 할머니가 북한에게 돈 주는 게 아깝다는 걸 눈치 채다니. 문득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넌 어때? 북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게 좋아? 돈이 아깝지 않아?"
"나? 나는 북한 오면 좋지. 다 같이 사이가 좋아지니까."
"북한하고 사이좋은 게 좋아?"
"좋지. 뉴스에서 북한이 미사일 쏘고 그러면 얼마나 무서운데. 이렇게 사이가 좋게 되면 안 싸우겠지. 통일도 하고."
"통일 되면 좋아?"
"좋지. 그럼 사이가 좋아지니까. 땅도 넓어지고."

그래, 이제 10살이 된 까꿍이도 아는 걸 왜 어른들은 모르는 걸까? 아니, 알면서도 눈을 감아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누나와 아빠가 대화를 이어가자 옆에서 8살 된 산들이가 끼어들었다.

"나도 북한 오는 거 좋아."
"어떻게 북한 오는 거를 알아?"
"알지. 뉴스에서 봤어."
"너는 왜 북한 오는 게 좋아?"
"그러면 북한하고 친해지고, 그렇게 되면 북한에도 갈 수 있잖아."
"북한에는 가고 싶어? 다른 나라는 가기 싫다고 하더니."
"응. 북한에는 가고 싶어. 우리하고 말이 똑같다잖아. 올림픽이 열리면 북한 사람들이 제일 보고 싶어. 진짜 우리랑 똑같이 말하는지 듣고 싶어."

해외여행을 이야기하면 자신이 힘도 생기고 돈도 모을 수 있는 12살까지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던 산들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가보고 싶다니. 이것이 같은 생김새에 같은 언어를 쓰는 핏줄의 힘이겠구나.

제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쑥쑥 통일나무가 자란다'. 한국당은 이 그림을 두고 "태극기보다 인공기가 아래에 있다"면서 작품을 그린 초등학생에게까지 '종북 몰이'를 하고 있다.
 제22회 우리미술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쑥쑥 통일나무가 자란다'. 한국당은 이 그림을 두고 "태극기보다 인공기가 아래에 있다"면서 작품을 그린 초등학생에게까지 '종북 몰이'를 하고 있다.
ⓒ 우리미술대회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아이들 바람처럼 평창이 '평화의 터'가 되길

이어서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을 대방출하면서 아빠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자신이 하나라도 더 알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초등학교 2학년 까꿍이는 북한을 풍속이나 전통이 조금 다른,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고, 8살 산들이는 북한을 같은 나라였는데 지금은 그냥 사이가 안 좋은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나라가 왜 나눠졌는지는 어린이집에서 안 배웠다던가. 그러더니 산들이가 덧붙였다.

"난 북한 사람은 안 무서워. 대신 북한 대통령은 무서워. 그런데 미국 대통령은 더 무서워."
"왜 뭐가 무서워?"
"무섭게 생겼잖아. 미국 사람들도 싫어하고. 말도 화내면서 무섭게 해서 싫어. 책상 위에 핵폭탄 버튼도 올려놓고 있다잖아. 그래서 무서워."
"그건 북한 대통령이야."
"그래? 아무튼 난 트럼프가 무서워. 미국, 북한 사람들만 오고 대통령 둘은 안 오면 좋겠어. 둘이 만나면 엄청 싸울 거 같아."

놀라웠다. 비록 북한학을 전공했지만 그동안 나는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받을 교육과 아빠의 말이 충돌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말을 아껴오고 있었다. 그런데 8살짜리 아이가 뱉은 말이 저 정도라니. 어린이집에서 트럼프에 대해서 가르쳤을 리는 없고, 결국 TV뉴스와 그에 반응하는 아빠 말 정도를 듣고 아이 나름대로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텐데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기특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득해졌다. 앞으로 아이들이 정규교육 받을 시간이 10년 이상. 그동안 아이들은 북한과 미국에 대해, 분단과 우리의 현실에 대해 어떤 교육을 받을까. 물론 나같이 '무찌르자 공산당', '이승복 어린이'를 배웠음에도 색깔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기까지 꽤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세월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어린 학생이 통일 포스터에 그려놓은 인공기를 보며 빨갱이 타령을 하고, 야당 대표가 신년사에 좌파를 14번이나 언급하는 사회. 과연 나의 아이들은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레드컴플렉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주역이 된 한반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반대해 오던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엄한 산을 깎고 멀쩡한 숲을 파괴시키고 토건 세력에게 돈을 몰아주는 말로만 거창한 세계인의 축제. 그러나 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이 다시 만나고, 한반도 비핵화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린다면 대환영이다. 부디 이번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으로 성공해서 남북평화의 계기가 생기길 바란다. 야당은 8살짜리 꼬마 아이에게 배우기를.


태그:#육아일기
댓글6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