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세상'을 가지고 있다. 그 세상은 자신이 전념했던 무언가일 수도 있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은 다양한 것에 노력과 열정, 사랑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저마다의 세상이 무너질 때 슬퍼하고 절망하는 것은, 그만큼 저마다의 세상을 아끼고 사랑했음을 의미할 테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세상을 잃은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주인공 '조하'(이병헌 분)는 권투와 어머니를 잃었고, '인숙'(윤여정 분)은 일전에 아들 조하를 두고 가출했다.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가율'은 교통사고로 피아노를 잃었다. 서번트 증후군의 천재 피아노 소년이자 인숙의 또 다른 아들인 '진태'(박정민 분)만이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천진난만함으로 영화 속 세상을 하나하나 재건한다. 그가 치는 피아노 곡조와 함께 말이다.

조하의 마음 움직인 것,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Ⅲ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조하는 우연히 십수 년 전 집을 나갔던 인숙을 만나게 되고, 인숙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조하-인숙-진태(조하의 이복 동생)의 한집 살이가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인숙은 조하에게 진태를 맡기고 잠시 집을 비운다. 조하에게 진태가 피아노 콩쿨에 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도 한다. 조하는 서번트 증후군 진태의 피아노 실력에 처음엔 반신반의한다.

그런 조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진태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Ⅲ'이었다. 공원에서 진태가 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Ⅲ'에 조하는 매료됐고, 진태의 실력을 인정하게 된다.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진태를 동생으로 인정하게 되고, 그것을 징검다리 삼아 어머니 인숙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사실, '월광(月光)'은 베토벤 사망 후에 지어진 이름이다. 베토벤이 생전에 곡에 부여한 이름이 아니다. 시인 렐슈타프가 지은 이름이다. '달빛이 비친 호수 위에 조각배' 같은 곡이라며 '월광'이라고 지었다. 이 소나타는 때론 어둡게, 때론 무겁게 또 동시에 발랄한 선율을 선사한다. 어둠이 진할수록 달빛이 더 빛나는 것처럼 말이다. 조하와 진태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두 사람의 교감을 보여주는 헝가리 무곡 5번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관련 사진.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관련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한편, 조하는 진태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가율을 찾는다. 가율은 교통사고로 인해 피아노계를 떠났고, 피아노를 치지 않는 상태였다. 가율의 집에 있던 피아노는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진태가 그 천을 벗어 던지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진태의 피아노 곡조가 가율의 마음을 움직였고, 가율은 진태의 피아노 실력을 확인해 본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안 치던 가율이 누른 건반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었다. 가율은 진태와 함께 '헝가리 무곡'을 연주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은 본래 두 명이 연주하는 연탄곡(連彈曲)이다. 두 명의 합(合)이 잘 맞아야 완전한 연주가 가능하다. 가율은 진태와 교감하며 피아노를 연주했다.

피아노를 치며 교감해서였을까. 장애를 가졌음에도 도전하는 진태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서였을까. 가율은 진태와 '헝가리 무곡 5번'을 함께 연주한 이후, 다시 피아노에 손을 올리게 된다. 깊은 밤, 홀로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며 잃어버렸던 세상을 되찾는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이 곡은 피아노와 관현악이 합주하는 곡이다. 독주 악기 피아노를 돋보이게 하는 협주곡이다. 여기서 핵심은 협주(協奏)다. 진태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공연장은 영화 속 캐릭터가 가진 '세상'이 모두 만나는 곳이 된다. 각자 떨어져 있던 저마다의 세상이 하나로 모이는 곳이다.

조하와 인숙은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또 동시에 인숙의 바람대로 조하와 진태는 형제애도 갖게 된다. 가율은 다시금 피아노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다. 가율의 어머니는 '피아노에 다시금 열정의 불을 지피는 딸의 모습'을 얻게 된다. 그리고, 진태는 그렇게 좋아하는 피아노를 많은 사람 앞에서 치게 되고, 인정받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와 형에게,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가율에게 자신의 선율을 들려준다.

필자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굴곡'을 느꼈다. 이 곡은 긴장과 이완이 쉴새 없이 이어진다.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곡의 도입부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영화나 광고 등에서 '시련받을 때' 나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실제로 모 보일러 회사에서 높은 가스비에 절규하는 모습에 이 협주곡을 배경음악으로 깔기도 했다. 하지만, 인상적인 도입부는 이내 곧 이완, 평화로운 운율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긴장으로... 세상(世上)의 이치가 담겨있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내 진태는 "네", "한가율 예뻐요"라는 대사를 주로 한다.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 장면은 진태의 손가락을 통해 '진태의 세상'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 같다.

내 세상의 클래식을 생각해 본다. 사실, 영화의 이야기는 예측한 대로 흘러간다. 다만, 진태가 치는 피아노곡의 의미와 운율 등을 영화와 겹쳤을 때, 영화는 15도쯤 각도를 비틀어 다가온다.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박정민 배우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박정민 배우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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