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 살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것은 짧은 해외여행 중에도 마찬가지다. 지나가다가 한국어로 쓰여진 광고판이나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 마트에 놓인 한국 상품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지니 말이다.

잠시의 여행이 아닌 이민자의 삶이라면 더욱 조국에 대한 그리움 민족에 대한 사랑이 깊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말과 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 남아서 해방을 맞은 이들

  조선학교 학생 11명의 조국 방문 여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하늘색 심포니>

조선학교 학생 11명의 조국 방문 여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하늘색 심포니> ⓒ sorsrionosymphony.com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식민 지배자의 땅에 살며 민족의 얼과 정신을 지키고 우리 교육을 시킨다는 이유만으로 고국인 한국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2016년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출품작인 <하늘색 심포니>는 댈러스아시안 영화제 다큐멘터리 수상 작품이다. <하늘색 심포니>의 박영이 감독(41)은 요코하마 조선학교 출신으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하늘색 심포니>는 졸업을 앞둔 조선학교 학생 11명이 두 주간 북한을 방문하는 여정을 취재해 보여준다. 공항에서부터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들, 함께 노래하고 함께 하는 여정에서 그들은 조국이 무엇인지 민족이 무엇인지 느끼고 돌아온다.

2주 동안 북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조선학교 학생들은 여느 일본의 학생이나 한국의 학생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안내를 하는 예쁜 누나에게 반하기도 하고, 공연을 준비하며 실수할까 걱정하고, 돌아올 때 정이 들어 서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민족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은 우리말과 글, 역사를 가르치는 민족학교인 조선학교에 자녀들을 입학시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기숙학교에서 10년 이상 혼자 생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가 되고서야 왜 부모님이 자신을 조선학교에 입학시켜 교육을 받게 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써서 졸업식장에서 낭독하는데, 관객들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이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내외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내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올곧은 삶의 방향, 민족의식과 역사의식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간다.

일본에 남아서 해방을 맞은 이들은 제일 먼저 우리의 말과 글, 역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운다. 자식들에게 우리 민족 교육을 시키기 위해 의식 있는 이들이 가산을 털고 모금을 해 어렵게 학교를 세우고 민족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인의 억압과 차별

일본인들의 조선학교에 대한 억압과 차별과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걸핏하면 테러를 일삼고 여학생의 교복 저고리를 찢고 등에 낙서를 해서 학생들은 학교 밖에서는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지 못한다. 일본 우익의 끊임없는 테러, 일본의 국가적 차별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조선학교는 현재 일본 전역에 64개가 남아있으며 교육복지 혜택에서 제외된 상태로 지금도 투쟁 중이다.

민족학교인 조선학교가 어려움을 겪을 때 북은 조건 없이 학교를 지원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북을 조국이라 부르는 이유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졸업 전 2주 동안 조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남쪽이 고향인 조선학교 학생들에게는 남과 북 두 개의 조국이 있다.

남한인 제주, 경상도, 전라도가 고향인 조선학교 학생들은 지금도 고향인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다. 한국이 그들의 입국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조선학교가 북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입국조차 못하는 것이다. 제주가 고향인데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는 여학생이 남한이 바라다 보이는 판문점에서 분단의 현실을 인식하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그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하에 강제로 끌려온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두었다는 것 외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일본 땅에서 조선인으로 나고 자라며 조선의 민족 교육을 받았을 뿐인데 그들을 차별하는 장벽은 너무 높고 거대하다. 그들의 고향인 남쪽 조선을 그들은 한국이라 부르고 조선학교를 지원한 북쪽 조선을 조국이라 부른다. 그들에겐 남북이 외세에 의해 두 동강이 나기 전 하나의 조국인 조선만이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들은 조선학교에서 민족 교육을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조선학교에 남아 후배들과 배움을 나누고 얼을 이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 의식 있는 일본인이 조선학교 교사로 함께하고 한국에서 콘서트를 통해 조선학교를 돕는 모금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일본에서 민족의 얼과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조선학교를 지켜내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조선학교에서는  체제나 이념 교육, 혹은 남을 밟고 올라가 최고가 되라고 교육시키지 않는다. 더불어 행복한 삶, 타인을 배려하는 삶, 남의 행복이 나이 행복이고 동무가 잘되면 함께 그 기쁨을 나누며 사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이념과 전혀 상관없이 식민 지배를 받던 약소국 조선에서 태어나 선택지 없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의지와 상관없이 두 동강 난 조국의 현실 때문에 두 개의 조국을 갖게 된 아이들, 한 곳은 그들을 거부했고 한 곳은 그들을 조국의 아들 딸로 받아들이고 어디서든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가라고 격려한다.

체제와 이념을 넘어 한 사람으로 청소년이 자아 정체성을 되짚어 보고 미래의 삶의 지표를 세울 수 있도록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주는 조국이 양쪽 모두라면 어땠을까.

"어서 와, 힘들지? 언제든지 두 팔 벌려 맞아 줄 준비가 되어 있단다. 이곳은 너희들의 조국이니까."

차별이 일상화된 남의 나라 일본땅에서 삶이 피폐해지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언제나 돌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고향이 있고 조국이 있다면, 그곳이 북이든 남이든 그들의 고향이라면.

조선학교 우리학교 민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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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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