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레알을 구한 선수는 호날두가 아니었다. 어느덧 레알 유니폼을 입고 12번째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마르셀로와 최근 레알 마드리드 공격의 핵으로 급부상 중인 베일이 그 주인공이었다.

22일 오전 0시 15분(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열린 2017-2018 라리가 20라운드 레알 마드리드(아래 레알)와 데포르티보 라 코류냐(아래 데포르티보)의 경기에서 레알이 7-1의 대승을 거뒀다.

리그 18위로 강등권에 위치한 데포르티보와 홈경기였지만, 최근 기나긴 부진의 터널 속에 갇힌 레알에게는 역사적으로 저력이 있는 데포르티보는 경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4위 자리도 레반테를 상대로 승리를 챙긴 비야레알에 내주면서 5위로 밀려난 레알이었다. 승리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조급함이 레알 선수단을 지배할 공산이 컸다.

레알 마드리드, 네 경기 연속 '선제 실점'

승점 3점을 향한 레알의 갈증은 경기 초반부터 드러났다. 객관적인 전력상 우위를 가진 레알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데포르티보를 몰아붙였다. 데포르티보전에서 두 번째 리그 선발 기회를 잡은 보르하 마요랄의 강한 전방 압박을 시작으로 공은 줄곧 레알의 점유 아래에 있었다.

전력 차이를 인정한 데포르티보는 과감한 공격보다는 수비 라인을 후방 깊숙하게 위치시켜 레알의 공격을 받아냈다. 데포르티보의 촘촘한 수비 간격에 균열을 내기 위한 지단 감독의 선택은 측면 공격이었다.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나선 가레스 베일과 오른쪽 풀백 카르바할이 콤비플레이로 공격 작업을 이끌었다.

두 선수의 협업으로 데포르티보의 측면은 종종 무너졌다. 하지만 득점은 요원했다.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가도 패널티 박스 안에서 준비하고 있는 다수의 데포르티보 선수들이 슈팅을 방해했다. 무수히 많은 크로스가 데포리티보 골대 앞으로 올라갔지만 골은커녕 슈팅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레알은 답답한 지공 대신 간혹 빠른 역습을 구사했지만 세밀함이 떨어졌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갈 길이 바쁜 레알의 다급함은 더욱 커졌다. 그 순간 데포르티보의 쓰리톱이 등장했다. 전반 22분 왼쪽 측면에서 평범한 던지기가 발단이 됐다. 스로인 상황에서 플로린 안돈이 영리한 몸싸움으로 카르바할을 무너뜨리고 머리로 패스를 연결했고 루카스 페레즈가 돌파 이후 날카로운 크로스로 이어갔다. 페레즈의 칼날같은 크로스를 아드리안 로페즈가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데포르티보가 일격을 가했다.

레알의 리그 네 경기 연속 선제 실점 기록이 세워지는 장면이었다. 지난 16라운드 FC 바르셀로나전을 시작으로 레알은 리그에서 매번 선제 실점을 허용했다. 최근 불안한 레알의 경기력을 방증하는 기록이다. 데포르티보전 역시 레알의 좋지 않은 흐름은 계속됐다.

역전을 만든 마르셀로와 베일

아드리안에게 선제 실점을 허용한 레알의 반전의 시발점 역할을 한 선수는 왼쪽 풀백 마르셀로였다. 전반 초반부터 꾸준하게 왼쪽 측면을 활발히 공략했던 마르셀로는 전반 25분 처음으로 골과 가까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오른쪽 측면에서 베일이 길게 올려준 크로스를 과감한 왼발 발리 슈팅으로 이어가 골문을 위협한 마르셀로였다.

발리 슈팅을 기점으로 마르셀로의 공격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전반 27분 마르셀로의 정확한 크로스에 이은 호날두의 타점 높은 헤더는 데포르티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마르셀로는 수비수였지만 주도적으로 공격을 이끌어나갔다.

결국 마르셀로의 크로스가 레알의 동점골을 생산했다. 전반 31분 코너킥 상황에서 레알은 짧은 패스로 공격을 시도했다. 공격에 가담한 중앙수비수 나초 페르난데스가 왼쪽 측면의 마르셀로에게 공을 전달했다. 데포르티보 수비진은 마르셀로의 골대 앞 빠른 크로스를 예상했지만 마르셀로는 패스 이후 후방에서 침투하는 나초에게 짧은 패스를 보냈고, 나초는 정확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마르셀로의 정확한 상황 판단이 빛나는 장면이었다.

마르셀로의 활약으로 분위기를 찾아온 레알의 공격에 불을 지핀 남자는 베일이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던 베일은 전반 41분 놀라운 슈팅으로 역전골을 뽑아냈다. 반대편 측면에서 마르셀로가 올린 크로스가 뒤로 흘렀고 베일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공을 잡았다. 슈팅을 때리기에는 어려운 각도였지만 베일의 왼발을 떠난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전매특허인 왼발 슈팅으로 역전골을 기록한 베일은 후반전에 또 한 번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다른 장기인 헤더가 응답했다. 후반 12분 코너킥 상황에서 올라온 토니 크로스의 크로스를 베일이 높은 타점에서 머리로 해결했다. 기민한 위치선정, 높은 점프, 정확한 헤더가 고루 어우러진 멋진 골이었다.

베일의 추가골은 사실상 이 경기에 마침표였다. 베일의 추가 득점 이후 데포르티보는 의욕을 급격하게 상실했다. 의지를 잃은 데포르티보에게 레알 선수들은 응징을 가했다. 루카 모드리치의 네 번째 득점을 시작으로 호날두의 연속골과 나초의 추가 득점을 엮어 레알은 7-1로 데포르티보를 완벽하게 침몰시켰다. 결정적인 순간 나타나 경기 흐름을 바꾼 마르셀로와 베일의 활약 덕에 레알은 리그 3경기 연속 무승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리그 4위 탈환에 성공했다.

'믿을맨' 마르셀로와 '작은형' 베일

마르셀로는 화려한 레알 선수단 중에서도 신뢰도가 가장 높은 선수다. 현재 감독인 지단은 물론이고 마르셀로를 지도했던 대부분의 레알 감독들은 마르셀로에게 강한 믿음을 보여줬다. 기록이 증명한다. 데뷔 시즌인 2006-2007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즌에서 10경기 이상 출장한 마르셀로는 어느덧 레알 통산 400경기 이상을 나섰다. 지난 해 말에는 브라질 대표팀의 선배이자 레알의 레전드인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레알 소속 외국인 선수 최다 승리' 타이틀도 마르셀로의 차지가 됐다.

화려한 기록과 달리 올 시즌 활약상에는 다소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과거 마르셀로는 '돌아오지 않는 풀백'으로 불렸을 정도로 공격 가담 이후 빠른 수비 복귀에서 약점을 드러냈던 선수다. 최근 몇 시즌 간은 치명적 단점을 개선하면서 세계 최고의 풀백으로 거듭났지만 이번 시즌에는 종종 틈을 보이곤 했다. 특히 지난 리그 18라운드 셀타비고전에서 2실점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마르셀로의 늦은 수비 가담이 문제로 지적이 됐다.

마르셀로의 경기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데포르티보전을 통해 마르셀로는 이러한 의심을 말끔히 씻어냈다. 사실 올 시즌 그를 향한 비판은 부당한 측면이 컸다. 기본적으로 레알은 마르셀로가 과감하게 높은 라인에서 공격 작업을 수행하는 임무를 부여한다. 공격 전술상 발생하는 측면 뒷공간은 다른 수비 자원들이 메워야 하는데 이 작업이 원활하지 않는 레알이다. 왼쪽 측면에서 호날두가 부진하면서 마르셀로가 공격에 더욱 치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마르셀로에게는 악재였다.

 레알 마드리드, 맨유 꺾고 UEFA 슈퍼컵 2연패 (2017년 8월 9일)

지난 2017년 8월 9일, 레알 마드리드가 UEFA 슈퍼컵에서 맨유를 상대로 경기하고 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레알 마드리드의 가레스 베일(왼쪽), 마르셀로(오른쪽)다. ⓒ EPA/연합뉴스


일단 레알에 다행인 부분은 마르셀로의 공격 파트너 호날두가 데포르티보전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점이다. 호날두와 마르셀로가 만들어내는 공격 하모니는 레알의 화려한 성공에 중심이었다. 특히 수비수라는 포지션이 믿기지 않는 마르셀로의 폭발적인 공격력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믿을맨' 마르셀로가 신뢰를 회복함과 동시에 '작은형' 베일의 상승세도 레알에게 호재다. 한국 팬들 사이에서 '작은형'이란 호칭으로 불리는 베일은 '우리형' 호날두의 후계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레알에 입성한 베일은 첫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후계자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레알에서 베일의 입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 부상이 문제였다. 건강한 몸상태에서는 호날두와 비견될 만한 능력을 과시했지만 부상의 빈도가 너무 잦았다.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졌고, 베일의 EPL 복귀 이적설은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시즌에는 이스코가 공격의 한 축으로 완전히 자리잡으면서 레알 입단 이후 가장 초라한 시즌을 보냈다.

레알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올 시즌 활약을 베일에게 필수적이었다. 마침 '주포' 호날두가 침묵하고 있기에 영웅으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베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8라운드 셀타비고와 경기에서 레알은 전반 33분 다니엘 바스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베일이 3분 만에 동점골을 잡아냈고 2분 후에는 역전골까지 뽑아내면서 승부를 뒤집었다. 111일 만에 리그 선발 경기에 나선 베일의 활약상이었다.

베일은 셀타비고전에 이어 데포르티보와 경기에서도 멀티골에 성공했다.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베일의 존재는 지단 감독에게 큰 힘이 될 전망이다. 호날두가 데포르티보전에서 두 골을 넣기는 했지만 경기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 데포르티보전에서 호날두는 득점이 절실했던 순간에는 침묵하다가 경기의 판도가 크게 기운 이후에 득점을 기록했다.

반면 베일은 전반 초반부터 데포르티보 수비진이 파열음을 내게 만들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완벽히 상대를 붕괴시켰다. 언제나 트로피를 노리는 레알에게 필요한 공격수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해결사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호날두가 빠르게 그 지위를 잃어가고 있는 만큼 베일의 살아나는 공격력에 레알은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데포르티보전 승리로 일단 한숨 돌린 레알이다. 물론 강등권의 데포르티보에게 챙긴 승리로 만족할 수는 없다. 계속해서 승리가 필요하다. 여전히 불안한 요소가 많지만 마르셀로와 베일의 활약 덕에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던 레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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