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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사람들은 이 숫자를 불혹의 나이로 칭한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불혹의 나이를 1년 앞둔 현 시점에서 나는 정녕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항상 젊은 20, 30대에 머무를 것만 같았는데 어느 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마흔이라는 숫자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발표된 어느 통계에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8세로 기록되었다. 인생의 절반이자 2차 성인기에 다다르는 시점이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일 뿐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주관적인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이가 달려와 안기며, 객관적으론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뿐이다.

융 심리학 서적이 새로 출간되었다
▲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융 심리학 서적이 새로 출간되었다
ⓒ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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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마흔들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나이와, 생물학적인 객관적 나이의 차이에서 괴리감을 느낄지 모른다. 내 나이 또래들은 부모님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 어려운 살림을 딛고 일어서 용이 되라는 압박을 종종 받았었다.

부모보다 나은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70, 80년대 경제발전이 혁혁하게 이뤄지는 그 당시엔 교육만이 전부인 것처럼 많은 부모들이 자식만 바라보고 사셨다. 그런 시대적 배경 덕분에 내 안에 내가 어디에도 없고, 대신 부모님이 내 안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은 마흔을 한 해 앞둔 시점에서 자신을 돌아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구이다. 또한 마흔 이후의 삶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제임스 홀리스'로 미국 워싱턴에서 융 학파 정신분석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마흔에 겪는 위기를 '중간항로'라 표현하며 이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기 위한 심리학적 가이드를 책의 곳곳에 제시한다.

'중간 항로'가 출현한 배경엔, 과거의 공동체적 의식과 달리 최근 들어 '개인'의 삶이 더 중요시 됐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혔다. 이는 인간이 예전보다 오래살기 때문만이 아니라, 삶을 결정하는 주체가 개인임을 서구사회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도 하였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중간항로는 우리가 '지금까지의 내 삶과 역할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 시작된다고 한다. 그간 누군가의 배우자, 부모, 가장 같은 제도화된 역할에 길들여져왔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투사한다. 부모가 권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부모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그런 삶이 아주 좋은 예이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과연 나는 누구인가?"를 묻게 되고 이때부터 마음속에 지진이 일어난다.  

책에선 저자의 지인을 예로 들었다. 박사학위, 가정, 저서 출판, 안정된 교수직까지 원하던 것을 28세에 모두 이룬 지인. 남들이 보기에 화려한 경력임에도 지루함과 기력 상실의 형태로 마음의 지진이 나타났다. 그렇게 잘 나가던 지인이 37세가 되던 해 우울증이 터져 삶의 의미를 잃게 되었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어쩌다 한 명쯤 이런 지인이 있을 법도 하다. 과연 인생 후반부를 보낼 최선의 방법이 이것이었을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오래전에 설파한 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일이 그들을 모욕하거나 의기소침하게 만들어서일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도 권태로 종종 괴로워한다. 내가 만나본 학생 중 상당수가 부모 또는 부모의 대리인 격인 사회가 원할 것 같다는 이유로 경영학이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스스로 원하는 걸 이뤄낸 사람이든 다른 사람의 욕구를 강요받은 사람이든, 자신의 경력이 지겨워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 시달리다가 이제 그만 다른 삶을 찾고 싶어 하는 회사 임원의 모습은 경력 사다리에 있는 모든 야심가의 내면에 있다." p61

모든 것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어야  

마흔에 찾아오는 괴리감과 위기는 환경을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새로운 연인을 찾는다거나, 직장을 옮긴다고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이 책에선 말한다. 자신 안에 있는 트라우마, 상처, 고통 등과 온전히 마주하고, 누군가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가끔 주위 사람들의 분노를 접한다. 평소 모습과는 다른 내면의 트라우마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슴속에서 뛰쳐나와 주위를 놀라게 한다. 이런 모습들의 이면엔 자신만의 우울, 불안, 자기 의심이 자리 잡고 있었을 거란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 책에선 자신만의 개성화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고독해야하고, 고독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나는 어떤 식으로 두려움에 빠져 나 자신과 내 삶의 여정을 회피하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모 또는 외부와 상호의존적 관계에 빠져 있는 성인은 이미 자신의 존재를 회피하는 방법을 배운 상태다. '내 감정과 접촉한다'는 말은 지겨울지 몰라도, 이 말은 정말로 우리에게 외부의 맥락이 아닌 내면의 현실을 토대로 자신을 정의하라고 요구한다. 다른 사람에게 반응할 때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기 어디에 내 부모의 존재가 숨어 있는 것일까?"라고 자문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개인의 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 유년기에 강한 트라우마를 겪을수록 우리의 현실감은 미성숙해진다. 현실을 파악하고 이를 기준으로 행동하기란 사실 매우 어렵다. 외로움을 무릅쓰고 고독 속에서 자신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중간항로를 무사히 거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p221

열정, 그리고 2차 성인기

주위에 연세가 지긋함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넘치는 분들을 본적이 있다. 이러한 열정은 중간항로를 무사히 빠져나오는 데 필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책에선 조각가 헨리 무어를 예로 들며, 아흔 줄에 들어서도 어떻게 왕성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열정이 많아서"라는 대답을 꺼냈다고 한다. 또 '열정을 찾아 따르는 것이 모든 걸 버리고 멀리 떠나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니며, 굳이 멀리 떠나지 않고도 현재의 삶에서 충분히 열정을 갖고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책에선 열정에 대한 자명한 사실을 몇 가지 언급했다.

1) 열정 없는 삶에는 깊이가 없다
2) 열정은 질서, 예측 가능성, 때로는 온전한 정신이게도 위험할 수 있지만 삶의 힘을 표현한다.
3) 깊이의 원형인 신의 요구로 열정이 우리에게 짐 지우는 삶의 거대함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
4) 스스로의 열정을 발견하고 따르면 개성화를 완성할 수 있다. p230

이러한 열정이 있다면, 그리고 앞에 언급한 대로 온전히 고독 속에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면 마흔 이후의 2차 성인기를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마흔 이후에도 내면의 소리보다 외면의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2차 성인기로 접어드는 시간이 그만큼 지체될 수밖에 없다. 2차 성인기는 1차 성인기와 달리 내면의 진실을 강조하는 데 있고, 융도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의식적으로 내면의 목소리가 지닌 힘을 따르는 사람만이 인격을 완성한다."

인격을 완성하지 않으면 1차 성인기에 겪었던 여러 콤플렉스에 영원히 지배당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이 책에선 말하고 있다. 마흔 이후의 2차 성인기를 앞두고 내 안의 내면 소리에 잘 귀 기울여야겠다.

덧붙이는 글 | 지은이 | 제임스 홀리스 James Hollis 옮긴이 | 김현철 발행일 | 2018년 1월 20일 분 야 | 교양심리, 인문일반 판 형 | 128×188 형 태 | 양장, 280쪽 정 가 | 17,000원 매입사 | 길벗 ‧ 출판사 | 더퀘스트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인생의 중간항로에서 만나는 융 심리학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더퀘스트(2018)


태그:##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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