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세계의 젊은 작가들, 평창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다> 국제인문포럼에서는 세계 문학의 미래를 맡게 될 젊은 유망 작가들을 초청하여 우정과 연대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국내외 참여 작가들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포함한 우리 삶의 전 방면에 걸친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분쟁, 그로 인한 고통을 문학을 매개로 조망한 후 이러한 시대에서 ‘평화’의 가치를 논합니다. 분단 기고글로 장강명 작가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세계작가대회 참가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장강명이라고 합니다. 이번 포럼에서 '분쟁' 또는 '분단'을 주제로 발표를 맡았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발표한 작품들이 사회 이슈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아마 주최 측이 저에게 이런 주제를 맡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포럼에 참여하거나 학술적인 글을 써 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참 고민했는데, 그냥 제가 요즘 준비하고 있는 연작소설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 작품을 구상하면서 우리 시대의 갈등과 분쟁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집은 가제가 <산 자들>이라고 합니다. 총 10편의 단편소설로 구성하려고 하고 있는데, 아마 내년이나 내후년 상반기에 책으로 낼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섯 편을 썼고, 네 편을 더 쓰면 됩니다.

이 작품집에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비인간적인 경제시스템입니다. 절벽 근처까지 몰린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데, 정작 싸움 당사자 중에 누가 나쁘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악인이 아무도 없는데도 심각한 분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알바생 자르기'라는 제목인데요, 어느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게 된 중간 간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의 사장은 잡무를 하고 있는 젊은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가 무능하다고 여기고 주인공인 중간 간부에게 해고를 지시합니다. 주인공인 중간 간부는 그런 지시에 복잡한 심정입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지가 아주 딱하거든요. 그런 한편 그 비정규직 근로자가 태도가 좋지 않고 그다지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은 그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입니다. 결국 주인공도 그 선택을 따르는데, 비정규직 근로자가 이에 강하게 저항합니다. 주인공은 그 저항에 대응하면서 점점 상대를 미워하게 됩니다.

두 번째 작품은 아직 쓰지 않았는데, 어느 중견 기업에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한 부서의 직원들을 구조조정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 하고 있습니다. 그 기업은 여러 가지 보상을 제시하는데, 그 보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고, 부족하지만 그나마라도 챙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부서의 직원들은 그 정도 보상이면 나쁘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들은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게 됩니다.

세 번째 작품은 대기업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산 자들'이라고 합니다. 생산성이 너무 악화돼 문을 닫게 된 공장이 있습니다. 회사는 큰 폭의 감원계획을 발표하고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합니다. 저는 이 단편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회사 대표의 입장도 설명해주려 했습니다. 회사를 살리려면 그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해고 대상자들은 이 계획에 반발하지요. 그래서 공장을 무력으로 점거합니다. 안 그래도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기업이었는데, 공장 점거 사태가 길어지자 정말 문을 닫게 될 지경이 됩니다.

공장 안에 있는 해고 대상자들의 저항이 너무 격렬한 나머지 정부에서는 이 문제에 개입하기 꺼립니다. 그러자 공장 밖에 있던 직원들이 '폭도들로부터 공장을 되찾자'며 직접 무기를 들고 나섭니다. 공장에서 쇠파이프로 무장한 직원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는 것이 이 단편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제가 이 작품집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여기고 취재하려는 분야에는 자영업이 있습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근로소득자가 적고 자영업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들 자영업자 상당수는 규모가 작은 식당이나 소매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근로소득자에 비해 여건이 불리합니다. 일단 피고용인이 아니라서 노동법에서 정한 여러 가지 보호조치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주일에 7일 일을 해도 누가 야근수당을 주지 않죠. 수입도 대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입니다.

저는 치킨집 아니면 빵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취재해서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치킨집 매장이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수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빵집도 이만큼은 아니지만 매장이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합니다. 모든 빵집 주인들이 이웃 가게들이 어떤 판촉 행사를 벌이는지,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지는 않는지에 굉장히 민감하지요.

아직 본격적으로 대상을 정하지는 않고 빵집 주인 한두 분의 이야기만 들은 정도인데요, 그 중 한 분은 바로 이웃 빵가게 주인과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 가게에 돌을 던져 창문을 깨고 싶은 충동도 몇 번 느꼈다고 합니다.

이 작품들을 준비하면서 저는 '거대하고 흐릿한 적'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과거 제 선배들이 쓴 현실참여형 소설에서는 우리가 저항해야 할 대상이 분명하고 단순하게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의 하수인이나 협력자들, 또는 탐욕스러운 자본가와 그 주변인들이 그들이었습니다. 선악의 구분이 명확했고, 강자와 약자가 싸울 때에는 더 그러했습니다. 강하고 악한 적들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묘사해도 충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풍자도 절실히 필요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 세대 사이 한국 사회는 어느 정도는 제도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뤘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억압하는 실체 역시 과거보다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억압이 제도 속으로 들어갔고, 그만큼 학문적인 깊이를 갖춘 이론이나 합리주의의 탈을 쓰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는 곧 사회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은 작가라면 전보다 훨씬 더 지적으로 성실해져야 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요?

저는 <산 자들>에서 독자들에게 어떤 정책 대안을 제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한국 사회가 얼마나 살기 힘든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비참함을 정확히 보여주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에 들어가서 마구잡이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고 훌륭한 전쟁 보도사진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유능한 종군기자라면 그 전쟁에 대해서도, 또 자기 카메라에 대해서도, 때로는 전쟁 보도사진이 매체에 실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할 겁니다.

어느 정도 제도화되고 민주화된 사회일수록 분쟁 현장에서 당사자들의 갈등 관계가 매우 첨예하고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규모가 크더라도 내용이 단순한 분쟁은 그 제도의 힘으로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겠죠. 남는 사건들에서는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인지, 어느 편이 가해자이고 어느 편이 피해자인지 뚜렷이 잡히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사연이 있습니다.

이런 분쟁 현장에서 당사자들은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을 적이나 악마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빵집 주인들에게 '왜 이렇게 당신의 삶이 고달파졌느냐'를 물으면, 십중팔구 이웃 빵가게의 비상식적인 영업 행태에 대한 거센 토로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때로는 작가가 오히려 그런 증언에서 거리를 둬야 작품이 핵심을 찌를 수 있습니다. 옆집 가게 주인을 타자화하는 대신 '왜 한 동네에 이렇게 빵집이 많은가, 왜 갑자기 중장년층이 너도나도 빵집을 열게 되었는가'를 궁금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나 산업구조, 고용시장에 대해 기초 지식이 없으면 그런 질문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쉽게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합니다. 분쟁 당사자들의 배후를 더 파고드는 자세는 좋습니다. 그런데 거쳐야 할 단계를 생략하고 갑자기 '이게 다 자본주의와 세계화 탓이다'라고 결론을 짓는다면, 저는 이 역시 안이한 타협이며 지적 태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하고 흐릿한 적을 거대하고 흐릿한 상태로 놔두는 일입니다.

이런 공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현장을 찾는 데에도 도움을 줄 거라 봅니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지금 자기 자신과 어마어마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기착취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모습들 역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이 현장은 다른 분쟁 현장과 양태가 매우 다릅니다. 도식적으로, 관성적으로 접근하면 그 양상을 정확히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나니 저 자신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인 양 포장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실은 저도 무식한 데다 게으릅니다. 특히 요즘의 사회 이슈들은 너무 복잡해서 따라가기조차 버겁다는 절망감을 종종 맛봅니다. 아이돌그룹에서 가상화폐까지, 우리의 삶과 가치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와 그에 따른 분쟁이 엄청나게 생겨나는데 제가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어떤 이슈에 대한 문학의 대응은 이미 제 다음 세대 작가의 손으로 넘어간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작가 소개]
장강명 작가는 연세대 공대 졸업 뒤 건설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 동안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로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장편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장편소설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 단편 <알바생 자르기>로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그 외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호모도미난스>,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과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썼다.


태그:#장강명, #분단, #세계작가대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