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영화 한 장면. 이세돌 9단이 대국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알파고> 영화 한 장면. 이세돌 9단이 대국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넷플릭스


2016년 봄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당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고 숱한 화제를 남겼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대중매체들은 특이점을 둘러싼 논쟁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상당부분 대체하게 될 근미래에 관한 전망들을 앞다투어 소개하기 시작했다. 대중의 반응은 대부분 낙관과 우려가 뒤섞인 것들이었는데, 핵심은 인공지능 발전이 과연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의 문제였다.

최근 넷플릭스가 출시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알파고>(AlphaGo, 감독 그레그 코스)는 인공지능 알파고를 만든 기업 딥마인드가 이세돌 9단과 대결을 추진하기까지 과정 그리고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다섯 번 치열하게 맞붙은 열전의 현장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이 대결이 어떻게 진행됐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당시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한 내용이 많다 보니 영화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건 아무래도 새로운 쪽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지켜보던 딥마인드 연구진의 반응을 담은 장면들이다. 당시 막후에 있었고 덕분에 각종 매체를 통한 노출이 적었던 사람들인지라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알파고가 1국에서 승리를 거뒀을 때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환호하던 이들은, 이세돌 9단이 내리 세 번을 내리 패하자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복잡한 표정이 된다. 한 스태프는 이겨서 좋지만 안타깝기도 해서 축하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역시 인간인지라 일종의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이세돌 9단이 극적인 승리를 거둔 4국에서 이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세돌 9단의 묘수에 알파고가 어처구니 없는 수를 연이어 두자 난감해하면서도, 이를 유도한 이세돌 9단의 천재성에 경이로움을 표시한다.

알파고가 기권하기 직전 이들이 대국 상황을 모니터하며 나눈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이세돌 9단이 둔 수는 만분의 일 확률을 뚫고 나온 수였고, 그 수를 두기 전까지 이세돌 9단이 이길 확률은 0.007%였다는 것이다.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은 이를 '신의 한 수'라고 불렀다.

알파고와 다섯 차례 대국을 끝낸 후 이세돌 9단은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바둑의 창의성이 일정한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바둑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말을 남긴다. 바꾸어 말하면 알파고 덕분에 그가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긍정성 강조 하지만...

 영화 <알파고> 포스터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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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와 관련하여, 기계 덕분에 인간성이 확장됐다거나 알파고가 인간들에게 바둑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등 각계 전문가들의 발언을 보여준다. 대부분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긍정적인 가능성에 방점을 둔 것들이다. 이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 영화의 전반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이런 입장들은 딥마인드와 알파고 연구진들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알파고가 인간의 직관을 흉내 내는 알고리즘에 불과하며, 알파고의 성과는 결국 인간 창의력의 승리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완곡어법을 쓰는 것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이들 주장처럼 인간 지능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를 인공적으로 재현해서 온갖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하기까지는 위험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 알파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알파고의 사고체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해할 수 없으면 예상할 수도 없다. 문제는 바둑 경기를 지켜보던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알파고를 만들어낸 딥마인드 사람들마저 이런 말을 자주 내뱉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고체계와 능력을 가진 '존재'를 만들었는데, 인간이 그 '존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에 등장하는 한 과학자는 알파고를 두고 터미네이터보다는 스마트 세탁기에 더 가깝다고 이야기했지만, 인공지능의 불가해한 측면은 인류의 미래에 불안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알파고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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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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