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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학할 국가를 결정할 때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영어 공부 욕심. 학생 때 영어는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어떤 문제건 간에 가장 먼저 영어로 논의해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은 뒤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쓸 수 있으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군대 문제. 현역 1급이자 게이인 나는 다가올 징집이 두려웠다. 군형법 92조의6 이 존재하는 한, 군대 내 오픈리 게이는 존재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이다. 벽장에서 나와 숨통이 트인지 몇 년 채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내 존재를 숨기는 건 끔찍하게 싫었다. 그래서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해외로의 이민이나 망명을 생각하게 되었고, 캐나다가 이민자나 성소수자 의제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기 때문에 이곳을 선택했다.

토론토 퀴어 페스티벌. 토론토에서 가장 크고 붐비는 시내 중심부를 전부 통제하고 행진한다.
 토론토 퀴어 페스티벌. 토론토에서 가장 크고 붐비는 시내 중심부를 전부 통제하고 행진한다.
ⓒ 정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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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퀴어, 나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유학원을 통해 계약했던 홈스테이(현지인 가정에 월세를 내고 들어가 사는 것)에 들어갔는데, 백인 할머니 두 분과 강아지 두 마리만 있는 집이었다. 진짜 할리우드 가족영화에 나올법한 구김 없고 화목한 중산층 백인 가정이었다. 가자마자 할머니들한테 커밍아웃을 했는데 "이 곳에서 게이인 건 전혀 문제도 아니다"라며 캐나다다운 반응을 보이셨다.

두 분은 모두 내가 봐왔던 한국 노인들과는 다르게 사회 문제, 페미니즘, 인권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다. 한국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여성 차별이 어떤지 물어보기도 하시고, 반대로 내가 캐나다의 상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일 년 가까이 할머니들과 그렇게 살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 시사 공부도 하고, 영어도 늘었다.

6월에는 퀴어 축제가 있었는데, 한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성대하고 크게 치뤄졌다. 마치 크리스마스 시즌에 장식을 다는 것처럼, 축제 시즌에 캐나다 길거리에선 다양한 무지개 장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퍼레이드는 총 3일 동안 세 번 열린다. 각각 정치적 메세지를 담은 비공식 퍼레이드, 여성 퍼레이드, 공식 퍼레이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 날 퍼레이드에서는 저스틴 트뤼도 총리도 같이 행진했는데, 이 나라 국민들이 참 부러웠다.

그 밖에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퀴어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대학 배치고사를 보는데 성별 선택란에 남성·여성 이외의 것을 선택하는 칸이 있고, 대학 도서관 남자화장실에선 '남성으로 정체화 하는 모든 사람, 혹은 트랜스젠더 퀴어인 사람은 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문구를 담은 안내 포스터를 찾아볼 수 있었다.

남성으로 정체화 하는 모든 사람, 혹은 트랜스젠더퀴어인 사람은 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음. 우리는 모두가 맞는 화장실을 고를 권리를 존중함.
 남성으로 정체화 하는 모든 사람, 혹은 트랜스젠더퀴어인 사람은 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음. 우리는 모두가 맞는 화장실을 고를 권리를 존중함.
ⓒ 정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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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캐나다의 모습

앞에서 서술했던 것들은 가기 전에도 내심 예상했던 것들이었는데, 캐나다에 와서야 알게 된 의외의 부분들도 있었다. 처음 도착해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대다수의 캐나다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잘 이해하고,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이고, (미국과는 달리) 개별 문화의 다양성을 그대로 존중한다. 이는 국가가 통일된 사상이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역설적이게도, 이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인종, 문화별로 크게 차이가 난다. 백인 문화권에서 가지는 성소수자 포용성은, 유색인 성소수자들이 있는 계층까지 닿기는 어려워 보였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만난 히스패닉, 동양인 퀴어들의 경우 모두 클로짓(성소수자임을 밝히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아무리 캐나다에 왔더고 하더라도, 이민자 가족과 커뮤니티의 사고방식은 출신 문화권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캐나다에서 태어난 백인들의 경우 이미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끝내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몇 년 전 다양한 젠더와 성적 지향을 포함하는 성교육을 법제화 하는 과정에서 '다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이민자 차별이다'라는 혐오세력의 공격에 결국 통과가 무산된 적도 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을 하며 미국 PFLAG(성소수자의 부모, 가족, 친구 등의 단체)에서 한국계, 동양인 부모들의 커뮤니티를 따로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캐나다에서 살면서 그런 활동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아직 일 년 밖에 살지 않았고, 이 사회에서 정확히 내가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그간 한국에서 접한 것과는 다른 이슈나 사람들을 만났고, 대부분이 색다른 경험으로 남았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많은 캐나다 소식을 전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웹진 <너나우리 랑 : http://lgbtpride.tistory.com/>에 중복게재된 글입니다.



태그:#성소수자, #캐나다, #혐오,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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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는 1997년 출범하여, ‘실천’과 ‘연대’라는 주요한 활동원칙 아래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이 존중 받을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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