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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교토대본(1910년 재현)
▲ 강리도 강리도 교토대본(1910년 재현)
ⓒ 교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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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흔히 현실이 소설보다 더욱 허구 같다는 말을 하고 또 그런 걸 경험하기도 합니다. 바로 1402년 조선시대에 제작된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를 실감해 보기 위하여 타임머신을 타고 강리도가 탄생했던 1402년으로 돌아가 봅니다.

조선이 개국한 지 꼭 10년 째 되던 해입니다. 바다로 시선을 돌려 보면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명나라 정화가 대항해의 서막을 올릴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아직 원정 항해를 꿈도 꾸지 않고 있을 때입니다. 서양인들이 아프리카 남단의 바다를 보려면 아직 86년이 더 흘러야 합니다. 우리가 배워 온 서양 중심의 세계사가 말하는 지리상의 대발견이 시작되려면 아직 100년도 더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1402년은 서양인들의 세계지리가 깜깜했던 시절입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를 읽고 공상을 해 보는 정도였지요.

만일 그 시점에서 유럽인이 만든 지도에 지구 반대편의 한반도가 그려져 있고 거기에 한양, 개성, 평양, 경주 등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지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 우리의 시선을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 한반도로 가져가 봅니다.

만일 그 시점에서 한양에서 붓으로 그린 지도에 지구 반대편의 이베리아 반도가 그려져 있고 그곳의 주요 지명들이 기록되어 있다면?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 메카, 바그다드, 카이로 등도 기록되어 있다면?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수백 개의 지명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요. 그런데 그게 사실임을 강리도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보다 더 허구 같은 진실을 우리가 지금 들여다 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해에 우리는 강리도에서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명들을 찾아 보았고 나사렛과 예루살렘을 또한 찾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이 서양 고지도에 나타나는 모습을 좀 더 살펴보고 이어서 이란의 시라즈와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강리도에서 찾아봅니다.

예루살렘은 중세 서양인의 세계상 속에서 중심을 차지합니다. 아래 지도를 봅니다.

1300년 경 영국 제작
▲ 히어포드 세계도 1300년 경 영국 제작
ⓒ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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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300년경 송아지 가죽에 그려진 이 지도는 현재 영국의 헤리퍼드(Hereford) 성당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세계 지도의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헤리퍼드 세계지도(Hereford Mappa Mudi)의 크기는 우리의 강리도보다 조금 작습니다(1.58m x 1.33m).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 지도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중세 서양 지도의 전통에 따라 동쪽을 위에 두었습니다. 또한 실제의 세계를 나타내는 게 아니고 기독교 신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주요 표식만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중세 서양지도
▲ 히어포드 세계도 중세 서양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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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중앙을 자세히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예루살렘
▲ 예루살렘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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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정 중앙에 기독교 세계의 상징적 중심이 놓여 있다. 이 도시의 바로 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붉은 글씨로 적혀 있는 예루살렘은 16개의 총안(銃眼)을 지닌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에는 8개의 탑이 있으며 중심부는 성묘 교회(예수님이 묻혀 있다가 부활하신 장소)이다. -Jerry Brotton 58쪽


참고로 전체 지도에서 주요 표식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영국 섬들 British Isles
2: 예루살렘 Jerusalem
3: 괴물 인간들 Monstrous peoples
4: 예수 Christ
5: 에덴 동산 Garden of Eden
6: 식인풍습 Cannibalism
7: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타 해협의 바위) Pillars of Heracules
-Jerry Brotton 58쪽


이 지도 외에도 여러 지도가 예루살렘을 가운데 두고 있습니다. 근세 초 서양 지도 하나를 봅니다.

예루살렘이 중심
▲ 서양 고지도 예루살렘이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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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년에 만들어진 세계지도입니다. 과학적인 지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나름 독창적인 방식으로 세계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도의 이름은 <클로바 잎새 속의 세계(The Whole World in a Cloverleaf)>.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이 중앙의 예루살렘를 둘러 싸고 있습니다. 제작자는 독일의 개신교 목사이자 신학자인 하인리히 뷘팅(Heinrich Bünting). 

이런 지도는 웃어 넘길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현대인들도 마음속에 각자 나름의 세계상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달리 말하면 세계지도는 지구과학의 영역이지만 '세계'는 마음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지구상에는 인간의 수만큼 서로 다른 세계상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강리도로 돌아옵니다.

이 글의 앞머리에 올라 있는 지도는 1910년에 교토대에서 만든 강리도의 모사본입니다.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1402년 우리 선조들이 만든  강리도를 보고 있습니다. 교토대본은 놀라울 정도로 정도로 선명합니다. 연구 학습용으로 적격이랄 수 있습니다.

이제 아래에서 교토대본의 부분도를 보겠습니다.

지리 형세를 살펴보자면, 먼저 왼쪽 아래 방향에 파고다가 보입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표시한 것으로서 그 일대는 지중해입니다. 바다 색깔이 누락되어 있으므로 상상으로 그려 넣어야 하지요. 오른쪽 맨 위에는 카스피해가 나타나 있습니다. 우 하단의 바다는 페르시아해입니다.

이제 네모 테두리를 두르고 있는 지명들에 눈길을 줍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습니다. 이 별들이 우리의 탐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부분도
▲ 강리도 부분도
ⓒ 교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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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에서 우리는 이미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나사렛, 다마스커스 등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푸른색 원). 이번 행선지는 이란(페르시아)의 시라즈(Shiraz), 이리크의 바그다드(Baghdad).

먼저 포도주와 시와 정원의 도시라는 시라즈를 찾아갑니다(아래 현대 지도).

이란의 시라즈
▲ 시라즈 이란의 시라즈
ⓒ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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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즈는 유서 깊은 고도로서,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포도의 이름으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피즈(Hafiz, 1274~1348)의 고향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하피즈는 미국에서는 에머슨이, 독일에서는 괴테가 극찬하고 소개하여 더욱 유명해진 불멸의 시인.

장미는 어떻게
가슴을 열어
제 모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주었을까?
-하피즈 <모두 다 꽃>-


이제 시라즈의 지리형세를 살펴봅니다. 이란의 남서부, 카스피 해에서 아래쪽으로 수직의 방향, 그리고 페르시아 만에 인접해 있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강리도에서 찾아 봅니다. 유사한 위치에서 시라즈 혹은 쉬라즈라는 발음과 유사한 한자 지명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조건에 잘 부합하는 지명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위 지도에서 붉은 네모).

失剌思! 중국어 발음으로 Shiles! Shiraz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 중국인들은 이곳을 设拉子(shè lā zǐ)라 부르는데 오히려 15세기 강리도의 발음이 더 근사해 보입니다.

이제 바그다드로 갑니다. 먼저 현대 지도를 봅니다.

티그리스 강변
▲ 바그다드 티그리스 강변
ⓒ besttabletfor.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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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는  이처럼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의 흐름을 살펴보면, 바그다드를 지난 다음 두 갈레로 갈라져 흐르다가 다시 하나로 합류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제 강리도에서 바그다드를 찾아봅니다(아래).  

바그다드 지명
▲ 강리도 바그다드 바그다드 지명
ⓒ 교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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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원의 '六合打'가 실제 지리와 놀랍도록 부합니다. 그런데 중국어 발음이 '류허타'. 바그다드와 상당이 다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六은 八의 오자임에 틀림 없습니다. 다른 세 종류의 강리도 버전에는 모두 '八合打(Baheta)'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바그다드(Baghdad)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 중국어로는 巴格达(bāgédá).

바그다드는 역사 속에서 9세기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이 가장 이채롭습니다. 남과 여, 여러 종교인, 여러 피부와 복장을 지닌 사람들이 격식없이 모여서 대화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혜의 집'의 모습을 아래 그림에서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바그다드 <지혜의 집>
▲ 바그다드 <지혜의 집> 바그다드 <지혜의 집>
ⓒ Muslim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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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통치자)들은 고대 바빌론 북쪽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바그다드에 수도를 세웠다. 그들은 마치 소중한 보석을 수집하듯이 학자들을 수집했고, 결국 '지혜의 집'에 그러한 학자들을 결집시켰다. '지혜의 집'은 일종의 연구기관으로 그 첫 번째 임무는 세계의 지식을 수집한 후 그것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9세기 초 이곳의 수학자 무하마드 알 콰르즈미는 대수학(algebra)을 개발했다. '대수학'은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철학자 야쿱 알 킨디는 환경보호 운동을 주제로 한 최초의 논문을 썼다. 그는 그리스 철학과 이슬람 신학의 융합을 도모했다. 의학지식은 페르시아로부터 바그다드에 전해졌고, 제지 기술은 중국의 전쟁 포로들에 의해 바그다드로 전해졌다. 이 60여 년의 황금 같은 기간에 달성된 빛나는 성취들은 바그다드를 중동과 어쩌면 세계의 지성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도시의 승리>, 이진원 옮김, 52-53쪽


"'지혜의 집'은 명성, 위상, 범위와 규모, 자원, 후원 등에 있어서 오늘날의 영국 국립 도서관 혹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다 학자들이 대화, 토론 담론을 위해 만나는 과학예술원을 합친 것과 같았다. 여기에서 번역가, 과학자, 필사가, 작가, 문인, 필경사 등이 매일 만나 번역, 독서, 집필, 필사, 문답, 대화, 토론을 했다. 사용된 언어는 공통어(lingua franca)로서 아랍어를 비롯하여 페르시아어, 히브리어, 아람어, 시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가 사용되었고 종종 인도의 천문학과 수학 서적을 번역하기 위하여 산스크리트어가 사용되었다." -Subhi Al-Azzawi


'지혜의 집'을 받쳤던 세 기둥은 개방성, 세계성, 혼혈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훗날 종교적 독선, 배타성과 순혈주의라는 빗장이 채워지자 <지혜의 집>은 폐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되새겨 볼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다음 호에서는 카이로를 비롯한 나일강 유역의 도시를 강리도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앞서 나그네와 한오공이 이야기를 병행하는 '쌍궤병행'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이제 한오공은 여기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놀이터를 NAVER 웹소설 <혼일 세계도>로 옮겼습니다(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702592).



태그:#강리도, #예루살렘, #고지도, #시라즈, #바그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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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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