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분들이 이렇게 되묻습니다. 한반도 평화에 도움된다는 제 주장에, 1991년 단일팀이 평화를 가져왔냐고 말이지요. 그에 대한 제 대답은 '예'입니다.

2.
일단 그 전에 평화라는 것이 0 아니면 100, 올 오어 낫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제 글을 더 안읽으셔도 되겠네요. 평화는 가장 이상적인 100을 향해 가는 여정인데, 곧장 0에서 100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즉 여러분들이 원하시는대로 북한이 당장 비핵화 선언을 한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3.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쟁하자고요? 그런 사람은 그만 읽으셔도 됩니다. 제 답은 이렇습니다. 잘 어르고 달래야죠, 구슬려야죠. 비핵화를 하는 것이 너희에게도 이득이라고 말해야지요. 비핵화라는 목적지로 한발 한발 옮기게 해야죠. 이명박근혜 9년은 그 목적지 앞에서 뒷걸음질치게 했고요. 아무튼, 북한의 비핵화에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둔 순간이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치적,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이 있고요, 멀리는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글에서 말할 1991년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이하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남북)공동선언'(이하 비핵화선언)이 있습니다.

4.
이쯤해서 그런 것들 맺어놓아 봤자 결국은 북한의 도발을 막지 못했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군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안보는 크게, 탄탄한 국방력과 치열한 외교적 협상이라는 두 가지 수단으로 확보됩니다. 외교적 협상의 결과물은 국제 사회에서 북한의 입지를 약화시키며, 북한의 돌발행동을 조금이라도 더 제약하는 족쇄로 작용합니다. 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고려하게 만들고, 도발의 횟수나 규모를 줄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물론 100% 완벽하게 범죄를 예방하면 좋겠지만 불가능하죠. 범죄를 상당한 수준으로 줄인 것만으로도 그 경찰서장은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5.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NLL(북방한계선)을 외교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기본합의서에서 남북이 그렇게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래서 이 얘기가 나오면 꿀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북한이 NLL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을 때,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비난할 수 있던 것은 바로 91년 기본합의서가 있었던 덕이지요. 그리고 여러분, 세계가 북한의 핵보유 움직임에 비난하고,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중에 하나는, 바로 남북간에 체결된 비핵화선언 덕입니다.

6.
그리고 비핵화선언 덕에 더 효과적으로 여러 나라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국제 사회의 제재가, 100% 문재인을 지지하는 미국과의 공조가,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개객기의 항복선언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북한의 항복선언은 바로, 대화의 장으로 나오겠다는 언급입니다. 지금 보세요, 예전 단일팀은 남북 반반이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몇 명을 추가할지 알아서 결정하고 선수 기용 권한도 91년과는 다르게 우리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북한과의 합의 내용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협상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었다는 말이 됩니다.

7.
미안합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단일팀이 합의되어서요. 아니, 갑작스러운 것처럼 보여서요. 우리 정부는 대통령이 북한의 장웅 IOC위원이 참석한 무주의 행사장에서, 작년 6월에 이미 정식으로 공개적으로 남북 단일팀을 제안했습니다. 이 때를 전후해 정부는 IOC와 IIHF(국제아이스하키연맹), 북한까지 포함해 다각도에서 단일팀을 위해 논의했습니다. 그 와중에 북한의 항복선언을 받아내기 위해서 충실하게 효과적으로 제재와 압박을 가했습니다. 북한으로부터 항복선언을 받아내는 게 오래 걸려서 그렇지, 단일팀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시작된 시점은 대통령의 공개제안을 기준으로 해도, 민주당정부 출범 한달 반만의 일이었습니다.

8.
저는 도리어 그래서 국민께 감사드립니다. 만약 촛불혁명으로 박근혜를 몰아내지 않았다면, 무능하고 비열한 박근혜 정권은 평창올림픽을 단일팀을 포함한 평화의 장으로서 활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박근혜가 단일팀에 합의했더라도 저는 어지간하면 찬성했겠지만, 아마 그 조건은 이번 우리 정부가 얻어낸 조건에 한참 못미쳤을 것입니다. (물론, 정부가 협회와 선수들을 대상으로 충분하게 설명하고 설득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큰 잘못입니다. 외교 사안이라 확정 전에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점이 있었겠다고 짐작은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마음을 돌보는 노력이 더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
다시 돌아와서,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 대남 강경파와 대남 대화파가 있습니다. 단일팀은 북한에서 대남 대화파의 입지를 강화시킵니다. 북한 내 강경파들이 모험주의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광견 입에 물린 재갈 정도 될까요. 그렇게 길들여서 이 개새끼랑 공존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놓인 미션이지요.

10.
구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1991년으로 돌아가 보죠.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의 협상장에서, 막히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협상이 진전될 것 같지 않아 깨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돕니다. 이 때 남측 대표가 얘기를 꺼냅니다. "우리가 탁구에서 우승했듯이 호흡을 잘 맞춰서 성과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우리나라보다 국뽕, 민족뽕이 강한 사회입니다. 북측 대표는 민족뽕을 맞고, "그래 우리 여기서도 성과를 내 봅시다" 하면서 다시 협상은 재개됩니다. 제가 그 협상장에 없어서 대사가 정확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협상을 진행할 때 단일팀이 윤활유가 되었으리란 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11.
특히 북측 대표의 민족뽕이 더 강한 것은 우리의 협상조건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기본합의서가 체결된 이후, 북측 대표 중 한 사람은 남한의 의중이 90% 이상 반영되었다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NLL 아래를 우리 영해로 확정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 우리가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단일팀이 없었으면 과연 우리 의중이 이렇게까지 많이 반영될 수 있었을까요?

12.
단일팀은 북측 대표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북한 주민들은 단일팀을 통해 '북한 선수만'을 응원하지 않고, '남한 선수도' 응원하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이번 단일팀은 북한에 대대적으로 생중계될 가능성이 높고, 북한 사회의 특성상 시청률은 90%가 넘을 겁니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 국민들에 대해서도 '우리'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여러분은 '우리'라고 강하게 인식되는 대상에 대해서 도발이나 공격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이 남한에 직접적으로 도발한 것은 역사적으로 대부분, 남한에 대해 '우리'라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감퇴되었을 때 발생했습니다.

13.
정리합니다. 1991년 단일팀은 같은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남북공동선언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때 이뤄진 두 개의 남북 합의가, 우리가 NLL을 주장하고 북핵 문제를 두고 대북 제재를 실행할 수 있는 핵심 근거가 됩니다. 대화는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에, 북한의 나쁜 행동을 제약해 온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끈질기게 노력하면, 완전한 북핵폐기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북핵폐기를 원한다면 전쟁을 하면 되겠지만, 여러분들이 그걸 원하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정녕 북핵 때문에 조마조마한 지금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까?

0.
원래 3편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분량이 넘쳐서 4편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4편에서는 이것을 국가와 개인의 대립구도로 보는 것에 반대하며 평화가 결국 개인에게도 좋음을 말하겠습니다. 남북단일팀에 북한 선수들의 참여를 '정유라' '채용비리'로 비유하는 일베 벌레들의 논리를 논파하며, 한반도 평화의 길에 있어서 남북이 같은 공동체로서 화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할 예정입니다.

이 글의 1편에서는 찬성하는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글의 2편에서는 주요 반대 논리 세 가지에 대해 논파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3편은 "단일팀이 실제 한반도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증거"를 알려달라고 하신 분들에 대한 답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