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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이런 심리를 활용한 산업도 있다. 행복에 관한 많은 서적들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마음을 비우고 쓸모없는 물건을 치워라,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의지를 키워서 열심히 살아라,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힐링의 기회를 가져라 등 다양한 조언을 권한다.

하지만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조언하고 행복해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왜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행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말하면서도 정작 인간이 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 행복에 대한 how(어떻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를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why(왜 행복을 느끼는가)를 말하는 사람은 적다는 말이다.

행복의 기원
 행복의 기원
ⓒ 서은국, 행복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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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은 심리학자인 연세대 서은국 교수가 행복의 기원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 말하는 대신 인간이 행복이라는 경험을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행복에 관련한 많은 서적의 저자들은 인간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좋은 행동을 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라고 권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접근법을 취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의 관점에서 행복을 설명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때로 이런 접근법은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이 엄연히 다른 데도 둘을 혼동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대신 저자가 채택한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다윈의 관점에서 행복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철저하게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행복을 분석한다. 인간이 문명을 이룬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오랜 세월 문명과 상관없는 사회에서 살아왔으며, 동물적 요소와 본능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아왔다.

인간은 동물의 한 종류이며, 행복은 이런 인간에게 주어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고,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에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생명체가 가진 모든 생김새와 습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초기의 인류는 혼자서 살 수가 없는 존재였다. 집단으로부터 소외되거나 고립되면 살아남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사회적인 사람들이었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자원 중 하나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 쾌감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녔으며, 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행복감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저자는 이외에도 행복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행복에 관한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물론 물질적 결핍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결핍이 사라진다고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성격이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다름 아닌 유전이다. 저자는 가장 큰 행복의 변인은 바로 '유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전의 영향은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요인을 모두 합한 것과 비슷하다고 하니, 전체 요소의 절반 정도 되는 셈이다. 유전의 영향이 절반이나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전이 매우 큰 영향을 지니는 요소임은 확실하다고 한다.

유전과 행복을 연결시켜주는 키는 바로 '외향성'이다. 사람은 부모에게서 받은 유전적 조합에 의해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기질은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인 모양을 잡아가는데, 이것이 성격 특질이다. 사람이 가진 다양한 성격 특질(외향성, 신경증, 성실성, 개방성, 원만성 등) 중에서, 행복과 가장 깊은 관련을 가진 특질은 외향성이라고 한다.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많이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외향성이 행복 연구에서 그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한마디로 행복과 가장 손을 꼭 쥐고 있는 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연구된 그 어떤 다른 특성도 외향성만큼 행복과 관련 깊은 것이 없다. 사실 이 둘이 맺어지게 된 순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반대다. 최근 행복 연구를 통해 외향성이 부각된 것이 아니라, 30년 전 성격 연구 과정에서 외향적인 사람들이 유난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실수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 -138~19P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행복해지기는커녕 인간이 가진 동물로서의 한계와 유전이 갖는 영향력 때문에 오히려 우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모든 것이 유전에 의한다고 말하고 있지도 않으며, 외향성 예찬론을 펼치는 책도 아니다.

그냥 저자는 담담하게 심리학계에서 행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설명할 뿐이다. 어떻게 행복해지느냐에 대한 수많은 책들 대신, 인간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한 책을 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21세기북스(2014)


태그:#행복, #심리, #인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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