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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납입시 연 이자 25% 지급, 원리금 전액 보장!"

지난 1996년 3월, 부산지역의 각 일간신문 전단에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방송에도 버스에도 택시에도 현수막에도, 부산 시내는 온통 눈만 돌리면 이 광고였다. 정부가 부실 금융기관들을 강제 퇴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슬슬 나오던 때였다. 연 이자를 25%를 준다는 다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허황한 배당조건이었다. 그러나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던 서민들은 그저 솔깃했다.

예탁을 받는 사무실과 창구는 시중의 금융기관보다 더욱 으리으리했다. 창구는 멋진 인테리어에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상냥하게 반겼다. 기업체는 물론 시장 노점상도 회사원도, 게다가 평생 교사로 일해 받은 퇴직금까지…. 그야말로 '묻지마' 투자 열기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수많은 서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이른바 '파이낸스 사태'의 종말로 귀결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파이낸스(Finance)'라는 다소 모호한 이름으로 부산에서 시작된 투자유치 방법은 제도권 금융기관을 불신하는 서민들의 투자 공백을 교묘하게 공략했다. IMF 사태 직후인 1998년 부산 지역 4개 종금사와 동남은행 등이 퇴출된 상황에서, 제도권이 결코 보장하지 못하는 높은 이자를 제공한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정부는 IMF 직후 직접적인 규제와 감독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상대적으로 투자정보에 무지한 서민들에게 파이낸스가 마지막 희망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터질 것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파이낸스는 법과 제도로부터 아무런 보장을 받을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3년을 버티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무너졌다. 1999년 이른바 '삼부파이낸스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삼부는 전국에 54개의 지점과 국외법인을 세울 정도로 성장한 업계의 선두주자였다.

IMF 이후 부산 서민의 삶 속에는 '파이낸스 사태'가 있었다

1999년 9월 20일자 <매일경제> 파이낸스 사태 관련 기사
 1999년 9월 20일자 <매일경제> 파이낸스 사태 관련 기사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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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와 벤처캐피털, 부동산개발 등의 자회사를 설립하고 영화산업과 부동산 개발 등에 투자하며 신뢰를 쌓아갔다. 특히 영화 <용가리>, <엑스트라>, <짱> 등에 유례가 없던 거액을 투자하여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수 투자금이 경영진의 비자금으로 빼돌려졌고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당하는 불안한 성장을 거듭했다.

결국, 영업개시 3년 만에 이러한 방만한 사업확장과 경영진이 거액의 고객 돈을 횡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금 인출 사태에 빠지고 말았다. 당시 부산에서만 90여 개의 파이낸스 사가 성업 중이었으며 약 3만~4만 명의 서민들이 2조~3조 원을 맡겼다.

삼부파이낸스 횡령 사태가 전해지자 업계에는 신규 유치가 갑자기 중단됐다. 이윽고 고객들의 중도인출 요구가 이어졌다. 결국, 전국의 파이낸스업계는 너나 할 것 없이 유동성 부족에 빠졌고 모두 도산했다. 이후 파이낸스 사태로 피해를 본 서민들은 지금까지 단 한 푼의 돈도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파이낸스는 5천만 원의 자본금만 있으면 설립이 가능한 상법상의 회사라, 망하더라도 제도권으로부터 단 한 푼의 예금도 보존 받을 수 없었다. 유사수신업체는 법적으로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기에, 한방에 쏟아 넣은 서민들의 전 재산이 모두 날아간 것이다.

알려진 것만 2조~3조 원이지 집계되지 않은 피해 금액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물가인상 폭을 고려한 지금의 값어치로 따지면 수십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혹시라도 소송에 이겨 원금이라도 회수하려 해도 차일피일 미루며 회사를 분해하면 한 푼도 건질 수 없었다.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모험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투자냐 투기냐?'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름조차 생소한 '비트코인'의 광풍이 이어지고 있다. 평생을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는 현실에서 서민들의 새로운 탈출구로 '비트코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은 힘들고 살림살이는 궁핍하고 믿을만한 마땅한 투자수단도 없다. 게다가 정부의 대처는 연일 오락가락한다.

지금의 상황은 어쩌면 '파이낸스 사태'를 전후한 그때와 어쩜 그리도 똑 닮았는지 모르겠다.

믿을 수 없는 수익을 자랑하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에는 오로지 시세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의 '묻지마' 투자 열기가 매일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뉴스와 방송은 물론 술자리에서도 비트코인 이야기는 한시도 빼놓지 않고 듣는다. 술자리 옆 테이블에서조차 비트코인으로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벼락부자들의 무용담이 들려온다.

"누구는 몇 달 전에 시작해서 벌써 돈이 몇 배로 불었다지?"로 시작한 대화는 결국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로 이어진다. 세대가 바뀐들 투자의 기본과 원칙에는 결코 변함이 없는 이 나라. 20여 년 전 파이낸스 사태를 몸소 체험한 나로서는, 이 비트코인 덕에 대한민국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인생역전'이 아니라 '버블'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면?

그렇다면 최근의 비트코인의 광풍은 어떻게 봐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트코인의 열기는 서민들이 인생 역전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금수저들만이 잘 사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비트코인 광풍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상승 탄력은 물론, 최근의 끝없는 추락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버블'과 '붕괴'의 패턴을 보인다. 군중심리부터 비이성적 과열, 가격 폭락까지 파이낸스 사태가 거친 '버블'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어디 파이낸스뿐인가. 비트코인의 등락 패턴을 기존의 다른 '버블+붕괴' 사례에 비춰 살펴보자.

우선 1999~2000년의 인터넷기업 주식,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의 금 시세, 1980년대 후반 일본 주식의 가격 변동 흐름과도 매우 비슷하다. 아니, 비트코인 곡선이 더욱 가파르다. 오히려 파이낸스 사태뿐만 아니라 과거 닷컴버블 붕괴, 2003년 신용카드 및 2004~2005년 바다 이야기 사태에 버금가는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이렇게 된다면 문제는 비트코인의 광풍도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결국 박탈감과 불신만을 남길 가능성도 높다.

다시 1999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파이낸스 사태는 정부의 책임회피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금융감독원과 재정경제부 등 관계 당국은 파이낸스의 성업과 불법을 알면서도 방관했다. 인출 불능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와중에도 "상법상의 주식회사라 개입을 할 수 없다"는 입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러나 결국 수만 명에 이르는 파이낸스 투자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만 해도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2012년에는 금융감독원의 허가 없이 유사수신행위를 하던 전국교수공제회가 횡령으로 인해 결국 파산까지 신청했다. 퇴직할 때 20% 이자 지급을 해 준다고 약속하고, 전형적인 '폰지사기'(앞순위 투자자가 고수익을 미끼로 뒷순위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으로 원리금을 지급하다 일이 터진 것이었다.

운영진들은 지난 2010년부터 2년간 교수 5천여 명으로부터 장기공제 적금 등 명목으로 6770여억 원을 받아 이 중 560여 억원을 횡령했다고 알려졌다. 피해자 대부분은 전·현직 교수들이었고, 이들 중에는 법대 교수들까지 피해를 봤다. 법의 심판을 받긴 했지만 사기가 아닌 횡령에만 해당돼 별도의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거품 빠진 파국만은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가상화폐 관련주들이 11일 동반 급락했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에스트레뉴빌딩에 있는 가상화폐 오프라인 거래소 코인원블록스의 대형 전광판에 표시된 동반 급락한 비트코인 시세표를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 '어디까지 내려가나...'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가상화폐 관련주들이 11일 동반 급락했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에스트레뉴빌딩에 있는 가상화폐 오프라인 거래소 코인원블록스의 대형 전광판에 표시된 동반 급락한 비트코인 시세표를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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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투자의 전형적인 양상은 대규모 피해가 현실화하기 전까지는 수면 아래 잠복하여 있어 인지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10명 중 8명이 돈을 잃었다고 해도 단 2명이 벌었다는 말을 들으면 '나도 해볼까' 하며 솔깃하는 게 인간의 심리라고 하지 않나. 그러나 기대감만으로는 결코 수익을 낼 수 없다.

실은 나도 최근에는 수천만 원씩 수익을 냈다는 지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돈을 넣어보자니 불안하고 구경만 하자니 애가 탄다. 파이낸스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 같은 서민은 돈을 회수할 타이밍을 결코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함정이다. '나만큼은 피해를 보기 전에 반드시 원금을 뺄 수 있다'고 믿는 자체가 도박이다. 압도적으로 정보가 불충분한 도박을 한다는 것은, 극도로 승률이 낮은 승부를 겨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돈을 벌게 된다는 유혹의 사례는 무궁무진하지만 나에게 수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보장 또한 없다.

1000만 원을 넣어 500만 원을 벌어본 사람은 하루 사이 원금이 30%가 하락했다고 결코 투자한 돈을 뺄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가상화폐에 대한 만연한 투기를 생각해보면, 거품이 빠졌을 때의 파국만은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내 견해는 파이낸스 사태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결코, 비트코인은 '금수저'를 능가할 인생역전의 기회가 아니며, 서민들의 지친 마음에 근본적인 해방구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정당한 땀방울은 무시되고 '묻지마' 투자 광풍만 요란한지 근본적인 처방을 고민해야 할 때다.

자, 다음의 질문에 답을 해보자.

'고수익 고위험' 원칙에 따라 무리하게 투자하면 낭패를 볼 수 있으며, 향후 규제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이를 고려해 신중히 투자해야 합니다. 당신은 올해 연말 비트코인의 시세를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① 더 가파르게 오를 것이다
② 거품이 빠지고 이제 내려갈 때가 됐다

어떤 예측을 선택할지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 가상화폐의 붕괴 시점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트코인의 종말은 언제 일어나는지,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태그:#가상화폐, #비트코인, #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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