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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책은 빈부격차와 불로소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집값 상승 저지는 수단이지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빈부격차가 사회 불안정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지대라는 불로소득

광활한 토지에 한 사람이 도착한다. 너른 목초지, 당장 길들일 수 있는 야생 동물들, 씨만 뿌리면 가을에 황금빛 너울이 일렁이게 될 비옥한 들판.... 배산임수 좋은 터에 집을 짓고 농사를 하며 자족하는 생활을 하는 그에게 하나둘 이웃이 생긴다. 살기 좋은 이 땅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대장간과 잡화점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서 약국, 은행, 식당, 호텔이 들어선다. 처음 도착한 사람의 집터는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땅덩어리가 된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나오는 이야기다. 처음 빈 땅에 정착한 사람은 아무런 노력 없이 가장 비싼 땅을 차지한 거부가 된다. 이런 일이 개척시대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신도시가 들어서면, 논밭 주인들의 인생역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지하철이나 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인근 땅값이 폭등한다. 국민 혈세를 모아 땅 주인들에게 일확천금을 안겨주는 로또나 다름없다.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당시에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지대라는 불로소득에 대해서 가장 강경하게 반발한 학자는 놀랍게도 자본주의의 기반을 다진 리카도다. 리카도는 토지의 비옥도 차이가 지대로 환원되어 지주들의 손으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더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기 위한 토지 이용자들의 경쟁이 지대를 한계 수준까지 높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비옥도가 아니라 입지조건에 따라 토지의 잉여가치가 달라지지만, 잉여가치가 지대라는 형태로 지주에게 몰리는 이치는 리카도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다.

지주의 이익을 옹호하던 경제학자들은, 당장의 욕망을 절제하고 저축을 선택한 사람들이 땅을 구입하는 투자행위를 통해 이익을 누리는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상속이라는 개념을 깡그리 무시한 대단히 용감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시작점이 다르게 설계된 경주장을 옹호할 수는 없지 않겠나.

부동산과 금융의 결합

2008년 미국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던 금융위기는 부동산 담보 대출에서 시작되었다.

은행의 주 업무는 1970년대만 하더라도 기업에 신용대출을 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와 계산이라는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 은행업이었다. 수익은 리스크에 대한 보상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담보 대출이라는 신기술에 눈을 뜬 은행은 더 이상 위험한 물에서 수영하기를 거부했다. 대출자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은행은 담보를 처분하여 수익을 보전하면 그만이다. 물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수영이라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땅 짚고 헤엄치기에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다. 은행업은 허가만 딸 수 있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저먹는' 장사가 된 것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라는 비밀의 문이 열리자, 이른바 '금융 혁신'이 일어났다. 금융위기를 잉태한 것은 서브프라임 주택담보 대출이라는 금융상품이다. 담보 가치 대비 부채 비율, 소위 LTV가 100%를 넘어서는 상품이 비일비재했다. 5억짜리 집을 사는데 은행에서 5억 이상을 빌려주었다.

대출자의 신용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서브프라임, 즉 '적격 이하' 대출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어차피 집은 사두면 가격이 오르니, 일단 대출금으로 집을 사고, 오르는 집값으로 대출금을 갚으라는 논리였다. 은행원으로는 인력이 모자라 대출 모집원이라는 임시 인력을 동원해서 대출자를 모집했다. 노숙자라도 집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에 자신감이 너무 붙은 나머지, 물속의 지반이 약한 곳까지 나가 버린 꼴이었다. 대출자가 상환을 못 하면 집을 몰수해 팔아버리면 되는 구조였지만, 너도나도 그런 대출에 열을 올리다 보니 대출금을 못 갚는 사람들이 일시에 늘어났다. 많은 수의 집을 한꺼번에 팔아버리려니 집값이 버티지 못하고 폭락했다. 담보를 처분해도 은행은 적자를 보게 되었다.

증권화(securitization)라는 '금융 혁신'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역 중 하나가 바로 담보대출부 채권(MBS)이다. 주택 담보 대출로 현금흐름을 만든 은행이, 그 현금흐름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하고 재포장해서 판매한 것이다. 우량 대출자가 갚는 상환금을 배당으로 받을 수 있는 채권은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대출자가 갚는 상환금에 대한 채권이라도 싼 가격에 팔면 그만이었다. 재판매를 통해 리스크를 채권 구매자에게 떠넘긴 은행은 땅 짚고 헤엄치기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노르웨이에 있는 노인연금 조합도, 일본의 지자체도 미국 은행들이 쏟아내는 담보대출부 채권을 구입했다. 그들은 채권 뒤에 숨겨진 부서지기 쉬운 구조를 전혀 알지 못했다.

부동산과 금융이 협력해서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세계는 집값이 계속 오르기만 한다는 가정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소득도 없으면서 LTV 100%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아직 현금화되지도 않은 집값 상승분으로 소비를 늘리기 시작하자, 도미노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대안은 있는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재산세다. 0.5%만이라도 일단 도입하자는 책의 결론은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조세저항은 거세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라는 시대 현상에 따라, 대개의 OECD 국가에서 주택 소유 비율이 50%를 넘었다.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각국 정부에게 과반수의 이익에 거스르는 정책은 크나큰 용기를 요구한다.

헨리 조지는 토지세 단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았다. 토지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잉여가치 전부를 조세로 환원하면, 그 액수가 워낙 크기 때문에 다른 세금 하나 없이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 이 제안이 과감하다 못해 유토피아적 비현실성의 광휘를 내뿜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헨리 조지가 주장하는 토지세의 과녁은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회는 지주와 친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부동산 소유에 따른 불평등은 금융이 부동산에 가세하면서 악화되었다. 악화된 부분에서 개선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조시 라이언-콜린스 등 3인의 공저, <땅과 집값의 경제학>은 영국 부동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런던의 집값 폭등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저자들은 우선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지대를 공공부문에서 흡수해야겠지만, 그것은 먼 미래에나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정부가 직접 부동산을 소유하고,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주택의 판매가치를 제한하는 입법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소개된다.

가장 신선한 것은 리스크를 은행이 다시 짊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의 부동산 담보 대출은 담보 가치 하락에 따르는 리스크를 대출자가 온전히 진다. <땅과 집값의 경제학>은 부동산 담보 대출의 리스크를 은행과 대출자가 공동 부담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담보 부동산의 가격이 하락할 경우, 은행이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경우에는 은행과 대출자가 시세 차익을 나누어 갖는다. 은행이 스스로 리스크를 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므로, 정부나 국제 금융 기구는 리스크를 분담하는 은행에 대해 높은 점수를 매기는 새로운 금융 건전성 지표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부는 작년 8.2 대책을 정점으로 하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주택 가격을 안정화하려 하고 있으나, 2018년 1월 현재 주택 시장은 정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작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주택소유 통계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55.5%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과반수인 주택 소유자에게 불리한 정책이 오래 지속될 리 없다. 지금 정부가 보유세 인상 등 추가적인 주택 가격 안정 정책 발표 시기를 조율하는 배경에는 6월에 예정된 지방 선거가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독일이나 스위스의 임대차 문화를 단시간 내에 정부 주도로 뿌리내리게 할 수는 없다. 헨리 조지의 토지세나, 지자체와 주민이 함께하는 지역개발조합과 같은 생각은 지금 당장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먼 이야기다. 자유시장 경제라는 체제 자체를 바꿀 생각이 없다면, 정부의 개입은 현금 흐름 자체를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행동 자체를 규제하려고 하지 말고, 그 행동에 금전적 대가가 따르게 하라.

피케티가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이 재산세다. 자본 소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아지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본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커져만 가는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본의 증가속도를 둔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증세는 자칭 진보주의자들도 내심 싫어하는 것 아닌가.

방법은 세금 구조의 개편이다. 전체적인 세율을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세금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다. 양도소득세와 같이 거래 자체에 영향을 주는 세금은 시장 가격을 왜곡시킨다. 부동산에 대한 세금은 보유세의 형태로 매겨져야 한다. 소득과 마찬가지로 재산에도 세금이 매겨진다는 사실을 시민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기가 오면, 정부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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