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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처럼 한 번 살아볼까?"

남편이 호기롭게 외친다. 고작 반찬 네 가지를 시켜 놓고는 벼락 부자라도 된 양 뿌듯해 한다. 다른 사람들은 반찬 한 가지를 밥 위에 얹어 먹는데 우리는 네 가지씩이나 시켰으니, 황제의 밥상이라고 으쓱해할 만도 하다.

쌀국수 한 그릇에 1500원

 아침에만 전을 펼치는 골목 국숫집.
 아침에만 전을 펼치는 골목 국숫집.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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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셀 때 천 원, 만 원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만 동 10만 동 한다. 화폐를 세는 단어가 다른 것처럼 돈의 가치 또한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 돈 만 원은 베트남 돈으로는 20만 동이다.

이 돈이면 베트남 일반 시민들이 즐겨먹는 쌀국수를 예닐곱 그릇은 사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쌀국수의 경우 가격이 3만 동 내외 하니 우리 돈으로 치면 1500원밖에 되지 않는다. 과자 한 봉지 값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베트남이다.

두 달 동안 베트남에서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베트남의 싼 물가가 크게 작용을 했다. 겨울 동안 땔 보일러 기름 값에 조금만 더 보태면 베트남에서 충분히 한 달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실행을 했다.

보일러 기름 값으로 베트남에서 살기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 식사는 주로 쌀국수를 먹고 점심에는 밥을 먹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 식사는 주로 쌀국수를 먹고 점심에는 밥을 먹는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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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아직 일곱 시도 되지 않았는데 길거리에는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다닌다. 길가 국숫집에는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아 아침 식사를 한다. 쌀국수며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를 봉지에 싸서 들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집에서 아침을 먹는 우리와 달리 이곳 사람들은 밥을 해먹지 않고 밖에서 해결하는지 아침부터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점심은 밥이다. 아침에 쌀국수를 먹었으니 점심은 밥을 먹어야 기운이 날 것이라 생각하며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집을 찾으면 된다. 그런 집은 안 먹어봐도 맛을 알 수 있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이니 맛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반찬들을 죽 늘어놨다. 네모난 스텐 용기에 담아놓은 그 음식들은 우리 눈에는 낯설지만 맛을 보면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다. 양념장에 졸인 생선이나 두부, 돼지고기며 닭고기 등이 대부분인데, 채소 반찬도 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김치와 흡사한 것도 있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겉보기로는 맛이 없어 보이지만 한 젓가락 먹어보면 시큼한 게 꼭 물김치를 먹는 것 같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 식사는 주로 쌀국수를 먹고 점심에는 밥을 먹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반찬과 밥을 따로 담아 먹는 게 아니라 밥 위에 반찬을 얹어 먹는다. 이런 음식을 '껌(com)'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껌은 일종의 덮밥인 셈이다. 양념한 돼지고기를 석쇠에 얹어 숯불에 구운 뒤 밥 위에 얹어 먹는 껌땀(com Tam)은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먹는 덮밥이다.

'가성비' 최고의 나라, 베트남

 달랏대학교 근처 작은 식당에서 시켜먹은 점심 밥.
 달랏대학교 근처 작은 식당에서 시켜먹은 점심 밥.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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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두 접시에 반찬 네 가지를 시켰더니 국도 따라 나왔다, 옆자리에 앉은 베트남 청년은 밥 위에 야채 조금과 생선조림 하나를 얹어 먹는데 우리는 반찬을  4개씩이나 시켰다. 반찬 한 가지로 식사를 하는 베트남 사람들 보기에 조금 민망했지만 체구가 작은 그들과 달리 우리는 키도 크고 살집도 많으니 먹는 것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두 사람 밥값이 8만동(4천 원) 밖에 하지 않았다. 반찬을 4가지씩이나 시켰는데도 그랬으니 한 가지씩만 시켰다면 도대체 밥값이 얼마란 말일까.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베트남은 가히 가성비 최고의 나라다. 들인 돈에 비해 얻는 게 많으니 여행자들에게는 천국이라 할 만하다. 더구나 달랏은 기후까지 좋으니 오래 머물며 지내기에 더없이 좋다.

베트남에 온 다음날 점심 때 '껌땀'을 먹어보려고 여행 책자에서 알려준 식당을 찾아갔다.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간 그 집은 관광지 거리에 있어서 찾기에 쉬웠다. 근처에 가니 벌써 먹음직한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를 따라가니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를 한창 숯불에 굽고 있었다. 아직 베트남 음식에 익숙해지지 않았던 내 구미까지 당길 정도로 그 향미는 달콤하면서도 매콤하게 코를 자극했다.

그러나 그 음식은 내 입에 맞지 않았다. 손도 안 대고 남기려니 주인 보기에 민망해서 억지로라도 좀 먹으려고 시도했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밥 위에 얹힌 나온 양념 숯불 돼지고기는 먹을 만했지만 밥이 도저히 입에 맞지 않았다. 찰기가 하나도 없어 입 안에서 돌기만 하는 부슬부슬한 그 식감이 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쌀과 다른 베트남 쌀

 베트남 쌀은 우리 쌀과 다르다. 우리 쌀이 말갛고 투명하다면 베트남 쌀은 마치 쌀을 쪄서 말린 것 같다
 베트남 쌀은 우리 쌀과 다르다. 우리 쌀이 말갛고 투명하다면 베트남 쌀은 마치 쌀을 쪄서 말린 것 같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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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는 일 년에 삼모작을 할 수 있다 한다. 우리나라처럼 기계로 모를 심는 게 아니라 씨를 직접 논에 뿌리는 직파를 한다. 종자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토질과 기타 조건들이 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베트남 쌀은 우리 쌀과 다르다. 우리 쌀이 말갛고 투명하다면 베트남 쌀은 마치 쌀을 쪄서 말린 것 같다. 또 우리 쌀이 통통한 타원형이라면 베트남 쌀은 얇고 길쭉하다.

밥맛 또한 확연히 다르다. 우리나라 쌀로 밥을 지으면 찰기가 있어 주걱이나 숟가락에 붙는 것과 달리 베트남 쌀로 지은 밥은 찰기가 없어 뭉쳐지지 않는다. 밥알 한 알 한 알이 다 따로 논다.

점심 한 끼를 거하게 잘 먹었다. 처음에는 입에 맞지 않아 반도 못 먹고 남기던 밥도 이제는 잘 먹는다. 생선조림은 어찌나 맛있는지 밥을 시켜먹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주문한다. 이러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베트남 음식이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날 것 같아 염려가 될 정도다.

황제처럼 돈 걱정하지 않고 막 썼다. 기껏 해봐야 우리 돈으로 1천~2천 원밖에 안 하는데 하며 반찬도 많이 시키고 택시도 많이 탔다. 그러는 새 돈이 술술 새어나갔다. 몇 천원이 모여 몇 만 원이 되는데, 우리는 눈앞의 몇 천원만 보고 있었다.

싸다고 막 썼다가는

 베트남 돈에는 모두 '호치민'의 얼굴이 있다.
 베트남 돈에는 모두 '호치민'의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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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에서 오래 살고 있는 어떤 분이 해준 말이 생각난다.

"베트남에서 싸다고 막 썼다가는 돈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술술 새어나간답니다."

그 분 말이 맞았다. 아무리 가성비 좋은 나라라고 해도 공짜는 없다. 여행자인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잠자는 숙소도 돈을 주고 얻어야 하고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거나 오토바이를 빌려야 한다. 잠깐 쉬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는 뭐라도 한 잔 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돈이 술술 나갔다.

100달러를 베트남 돈으로 바꿨을 때는 마치 벼락부자라도 된 양 흐뭇했다. 한국 돈 11만 원을 주고 100달러를 받았는데 베트남에 오니 그 돈이 뻥튀기를 하여 227만 동이나 되었다. 십만 동짜리 지폐를 22장이나 받았으니 어찌 설레지 않을 것인가. 완전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돈 쓰는 재미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가지고 온 돈은 한 달이 좀 지나니 바닥이 났다. 그때부터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빼서 썼다. 현금인출기는 카드만 넣으면 돈을 토해낸다. 화수분이 따로 없다. 하지만 샘물처럼 끊임없이 돈이 생기는 게 아니고 미리 내가 넣어둔 만큼만 돈이 나온다.

황제처럼 살기, 여유로운 마음에서

 돌아보니 '황제처럼 살기'는 돈에 걸리지 않는 삶이 아니었다.
 돌아보니 '황제처럼 살기'는 돈에 걸리지 않는 삶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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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출기에서 한 번에 뺄 수 있는 금액은 베트남 돈으로 200만 동(10만 원)이다. 한 번 할 때마다 수수료가 2만5000동 나간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돈을 뽑는 건데 그 정도 쯤이야 생각했지만 좀 지나니 그 돈도 아까웠다.

그래서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은행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또 한 번에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이 200만 동보다 더 많은 은행도 알아봤다. 이제 우리는 돈의 가치를 베트남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만 동(500원)도 허투루 보지 않게 되었다.

돌아보니 '황제처럼 살기'는 돈에 걸리지 않는 삶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베트남의 싼 물가에 환호했지만 좀 지나니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리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따뜻한 햇살이 좋아 골목의 작은 카페에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고 불어오는 훈풍에도 가슴이 설렜다. 골목에 전을 편 쌀국수 집에서 베트남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침을 먹을 때면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그들의 말없는 호의가 고마웠다.

내 마음 속에서 갈구하던 삶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넉넉히 다 담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바로 우리가 추구했던 '황제처럼 살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베트남에서 분명 황제처럼 살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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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입니다. 왜 사냐건 웃지요 오홍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