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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박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박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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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성명을 발표하러 들어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뒤로 '수도선부(水到船浮)'라고 적힌 커다란 액자가 눈에 띄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신년사와 임기 마지막 날 현충원 참배 때도 이 말을 썼다. '물이 차면 배가 뜬다'는 뜻으로 '노력하다 보면 뜻을 이룬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이뤄진다'는 의미로 쓰인다. 임기 내내 '한반도 대운하', '4대강 사업' 등에 '물과 배'에 집착했던 그의 욕망이 담긴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 이 전 대통령에게서 '수도선부'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순리를 거스르는 모습이 반복됐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에 전혀 대답하지 않았고, 검찰 수사를 반박할 때도 어떠한 합리적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사실과 다른 궤변만 늘어놨다. 검찰의 수사를 "보수궤멸 정치공작",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매도하며 사법사건을 정치사건으로 쟁점화시키는 것에만 몰두했다.

이런 이 전 대통령의 태도는 검찰 수사에 상당한 압박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MB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최측근들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자신과 부인 김윤옥씨의 이름까지 거론되자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자, 정치적으로 보수 결집을 통해 국면을 돌파하려는 노골적인 의도가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한 것도 이러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은 또 성명에서 "함께 일한 고위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으므로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역시 사실과 전혀 다른 궤변이다. 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이상득 전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각종 비리 사건으로 실형을 사는 등 권력형 비리가 계속됐다. 그런데도 이 전 대통령이 "권력형 비리가 없었다"라고 강변하는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들먹인 것처럼 자신을 향한 수사를 정치공작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측근들이 회견장에 줄지어 서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측근들이 회견장에 줄지어 서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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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히지 말고 나에게 책임을 물으라"라며 "저의 재임 중에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겉으로는 측근을 보호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지만, 더이상 측근에 대한 수사를 어렵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추후 검찰이 측근 수사를 확대할 경우 '나에게 물으라 했는데 검찰이 측근들을 괴롭혀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대응이 예상된다.

한편 이날 이 전 대통령 측은 성명 발표에 앞서 취재진에게 별도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의 성명서 외에는 더 설명할 게 없다는 이유였다. 공동취재단이 건물 밖으로 나온 뒤에도 이 전 대통령은 계속 건물 안에 머물렀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밖에서 기다리는 취재진에게 포토라인을 지켜달라는 등 여러 요구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이 전 대통령의 사무실이 있는 12층에 서 있었다.

성명 발표가 끝나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이 전 대통령은 경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달라던 이 전 대통령은 "(그 말이)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뜻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굳은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활비에 대해 보고받았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준비된 검은 차량에 탄 뒤 바로 사라졌다. "나에게 책임을 물으라" 해서 물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각 문무일 검찰총장은 국회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과 마주쳤다. 문 총장은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비난한 것과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라고 한 것에 "법적 절차대로 하겠다"라고 답했다. 문 총장의 말은 다시 '수도선부'를 떠올리게 한다. 물이 차면 배가 떠오르는 것처럼 '죄가 차면 감옥에 가'는 것이 당연한 절차이지 않을까?


태그:#이명박, #구속, #특활비, #문무일,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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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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