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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됨을 위하여' 고 문익환 목사가 분단 상징인 철조망을 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임옥상 화백 작품. '하나됨을 위하여' All for One 235x266cm 종이부조,아크릴릭 1989 ⓒ 임옥상 화백 제공
"... 박종철 열사여! ... 이한열 열사여!"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1987>의 마지막 부분.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낮게 깔리고, 고 문익환 목사(1918~1994)가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는 장면. 극영화 안에 짧게 삽입된 다큐멘터리는 더욱 극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때는 6월항쟁의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았던 1987년 7월 9일. 장소는 이한열 열사 장례식이 엄수됐던 그의 모교 연세대. 26명 열사들의 이름만 목놓아 외쳤던 문익환 목사의 이 '조사(弔詞)'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뇌리에, 가슴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과거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사를 되돌아보면, '문익환'이라는 이름 석 자를 빼고는 제대로 기록하기 어렵다. '문목'은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통일·평화운동의 상징이었고, 항상 최전선에서 온 몸으로 길을 열어왔던 어른이었다. 1989년 3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갖고 통일문제를 논의했던 소위 '방북 사건'으로 오랫동안 옥고를 치렀지만, 그 또한 문익환이기에 가능했던 '문목다운' 결단과 실천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올해는 문익환 목사가 돌아가신 지 24년,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다. 새해 벽두부터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해빙되는 새로운 소식들이 전해졌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고 남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보였던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눈 앞으로 다가왔고, 끊어졌던 남북의 연락망이 연결됐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자고 일어나니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때마침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 소식이 전해졌다.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 제목은 '꿈을 비는 마음'. 2월 2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성수아트홀로 날짜와 장소도 확정됐다. 주최는 늦봄문익환탄생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와 성동문화재단, 주관은 노래패 '우리나라'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세계적인 작곡가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에 이은 두번째 '인물 (노래) 콘서트'인 셈이다. 이날 행사에는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영화배우 문성근도 참석해 생전의 문 목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미니 토크쇼도 진행된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오롯이 문익환 목사를 기리는 이날 공연에서 '우리나라'는 12곡의 노래를 선보일 예정이다. 문 목사의 생애를 다루거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다. 문익환 목사가 돌아가신 해인 1994년에 만들어진 '꽃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번에 만든 신곡이다.

1. 꿈을 비는 마음|문익환 시, 백자 곡
2. 기도|백자 글·곡
3. 어머니 말씀|백자 글·곡
4. 춤을 추자|백자 글·곡
5. 내 자리|백자 글·곡
6. 열사여 열사여|백자 글·곡
7. 꽃씨|백자 글·곡
8. 역사를 산다는 건 말야|문익환 시, 백자 곡
9. 잠꼬대 아닌 잠꼬대|문익환 시, 백자 곡
10. 안아보자|이혜진 글·곡
11. 고무찬양가|백자 글·곡
12. 연분홍 코스모스|백자 글·곡


인물 콘서트의 두번째 주인공, 문익환
노래패 우리나라 (왼쪽부터) 백자, 한선희, 이혜진, 이광석 ⓒ 이희훈
ⓒ 정현덕
지난 15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가수 '백자'(본명 백재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노래패 '우리나라' 5명의 보컬 가운데 한 명인 백자는 '문익환 콘서트'에서 불릴 노래 12곡 가운데 11곡을 작곡했다. 그런 만큼 이번 콘서트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참고로 노래패 '우리나라'(대표 겸 기획자 지정환)는 1999년에 결성됐고, 백자를 비롯해 이광석, 한선희, 달로와, 이혜진 5명의 보컬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모두 솔로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몇 해 전,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는 중국 랴오닝성 '뤼순(旅順)감옥'에 간 적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도 들렀던 터라, 그때 우리 역사의 중요한 인물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내로 돌아와서 신채호 선생에 대한 노래 열 곡을 만들었다. 아직 공연은 못했고, 그 가운데 한 곡만 미니 앨범에 넣었다. 그게 재작년에 발표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노래다.

지난해에는 고 윤이상 선생 탄생 100주년이었다. 몇십 명의 후원을 받아, (윤이상 선생 고향인) 통영에서 공연을 했다. 그 자리에 (윤이상 선생 부인인) 이수자 여사와 딸 윤정씨가 참석했다. 그 분들이 공연을 너무 좋아하셔서 우리도 깜짝 놀랐다. 그 때 (인물 콘서트 후보로) 염두에 뒀던 분들이 문익환 목사,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전태일 열사, 윤동주 시인 등이었다.

때마침 올해가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이어서 내심 기념 공연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민만 하고 있던 차에 새해 벽두부터 삽시간에 통일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평창이 평화올림픽이 되는 분위기로 흐르면서 마음이 굉장히 뜨거워졌다. 제가 다작이긴 하지만, 1월 초 며칠 사이에 (문익환 목사와 관련된 노래 11곡을) 집중적으로 만들었다. (이런 폭풍 창작은) 처음 경험한 일이다."


다시 묻기도 전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문익환 목사로 이어졌다. 백자가 먼저 '목사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백자는 1990년 외대에서 노래패 '맥박'에 참여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총학생회 문화국장으로 활동했다.

"총학생회 활동으로 한동안 곡을 못 쓰다가,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신 1994년 1월에 지은 노래가 '꽃씨'다. 문 목사님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이 기사 맨 하단 - 기자 주)가 굉장히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 시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노래가 '꽃씨'다. 노래를 발표했더니 문 목사님을 추억하는 주변 사람들이 좋아했다.

군대를 다녀오고나니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 방황하던 차에, 문 목사님이 (시위를 하며) 길바닥에 앉아 있는 사진을 봤다. 열사들의 노제, 여공들과 함께, 문 목사님의 길바닥 사진은 많다. 그 장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게 작은 재주라도 있다면 쓸 곳이 떠올랐다. 내가 민중가요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내 가슴 속에 그렇게 문 목사님이 계셨는데, 이번에 봇물 터지듯 (노래로) 터진 것 같다."

왜 지금 다시 문목인가
거리에 선 목사 3.1민주구국선언을 시작으로 민주화에 뛰어든 문익환 목사는 시인, 신학자, 목사 그리고 민중을 뜨겁게 사랑하는 선지자였다. ⓒ 사단법인 통일의 집
백자에게 다시 물었다. 문익환 목사에 주목하는 건 '탄생 100주년'이라는 숫자만의 문제는 아닐텐데. 왜 우리가 지금 이 시기에 문익환 목사를 기억해야 하는지.

"목사님의 그 말씀이 참 가슴에 남았다.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


문익환 목사가 지난 1989년 3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했던 말씀이다. 지난 13일 모란공원에서 늦봄 문익환 목사 24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추모사에도 문 목사의 이 어록이 등장한다.

"1976년 3.1구국선언으로 터져나와 1994년 1월 18일 잠드실 때까지 용솟음친 민주와 통일의 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9년 3월, 김구 선생과 윤동주, 장준하와 전태일의 마음을 안고 도착한 평양에서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라는 말씀으로 평화와 통일, 번영을 향한 이정표를 굳건히 세우셨습니다.

문익환 목사님, 이 땅에 평화의 기운이 다시 싹트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세우신 이정표 따라 국민의 나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해 흔들림 없이 걷겠습니다. 봄이 찾아오지 않는 겨울은 없습니다. 가끔 찾아와 '어때, 힘들지 않아? 수고 많지?'하며 응원해 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 추모사 중에서)

백자는 문익환 목사를 반추하며 '예수'와 '부활'이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목사님이 늦은 나이에 (민주화·통일) 운동에 뛰어든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늦게 시작한만큼 두드리고 고뇌했을 것이다. 광야에 선 예수님이 갈등했던 것처럼. 목사님이니까. 그러다가 큰 고민을 하고 결심하고 나온 것 아니겠는가. 목사님께는 (민족의) 부활이라는 게 무척 중요한 문제였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1989년에 시를 남기고, 북한으로 가는 결단을 내린 것도 통일이 민족의 부활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남북의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통일 열기도 그런 민족의 부활을 꿈꿨던 목사님의 마음과 결부된 게 아닌가 싶다. 더욱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목사님이 오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 남북회담에 참석했던 북한 대표단을 보면서 목사님이 떠올랐다. 임옥상 화백이 그린 철조망 건너는 목사님의 모습, 그런 형상이 떠올랐다. 이것이 민족의 부활이자, 목사님의 부활이 아니겠는가."
노래패 우리나라 ⓒ 이희훈
노래패 우리나라 ⓒ 이희훈
백자는 문익환 목사를 통해 예술적인 창작의 모티브를 많이 얻었다고 말한다. 특히, 문 목사의 어머니인 김신묵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고은 시인과 함께 춤을 추었던 장면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고. "엄숙한 투쟁의 판을 축제의 현장으로 바꿔놓았듯이, '나 죽었을 때 박수 쳐서 보내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그랬던 행동"이라고.

'문익환 콘서트'의 제목을 문 목사의 시 '꿈을 비는 마음'으로 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문목'의 염원이자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꿈꾸는 "민족의 시원 같은 시", "통일의 태몽 같은 시"여서란다. '꿈을 비는 마음' 노래를 공연 첫 곡으로 내심 생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 인물에 대한 노래를 짓고, 공연을 계속 해나가게 되면 한 가지 바람이 있단다. 역사교육 차원에서 전국 중·고교를 돌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물 콘서트' 공연을 하고 싶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서울 용산 CGV를 방문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 관련 예술인들과 함께 영화 <1987>을 관람했다. 백자도 이 가운데 한 명으로 참석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했던 문 목사의 '열사여' 조사 장면이 그에게 어떻게 느껴졌을지 궁금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더라. 마치 이한열 열사 장례식장에 온 듯한. 거기서 사람들의 감정이 터졌다. 눈물의 문이 열렸다. 연설문 없이 열사들의 이름을 연호하는 문익환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어떤 역사에서 살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위에서 우리가 서있는지를 생각했다. 배우 강동원도 비슷한 소감을 밝혔다. '그 때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고." ◆
노래패 우리나라 ⓒ 이희훈
잠꼬대 아닌 잠꼬대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산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 마음이었거든
한 마음
그래 그 한 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 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 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 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적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구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사는 거지

_ 문익환 목사의 시

※ 아래 영상은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의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에서 불려질 신곡들이다. '우리나라'의 허락을 받아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께 먼저 선보인다. 고 문익환 목사 인물 콘서트인 '꿈을 비는 마음' 공연은 오는 2월 2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열린다.
ⓒ 정현덕
▲ "문익환 목사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의 앞부분을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1989년 1월 기어이 평양에 가겠다는, 절대 잠꼬대가 아니라는 말씀을 노래로 담았습니다. 지금의 세대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미디엄템포로 살짝 흥겹게 만들어본 노래입니다."|노래 설명 '백자'
ⓒ 정현덕
▲ "방북으로 재판을 받으실 적에 목사님께서 하신 '그래 나 북을 찬양했다. 남과 북이 서로 고무찬양하지 않고 어떻게 통일을 이루나'라는 말씀을 노래로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늘 '통일은 다 됐어! 통일은 됐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도 노래로 같이 엮어보았습니다." | 노래 설명 '백자'
ⓒ 정현덕
▲ "이 곡 역시 문익환 목사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의 한 대목을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낮을 밤으로 밤을 낮으로 만드는 것이 역사를 산다는 것이라는 목사님의 그 당당한 기개를 노래로 담아보았습니다. 방북을 결심하시기 전의 그 뜨거운 가슴을 그려보려고 했습니다. 민요풍의 노래입니다."|노래 설명 '백자'
태그:#문익환, #우리나라, #백자, #통일, #인물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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