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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올린 글이 책으로 나온 게 믿을 수 없었어요.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처럼 기뻤어요. 10년 일하다가 1년을 쉬어 수익도 없었어요. 책 내고 들어온 수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2쇄라고 해서 천오백만원이 들어왔어요. 큰돈이 한 번에 들어오니까 어안이 벙벙해요."

18살 때 독립해 10년간 서울 성수동 아연주물공장에서 일한 33살의 김동식은 2017년 12월, 기괴한 미스터리 단편소설 모음집 3권을 출간했다. 2016년 5월부터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 '복날은 간다' 필명으로 300여 편의 소설을 올렸다.

그 가운데 66편을 추려 <회색인간>, <13일의 김남우>,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 20여 편씩 담았다. 반응은 뜨겁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3쇄를 찍었다. 출간 제안을 받고 소설집이 나오기까지 네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신기했지만 큰 부담이 되기도 했다.

"책이라는 것이 안 팔리면 출판사에서 부담을 떠안게 되니까 너무 걱정되었어요. 책이 안 팔리면 내 돈으로 사야 하나? 걱정했는데, 3쇄까지 나와 폐를 끼치지는 않았구나 안심하고 있어요."

인세를 받고 부산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킹크랩을 먹었다는 김동식 소설가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1월 10일, 광진구 화양동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댓글은 나의 힘

그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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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자의식을 갖고 글을 쓰지 않았다. 책 출간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댓글 응원에 힘입어서였을 뿐 책을 갖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자신의 글에 달린 댓글을 보는 것, 오로지 그 하나의 기쁨으로 지금껏 글을 써왔다. 그의 데뷔작 '이미지 메이킹'에서도 그의 댓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댓글 능력자다.

"공포게시판에 창작글을 올리시는 분이 많아서 나도 올리면 어떨까 해서 올린 게 처음이었어요. 그때 댓글이 없으면 그만 올렸을 텐데, 어떤 분께서 '또 보고 싶다' 댓글을 올려주셔서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올리게 되었어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왔기에 친구가 없다는 그에게 오늘의 유머 네티즌의 댓글은 친구와 같은 존재이며 글쓰기 스승이었다.

"잘 되면 그분들 덕이에요. 글 쓰는 법도 그분들이 알려주셨어요. 스승님이죠. 너무 감사해요." 

그는 먼저 소설의 큰 줄기를 머릿속으로 구상한 뒤 글을 쓰기 시작한다. 짧게는 4시간, 길게는 8시간이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소재는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사건사고에서 얻는다. 자연스럽게 생존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

"제가 글을 올리는 게시판이 공포게시판이에요. 무서운 이야기를 올려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무서워하는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고요. 메시지가 아닌 무조건 재미있게 쓰자는 식이에요."

디스토피아, 인간군상, 잔혹동화

김동식 소설가
 김동식 소설가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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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간>에 실린 단편 '사망 공동체'는 사람이 한 명 죽으면 또 다른 한 사람도 같이 죽는다는 설정이다. 이승의 사망률이 낮아져 저승 세계의 노동자가 줄어들게 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저승의 대표가 이를 인류에게 공표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사형제도와 전쟁이 사라졌다. 무고한 사망한 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굶어 죽으면 짝이 되어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거대 기업의 대표들을 압박했다. 사망자가 현저히 줄자 저승으로 오는 사망자도 줄기 시작했다. 저승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저승 대표는 한 명이 죽으면 세 명이 죽는다고 다시 공표한다. 인류는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근본적 해결법을 연구했다.

"우리 연구소에서 노화 억제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 '사망 공동체' 중

저승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저승에서 일할 노동자도 곧 사라질 위기였다. 반전이 있다. 인류가 발명한 노화 억제제로 인해, 피치 못할 사고로 저승으로 온 이들도 늙지 않아 영원한 노동자로 저승에서 일을 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승 세계는 전처럼 지속해서 사망자를 유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회색인간>에 실린 작품들의 색깔을 디스토피아라고 했다.

"무조건 암울하다 할 수는 없지만 암울한 느낌이에요."

날짜 13일만을 반복해서 사는 사내가 있다. 잠에서 깨도 어제처럼 오늘은 13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14일이 왔다. 하지만 그 다음날은 다시 13일이었다. 13일만 반복되었던 것이 13일, 14일 이틀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내가 여자친구와 13일의 비밀을 공유한 순간부터다. 이제 여자친구도 함께 반복의 삶을 산다. 365명이 이 비밀을 알게 되면 365명이 함께 365일을 되풀이 산다. 여자친구는 말한다.

"오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자.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읽게 하는 거야. 그럼 영원히 내일이 찾아올 거야. 다시는 13일로 되돌아가지 않고…." - '13일의 김남우' 중

<13일의 김남우>에 실린 소설들의 테마를 그는 "인간군상"이라고 했다. 요괴가 배를 긁어달라고 외친다. 사람들은 그가 두려웠지만 그의 배를 긁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요괴의 배를 긁어주면 요괴뿐만 아니라 긁어준 사람의 기분도 좋아진다. 요괴가 나타나는 도시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관광명소가 되었다.

자기 집이 없던 사람들은 방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시에서 쫓겨났다. 이에 분노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중 한 사람이 요괴를 꼬집었다. 그러자 요괴가 사라졌다가 다른 도시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은 요괴를 꼬집으면 요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 자기 도시로 요괴를 데려오기 위해 경쟁했다.

"요괴를 독식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주기적으로 기간을 정해서 꼬집어주는 법을 만들어…" - '가려운 곳을 긁어달라는 요괴' 중

화가 난 요괴는 사라졌다. 일주일 후, 요괴가 다시 나타났을 때, 요괴를 긁어주는 것은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에 실린 단편들을 "잔혹동화"라고 했다.

기회는 꾸준함에서 온 것

현재 3권까지 나온 소설집은 작품이 더 모이면 4권, 5권 계속 나올 예정이다. 또한 그는 장편소설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시도를 해봤어요.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야기가 책에 실리기도 했고요. 길게 쓰려고 했는데 못쓰겠더라고요. 어떻게 배워야 할지 생각 중이에요."

그는 누구든 꾸준히 하면 기회는 온다고 했다.

"못 썼는데 꾸준히 많이 쓰니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뭐든지 꾸준히 하시면 기회가 올 것 같아요."

앞으로 그의 글은 웹소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겠지만 그의 고향과도 같은 오늘의 유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계속 만날 수 있다.

"3일에 한 번씩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올릴 것 같아요. 가끔도 못 올리면 배신자 되는 거잖아요?(웃음) 간편하게 읽기 쉽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시간 나시면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으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수 있을 사회 문제들을 다루었던 그가 생각하는 미래는 어떨까.

"제가 쓴 것처럼 극단적인 세상은 안 올 것 같고요. 지금과 비슷하지만 여유가 없어 어려워질 것 같아요."

[뒷이야기]
Q. 주요 인물 김남우는 누구?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김남우다. 작품마다 다른 인물로 등장한다. 아내 죽음 대신 보험금 10억원을 택한 사내, 아버지를 디지털 고려장인 가상현실 가족 세계로 보낸 사내, 무서운 상상을 일으키는 문예창작과 교수 등이다.

"남자배우 하면 남우잖아요? 300편이면 인물 이름 정하는 것도 일이니까 간단하게 남우 했던 것 같아요. 익숙한 이름이 계속 나오면 반갑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김남우, 이번 작품에서는 언제 죽어? 왜 안 죽냐고 댓글도 달아주시고요."

Q. 영화화 한다면? '무인도의 부자 노인'
영화 <타짜>를 좋아한다는 그는 만약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가 된다면 무인도에 표류한 이들의 생존기 '무인도의 부자 노인'이 좋겠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회색 인간

김동식 지음, 요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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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이런 소설가는 없었다

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지음, 요다(2017)


태그:#김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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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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