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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샤샥 혹은 스스슥. 또 어떤 날엔 시시식.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아빠의 발소리에 깼다. 이틀에 한 번, 늘 같은 시간. 새벽 4시 반에서 5시쯤. 몇 시쯤 됐을까?

아빠는 늘 발을 끌고 다닌다. 어릴 적 그렇게 걸으면 안 된다고 혼났던 일곱 살의 나처럼. 왜 그렇게 발을 끌고 다니는지, 한 번은 진짜 모르겠다는 듯 아빠한테 물었던 적이 있다.

"아빠. 왜 그렇게 발을 끌고 다녀. 사뿐사뿐 발 좀 들고 걸으면 안 돼?"

아빠 역시 진짜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내가 그렇게 걷냐? 몰랐다. 앞으로는 살살 걸을게."

역시나 또 나만 못 된 딸이지. 물어놓고도 미안하고... 결국 고쳐지지 않을 걸 그렇게 한소리를 한다.

tvN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 한 장면
 tvN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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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집을 지킨다. 물론 우리 집은 아니다. 아빠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예순의 아빠도 경비원이었다. 약 20년 전, 쉰 몇 살의 아빠였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몇 군데 아파트를 옮겨 다니긴 했지만, 일이 바뀐 적은 없었다.

오른발 뒤꿈치 쪽만 빠르게 닳는, 당신의 발 치수보다 조금 더 큰 운동화에 정장바지 비슷한 바지와 경찰 제복 같은 파란 셔츠, 군인 모자 비슷한 남색 모자 차림으로, 아빠는 아빠만 한 짐을 지고 출근을 한다.

동이 트기 전 어스름한 새벽에 출근해 교대를 하고, 교통지도를 하고, 택배 상자를 지키고, 혼자 밥을 해 먹는다. 아파트 집마다 불이 꺼지면 고단한 일상이 되어버린 아빠의 하루도 정리가 된다. 스스로 불을 켜고 또 혼자서 불을 끄는 밤이 여러 해 반복되었다.   

내가 스무 살쯤 된 10년 전이었나? 엄마 심부름으로 아빠가 일하는 아파트에 간 적이 있었다. 조그만 담뱃갑 같은 곳에서 아빠가 웃는 듯 머쓱한 표정으로 나오는데, 왜 눈물이 왈칵 나려 했을까?

사춘기 소녀도 아닌데 그 나이에도 아빠가 창피했던 걸까. 아니면 정반대로 오늘도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아빠가 자랑스러웠던 걸까. 그도 아니면 그냥 짠하고 안타까웠던 걸까. 그냥 마음이 내려앉았다는 쪽이 맞을 것 같다.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히 그려지는 걸 보면.

이 좁은 곳에서 두 발은 뻗고 주무실까, 여름엔 덥지 않나, 겨울엔 춥진 않나, 작은 선풍기와 크지 않은 난로를 보며 생각한다. 두 계절이 동시에 치울 공간도 없이 한 공간에 머물러 있는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심부름은 하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져 돌아오고 싶지 않은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직시해야 하고 바로 마주 서야 할 현실을 뒤로 놓아두고 묻어둔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아빠가 일하는 아파트에 간 적이 있었다. 조그만 담뱃갑 같은 곳에서 아빠가 웃는 듯 머쓱한 표정으로 나오는데, 왜 눈물이 왈칵 나려 했을까?
 엄마의 심부름으로 아빠가 일하는 아파트에 간 적이 있었다. 조그만 담뱃갑 같은 곳에서 아빠가 웃는 듯 머쓱한 표정으로 나오는데, 왜 눈물이 왈칵 나려 했을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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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전, 아빠와 같은 B조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아빠의 큰 목소리가 들려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속 아빠는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우리가 뭐냐? 그냥 집 지키는 개지."

작은 탄식조차 나오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려 했지만, 계속해서 그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냥 집 지키는 개지'. 오랜 시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며 사셨단 말인가. 정말 그랬던 걸까. 진짜 진짜 그렇게는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10여 년 전, 머쓱하게 담뱃갑 같은, 어떻게 보면 네모 박스와도 같은 '초소'에서 걸어 나오던 아빠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아빠는 분명 조금 어색했던 거다. 딸이 본인의 '일터'에 온 게. 사실 그런 아빠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는데. 그냥 낯선 공간에서의 아빠가 조금 어색해 보여 나도 멋쩍게 웃었던 것뿐인데.

내가 집에 돌아가고 나서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할 틈도 겨를도 없이 택배 상자를 지키셨을까 아니면 불이 켜지고 또 꺼지는 창문들을 보고 있었을까.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늘은 스스슥, 여전히 끌리는 아빠의 두 발은 어쩌지를 못한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아빠의 컨디션을 읽어본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지는 발소리는 늘 바삐 움직이고 뛰어다니는 아빠의 부지런한 성격 때문일 거다. 젊을 때는 지금보단 빨랐을 테고, 보폭도 컸을 텐데.

이제는 몸이 머리를 따르지 못하니 마음만 급해 몸이 먼저 나가는 걸 안다. 샤샤샥, 스스슥 발소리를 내면 스케이트를 탄 듯 스스로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걸음도 내 머릿속 속도를 잘 따라오고 있구나, 하고 안심하는 걸 테지.

어느 날엔, 보폭을 맞추고 같은 속도로 같이 걸을 날도 오겠지. 따뜻하고 제일 안락한 우리 집에서 함께 불을 켜고 하루를 살아내고 다시 불을 끄면서.


태그:#새벽, #경비원, #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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