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상의원>, <정도전>,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음란서생> 등등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사극이 많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는 재미없고 어렵다는 통념을 깼다. 그중에는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던 사극이 있는가 하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를 끄집어냈다는 평을 받은 사극이 있기도 한다.

 <사극으로 읽은 한국사> 이성주 지음, 애플북스 출판
 <사극으로 읽은 한국사> 이성주 지음, 애플북스 출판
ⓒ 애플북스

관련사진보기


<사극으로 읽는 현대사>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이야기 배경과 물건, 인물들을 통해 역사의 뒷이야기를 설명하는 책이다. 사극에서 다뤄진 역사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며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접했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문화 콘텐츠 창작자인 저자 이성주는 이 책을 역사 입문 해설서라 말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일 때면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으레 나왔고, 그것을 또 다른 역사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마저 있었다.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은 왜곡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 재미를 위해 진실을 비트는 역사 왜곡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고려 말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 황비 자리에까지 오른 여인의 일대기를 그린 <기황후>는 방영 내내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다. 저자는 <기황후>가 고려 시절 몽골과 고려의 외교 관계를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며, 고려 여인들이 왜 공녀로서 인기가 높았는지 살폈다.
"미색을 취하기 위해 고려 여인들을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옷도 잘 짓고, 음식도 잘하고, 생활력도 강했으니 고려 여인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 20쪽
고려 여인들이 공녀로서 인기가 있었다고 해서 여인들이 자청할 일은 아니었다. 비굴하고 파렴치한 가부장적 남정네들은 누이들을 공녀로 팔아 자기 안일을 도모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인수대비의 아버지이자 성종의 외할아버지인 한확이다. 그는 누나를 명나라 영락제에게 공녀로 보내 스물넷에 순장 당하게 했다.

더 나아가 여동생을 영락제의 손자이자 명나라 5대 황제에 오른 선덕제에게 보냈다. 그 덕택에 한확은 수양대군의 맏아들에게 막내딸을 시집보낼 수 있었고, 조선 초 대명 외교의 선봉에 서서 승승장구했다. 개인의 영달은 나라로서는 치욕이었고, 인륜으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여자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그저 남성들의 노리개였을 뿐이었던 슬픈 역사를 거론하며 저자는 강대국에 여자를 바치는 일은 그리 큰 저항감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가 든 근거는 객첩과 헌첩이다.

"객첩이란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나그네를 환대하기 위해 여자를 바친다는 의미다. 이때 동원된 여인들은 자신의 아내나 첩, 혹은 딸이었다. 헌첩이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자기 아내나 딸을 바치는 걸 의미한다. 이게 일부 지역만의 문제였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조선 시대에 꽤 광범위하게 퍼진 풍습이었다. 일례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양반자제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평균 10여 명의 객첩과 헌첩을 받았다고 한다." -25쪽
에스키모들이 먼 길을 찾아온 손님에게 아내를 건네는 풍습이 미개하다고 말하지만,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선시대는 더 미개했다. 하지만 저자는 '조선 시대에 꽤 광범위하게 퍼진 풍습'이었다는 객첩과 헌첩에 관한 문헌이나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역사를 두고 어떠한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문헌 증거라도 있어야 할 텐데, 역사 입문 해설서라 하기엔 어딘지 아쉬운 대목이다. 저자가 관련 사례를 기록한 문헌을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혹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이 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막연했던 사실에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부분에는 질문을 던져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는 감옥에 가두는 수감형이 없었다는 이야기나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나 흥선대원군에 대한 숱한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묻는 부분은 그런 예이다.

사극 등에서 감옥에 갇힌 이들을 주리 틀고 심문하는 장면을 떠올린다면 수감형이 없었다는 사실은 의외다. 조선시대에는 사형, 유배 혹은 몸으로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장형, 태형이 있던 반면, 형을 선고받기 전 미결수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 전옥서가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구치소 역할을 하는 전옥서는 주로 상민들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감옥은 괴로운 공간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전옥서는 나름 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받았던 곳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가장 압권은 이들에게 얼음을 할당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얼음이 지금과는 달리 꽤 귀중한 물품이었다. 조선에서는 왕실 제사용 얼음과 대신 이하 궁궐 사람들, 왕실이 사용할 얼음을 겨울에 채취 저장했다가 분배했는데 분배 대상에 전옥서 죄수들도 포함돼 있었다는 건 의외다." -126쪽

옥에 갇힌 죄수에게까지 그 귀한 얼음을 줬다니 놀랄 일이다. 이러한 전옥서의 표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사실에서는 성군이 달리 성군이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세종대왕은 인권에서도 오늘날로 쳐도 압권이었던 왕이었다.

저자는 흥선대원군이 김정호를 탄압하고 대동여지도를 불태웠다고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고 영화에서도 표현된 사실이 거짓이라고 단언한다. 대동여지도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들며,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퍼뜨린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상식적으로 지도 제작에는 엄청난 자금과 노력이 소요된다. 이를 개인이 다 충당할 수는 없다. 당시 김정호도 최성환이나 신헌과 같은 이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 만약 대동여지도가 국가안보에 위협을 끼쳤거나 권력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이들에 관한 처벌 기록이 남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어디에도 이들을 처벌했다는 기록은 없다." -257쪽
물론 지도 제작을 권력자들이 방해했다는 이야기가 일본이 퍼뜨린 거짓말이라는 저자 주장의 진위 여부는 가려봐야 할 일이긴 하다. 일제가 한반도 역사에 끼친 해악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권력자들을 깎아내리면서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를 더 빛나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의 주장은 역사에 허구를 덧칠하여 어떤 인물과 사료를 미화하려는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저자는 <사극으로 읽는 한국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들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 중 조선을 백의민족이 아니라 청의민족이라고 하는 주장은 나름대로 근거를 들이대며 말한다. 세종, 연산군, 인종, 현종은 청색 옷을 권장했고, 숙종은 아예 청색 옷 착용을 국명으로 선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왜 하필 청색이었을까? 한반도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염료가 쪽이었기 때문이라고 실질적인 이유로만 설명했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제후국이었기에 황제의 색깔인 황색을 쓸 수 없었다. 오방색을 기준으로 색을 정한다면 조선의 중국의 동쪽이다. 즉, 청색을 쓰는 것이 올바르다는 논리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238쪽
저자는 조선이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백성의 의복 색상까지 통제하려 했고, 그를 근거로 청의민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 영토 내의 제후국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후에 중국의 허락을 취하는 자주적 제후국이었다는 점을 안다면, 그렇게 단언할 문제는 아니지 싶다.

황색은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므로 가장 고귀한 색이라는 저자 주장에 토를 달고 싶진 않다. 그럼 황토색 옷인 갈옷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갈옷은 고려시대부터 제주도 민속의상으로 농어민들이 작업복이나 일상복으로 입어왔다. 갈옷은 염료가 되는 풋감을 이용해 만들었다.

제주도 토종감을 원료로 해서 만든 갈옷은 어부들이 낚싯줄이나 그물 테가 질겨지도록 염색하던 데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철저히 실용적 이유에서다. 저자 주장대로라면 감히 황색 옷을 변방의 양민들이 일상으로 입는 것을 용납해서 안 되는 게 아닐까?

조선시대 여인들이 일상복을 빨고 다리기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 면에서 백의민족이라는 말은 여인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라에서 청색을 권장한 것이 정치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실용적인 면이었음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민중을 지나치게 정치에 종속된 존재로만 보다 보면,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가던 그 생명력을 간과하기 쉽다. <사극으로 읽는 한국사>는 그런 면에서 약점을 갖고 있다.

민중의 저력을 살피려 들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사극이라는 소재를 통해 일반 대중이 역사에 흥미를 갖게 하려는 시도는 높이 살 만하다. 역사학자가 쓴 책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 창작자의 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되겠다.


사극으로 읽는 한국사 - 역사를 드라마로 배운 당신에게

이성주 지음, 애플북스(2017)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