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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서른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내가 깨달은 하나는 괜찮지 않아도 때로 괜찮은 척 해야 한다는 거다. 

'무슨 일 있냐?'는 으레 형식적인 물음에 모든 걸 쏟아내선 안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의 속마음을 꺼내는 것이 상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저 상대를 나의 감정을 받아내는 쓰레받기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결국 그냥 혼자 삭이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걸 감내할 자신이 없기에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한다.
  
최근에 책 한 권을 읽게 됐다. 이기호 작가의 책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였는데, 거기 나오는 사람들이 꼭 그렇다. 읽다보면 쓴 웃음이 나기도 하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작가의 말처럼, 짧은글이라고 쉽게 읽히겠거니 덤볐다가 편두통, 위장장애를 골고루 앓게 되는 것이다.

책에는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이돌 '덕후', 파괴된 가정의 아버지. '빨래'가 되어버린 어느 집의 평범한 엄마, 누구보다 피곤한 백수, 치매 노인, 그리고 그 나이 그대로 피곤하고 힘든 아이들, 갑을 관계의 사람들. 사회의 축소판인 그들 각자의 삶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라 말할 것도 없이 그냥 그 자체다.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게, 참 아팠다.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결여된 삶이란 늘 그런 식이다.

특히, 책을 읽어 내려 갈수록 삶이 더욱 가혹하다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 각 단편의 결말 때문이었던 듯 싶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삶들이었달까? 눈물이 쉬이 그치지 않는 첫 데이트에 나선 어떤 여자라든가, 얼른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어떤 중년의 남성이라든가, 아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곧 울 것만 같은 심정이 되어버린 어느 아빠라든가, 아내의 말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던, 그럴 기분이 아니었던 어느 남편처럼.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그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회피 아니면 침묵. 선택의 폭이 그리 넓어 보이진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던 사람들, 다시 시작해보려 했던 사람들이기에 그 쉬운 비난이 어렵고, 감히 바보 같다 욕할 수가 없었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프리랜서의 일이라는 게 사실 좀 그렇다. 전문직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백수'같은 면이 있고, 안정 대신 자유를 선택했지만 자유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일을 선택하고 싶었던 건데, 그런 호사를 몇이나 누리고 있을까? 보통은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전부다. 함께 일 할 때는 '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니, 이정도 쯤은 해 줄 수 있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라던 사람들이 돌아설 땐 처음 보는 사람인 양 대하기도 한다. 이보다 더 매몰 찰 수가 있을까. 어디, 어느 가족이 그렇게 매정하단 말인가.

남들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부럽다고도 하지만, 사실 시작도 끝도 없는 일이기에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따지자면 시간을 파는 일인데, 나의 5분, 10분쯤은 아무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10분이면 하는 일이잖아'라며 아무렇지 않게 일을 던져주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또 너무 쉽게 곁을 내어 줬구나 하는 못난 생각마저 든다.

이쯤 되면, 그냥 부품 하나, 소품 하나라는 생각도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자꾸만 작아지는 내가 소설 속 주인공들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저 우리는 우주의 작은 소실점으로 사라질 아픈 인생들인 것일까? 깊은 밤엔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서른을 넘기며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전부는 해피엔딩이었는데, 모두가 해피엔딩일 순 없다는 것이다. 더 많은 새드엔딩 속에서 해피엔딩이 조금 더 주목받을 뿐이라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자꾸만 입 속에서 맴돈다. 누구라도 그 시를 읽는다면 마지막 행 그 대목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순 없을 것이다.

모두가 울어야 정상인 상황에서 아무도 울지 않는 일, 속으로 삼키고 숨겨야만 하는 일들이 이상하리만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요즘. 알고 보면 모두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하는 게 아닐까? 가끔은 소리 내어 얘기하고 싶다.

물론,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기꺼이 용기를 내야 할 일이라는 것 또한 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주변에 더 많아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가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더 이상 혼자 견디고 아파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웬만한 이유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 말고, 가끔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우리는 그저 뭐든 해보려고 하는 그런 보통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니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이렇게 한 템포 쉬면서 다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같은 일이 또 반복해서 일어날 테고 우리는 또 견디겠지만 '함께'라는 이유로 버틸 이유가 충분히 생길 것이라 믿는다.


태그:#서른 즈음에, #보통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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