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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은 가려서 먹지만 책은 가리지 않고 읽는다. 장르와 관계없이 읽다 보니 나의 서재를 처음 구경하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전공했는지 알지 못한다. 나의 경우는 하도 잡식성이다 보니 내가 영어를 전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사진집을 수집하며, 화집도 좋아하고, 역사서도 자주 읽고, 과학서도 심심찮게 구매를 하는 편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데 소설을 읽을 때는 다른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 소설은 내게 각별한 장르이며 소설을 읽고 나면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이 그 소설의 전체 윤곽을 다시 복기하고, 중요한 사실은 메모하고, 처음 본 어휘는 암기하려고 한다. 소설을 읽고 나면 독서 후 활동이 왕성해진다.

왜 소설은 특별할까?

소설을 읽자
 소설을 읽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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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설을 읽을 때는 집중을 하게 된다. 집중력을 키우는 훈련으로 소설 읽기를 권한다. 나는 꼼꼼하지 못한 나쁜 버릇이 있는데 책 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대충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수십 쪽도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인문서나 실용서의 경우 그런 식으로 읽어도 상관없다. 아니 그렇게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경우는 다르다. 한두 문장만 방심하고 건너뛰어도 전체적인 맥락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 한두 문장에 작가의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도 많다. 소설은 꼼꼼히 읽어야 최소한 줄거리라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가장 함축적인 메시지를 추구하는 장르는 당연히 시이지만 평범한 독자가 다른 사람의 기발한 상상력에 공감하고 영감을 얻는 장르는 단언컨대 소설이다. 소설 자체가 꾸며낸 이야기 아닌가. 5살짜리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꾸며내려면 힘든 법이다.

소설가들은 있을 법하고, 독자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이야기를 꾸며내려고 애쓴다. 커피 두어 잔 값으로 꾸며내기 천재들이 자신의 온 역량을 발휘해서 지어낸 이야기를 읽고 감탄하는 즐거움은 독자들이 누리는 큰 행운이다. 상상력을 키운 다는 것은 창의력을 확대시킨다는 것과 다름없다.

셋째 소설은 미래를 예측한다. 오늘날 대부분 문명의 이기는 대부분 수십 년 전에 소설 속에서 다뤄졌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쥘 베른은 그의 소설에서 비행기, 잠수함을 예견했다. 소설가들의 상상력은 엉뚱하다고 생각되겠지만 그 상상이 오늘날의 현실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물질적인 기기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의 소설 같은 경우는 미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고스란히 알아맞히지 않았는가?

넷째 소설을 통해 공감하는 능력은 키워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군상들의 처신과 심리상태를 읽다 보면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도 스스로 진단할 수 있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다 보면 죄의식에 사로잡힌 범죄자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 도통하게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처신을 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자신의 것으로 체득되는 경우도 많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말을 섞지 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

다섯째 소설은 훌륭한 역사 공부 교과서다. 역사책은 단지 일어난 일만 우리에게 알려주지만, 소설은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까지 알려준다. 조지 오웰의 <1984>의 경우만 해도 그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소설속의 구성은 오늘날의 현실을 정확히 예견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만큼 대중들에게 한국전쟁 전후의 이데올로기 전쟁을 사실에 근접하게 이해시켜주는 도구도 드물다.

조정래의 다른 대하소설을 읽는다면 그 시대 수십 년간의 신문을 모두 완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레 미제라블을 읽으면 그 당시의 파리 하수도에 관해서 웬만한 공식 자료보다 훨씬 더 자세히 기술되어 있고 홍명희의 <임꺽정>은 조선시대 백성의 삶을 어느 역사 기록보다 잘 묘사하고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당대의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장르다. 고전소설을 읽는 것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즐거움과 역사 공부라는 유익함을 함께 누리는 기회다.

여섯째 소설은 훌륭한 글쓰기 교재다. 소설가는 문장뿐만 아니라 조사하나도 신중하게 골라서 사용한다. 글쓰기 전문가가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고쳐 쓴 결과물이 소설이다. 소설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어휘력이 풍부해질 뿐만 아니라 사람을 공감하게 하고 감동하는 문법을 자연스럽게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일곱 번째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사고가 나지 않는 스턴트맨이 되는 것이다. 다른 장르보다 소설은 독자가 소설가가 펼치는 세계로 더 잘 빠져들게 한다. 존 그리샴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를 읽다 보면 손에 땀을 쥐게 되고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함을 맛본다. 소설가가 구축한 위험하지만 전율이 있는 세계에 들어가 모험을 맘껏 누릴 수 있다.


태그:#박균호, #독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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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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