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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안쳤다. 찌개나 국을 올렸다. 밥과 찌개가 다 될 동안 몸을 씻었다.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찌개를 살폈다. 쌓인 빨래를 해치웠다.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했다. 서서 밥과 국을 비벼먹었다. 7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일하는 곳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회사에서 엄마는 옷을 포장하고 택배를 보냈다. 포장한 상자를 높은 곳에 올리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내리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엄마는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병원을 찾았다.

"무거운 상자를 높은 곳에 올리는 일을 반복해서 어깨에 석회가루가 쌓였어요."

의사가 말했다. 엄마는 가끔 왼쪽 어깨를 들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주사를 놔 어깨를 달랬다.

회사는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웠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항상 얼굴이 빨갰다. 여름에는 빨갛게 달아올랐고 겨울에는 빨갛게 얼어붙었다. 저녁을 먹으며 엄마는 말했다.

"곧 일을 쉬어야 할까 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입에 밥을 넣었다.

"보험 덕 볼 일 생겼네"

엄마는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왔다. 하루에 2만 걸음을 걸었다. 다리가 쉽게 붓고 아팠다. 찜질로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의사는 하지정맥류라고 진단했다. 오래 서있고 많이 걸으면 생기는 병이었다. 레이저로 병든 정맥을 차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엄마는 수술하고 3일 동안 입원했다. 병원에서 엄마는 바지 옆단이 뚫린 흰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움직이기 편하지 않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며칠 동안 감지 못한 머리는 떡졌고, 씻지 못한 얼굴은 수척했다. 입에 맞지 않는 병원음식도 고역이었다.

환자복 입은 엄마를 보고 무덤덤하면, 그제야 어른이 됐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어른이 못됐다. 어깨가 아파 한의원을 다니고 주사를 맞을 때도, 다리가 아파 압박 스타킹을 입었을 때도, 나는 엄마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했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엄마는 보험 들기 잘했다며 웃었다.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27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평생 쓰지 않을 것 같았던 보험금을 써 다행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수술을 받고 한 달 뒤, 12년 만에 엄마는 일을 그만뒀다. 엄마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ABC를 등반하기로 했다. 주말마다 산을 다니던 엄마는 외국 산을 동경했다. 히말라야 등산을 준비하면서 엄마는 다큐멘터리 <산>을 봤고, <히말라야 걷기여행-평생 꼭 한 번 도전하고 싶은 꿈의 길>을 읽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ABC는 4130m야. 일반인이 히말라야를 오를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인데, 안나푸르나 ABC부터 시작하면 된대."

엄마는 곧 눈 앞에 다가올 히말라야를 새벽까지 공부했다. 안나푸르나 ABC를 시작으로 안나푸르나 라운딩, 에베레스트 트레킹 루트도 오르겠다고 했다.

트레킹 경험자들은 고산병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고산병은 체질에 따라 고통스러울 수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고산병 없겠지.' 엄마는 생각했다.

히말라야는 냉정했다

히말라야에서 엄마
 히말라야에서 엄마
ⓒ 김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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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는 높았다. 엄마는 고산병을 앓았다. 올라갈수록 숨쉬기가 어려웠다. 세 발자국 걷고 쉬고를 반복했다. 다리도 부었다. 목표 지점까지 오르긴 했으나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엄마는 일주일을 앓았다.

"일을 그만두지 않았어도 아팠을까?"

엄마가 내게 물었다. 아마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답했다.

"그치, 아플 틈도 없었겠지?"

라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그만두면 한동안 아팠다고 했다. 아플 시간이 없던 엄마는 시간이 생기자 아팠다.

히말라야는 냉정했다. 지친 어깨와 다리로 오르기를 거부했다. 히말라야를 좋아한다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버려진 사람처럼 엄마는 앓았다.

엄마는 더 이상 산을 오르지 않는다. 산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챙겨보지도 않고, 책을 읽지도 않는다. 꿈꾸던 히말라야를 엄마는 즐길 수 없었다. 12년 동안 어깨에는 석회가루가 쌓였고 다리의 정맥은 늘어나 제 구실을 못했다. 이제 엄마의 다리는 취미와 노동을 구분하지 못한다.

"올 때 가로수 가져와."

집에 올 때 구인구직 신문 '가로수'를 챙겨오라고 엄마는 말한다. 12년을 일하고 2개월을 쉰 엄마는 다시 '가로수'와 '벼룩시장'을 뒤적인다. 매일 같은 듯 다른 구인구직 광고를 살핀다.

어디든 엄마가 일을 다시 시작하면, 또 언제 쉴 수 있을지는 모른다. 만약 쉬게 된다면 또 다시 가로수를 뒤적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확실한 건, 이제 엄마는 히말라야를 오를 수 없다는 거다.



태그:#엄마, #히말라야, #가족,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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