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관해서는 항상 '경우의 수'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승점 계산도 모자라 골 득실차까지 계산하며 뛰어야 한다는 사실에 코칭 스태프는 물론 팬들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23세 이하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 대표팀 김봉길호도 17일 밤에 그 착잡한 경우의 수에 휘말려야 한다.

그런데 하루 먼저 북한이 우리를 향해 큰 교훈을 남겨주었다. 승점 3점 차이로 2위를 유지하고 있다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는 바람에 3위로 미끄러져 8강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비겨도 되는 경기에서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고 말았다.

주성일 감독이 이끌고 있는 북한 23세 이하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16일 오후 5시 중국 장수에 있는 장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B조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1-3으로 졌다. 같은 시각에 열린 팔레스타인과 태국의 경기가 5-1로 끝났기 때문에 북한은 3위로 미끄러지며 8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경우의 수 앞에서 비겨도 되는 경기는 없다

이번 대회 개최국 중국도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A조 첫 경기에서 오만을 3-0으로 눌렀으니 오랜만에 아시아 축구의 강팀들과 8강 이상 토너먼트에서 실력을 겨룰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중국은 우즈베키스탄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0-1로 발목을 잡히더니 결국 카타르와의 마지막 경기도 1-2로 무너졌다. 카타르(3승)와 우즈베키스탄(2승 1패)에 밀려 조 3위로 떨어져 홈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태국과의 B조 첫 경기에서 1-0으로 이긴 북한은 팔레스타인과의 두 번째 경기를 1-1로 비기는 바람에 불안한 2위(승점 4점)로 마지막 경기를 치러야 했고 상대는 가장 먼저 8강 진출을 확정한 일본이었다.

대회 규정상 같은 시각에 치러야 하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3위 팔레스타인(승점 1점)은 최하위 태국을 만나게 됐다. 여기서 북한은 단순한 경우의 수 앞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 이미 8강 진출권을 손에 쥔 일본을 상대로 지지만 않으면 함께 8강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축구가 마음처럼 결과도 그랬던가?

북한은 일본을 상대로 전반전에만 2골을 내줬다. 수비면에서 잘 버티다가 프리킥 세트피스로 어이없는 골을 내준 것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32분, 미드필드 지역에서 프리킥을 얻은 일본은 이토 히로키가 멀리서 공을 차올렸고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야나기 다카히로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의도한 것과는 달리 야나기 다카히로의 왼쪽 발에 맞고 방향이 바뀌어 공이 오른쪽 구석으로 굴러 들어간 것이다.

일본은 이것도 모자라 43분에 미드필더 이토 히로키의 왼쪽 끝줄 컷백 크로스로 미요시 코지의 왼발 추가골까지 성공시켰다. 축구장에서 가장 흔하게 만들어지는 45도 컷백 크로스-골문 앞 슛 공식 바로 그것이었다. 그 와중에 북한 수비수 네 명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위험 지역에서 상대 공격수 단 1명을 여러 명의 수비수들이 묶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뼈아픈 페널티킥 실점까지

이처럼 북한은 비겨도 되는 경기에서 전반전에만 2골을 내주며 주저 앉았다. 후반전 초반 일본 수비수 코가 다이요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만회골을 터뜨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너무 동점골에만 마음이 가 있는 바람에 수비 쪽에서 저질러서는 안 될 뼈아픈 실수가 나왔다.

72분, 북한 수비수 김남일은 일본의 전진 패스를 1차로 잘 막아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어진 일본 미드필더 하타데 레오의 드리블 순간 무리하게 다리를 뻗어 그를 넘어뜨린 것이다. 김남일은 주심에게 다가가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걸기 반칙이었다.

일본의 하타데 레오는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오른발로 찼는데 북한 골키퍼 강주혁이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그 공을 막아냈다. 그런데 골키퍼의 손끝을 스친 공이 기둥에 맞고 다시 강주혁의 몸에 맞아 굴러 들어갔다. 안타까운 자책 골이었다.

이로써 북한으로서는 8강 진출을 위해 최소한 2골이 더 필요했다. 85분에 간판 골잡이 김유성이 일본 골문 바로 앞에서 헤더로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일본 골키퍼 하타노 고가 놀라운 반사 신경을 자랑하며 그 공을 쳐 냈다.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은 이미 꺼진 뒤였다.

이제 한국 대표팀 김봉길호도 17일 오후 8시 30분에 3위 호주와 D조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승점 4점으로 한국이 1위이고 그 뒤를 같은 승점 3점으로 베트남과 호주가 나란히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경우의 수를 간단히 따졌을 때 한국은 호주와 비겨도 '베트남-시리아' 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8강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북한처럼 패했을 경우에는 1위에서 3위로 미끄러지며 8강에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 뼈아픈 교훈을 겪고 먼저 짐을 싼 북녘 친구들이 김봉길호에게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해야 할 분명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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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8 AFC U-23 챔피언십 B조 3차전 결과(16일 오후 5시 장인 스타디움-중국 장수)

★ 북한 1-3 일본 [득점 : 김유성(52분,도움-최주성) / 야나기 다카히로(32분,도움-이토 히로키), 미요시 코지(43분,도움-이토 히로키), 강주혁(73분,자책골)]

◇ B조 최종 순위표
일본 9점 3승 5득점 1실점 +4 ***** 8강 진출!
팔레스타인 4점 1승 1무 1패 6득점 3실점 +3 ***** 8강 진출!
북한 4점 1승 1무 1패 3득점 4실점 -1
태국 0점 3패 1득점 7실점 -6

◇ 8강 대진표 일부 확정
B조 1위 일본 - A조 2위 우즈베키스탄
A조 1위 카타르 - B조 2위 팔레스타인
C조 1위 - D조 2위
D조 1위 - C조 2위
축구 북한 일본 U-23 챔피언십 김봉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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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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