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광주광역시에는 남광주역시장이라는 전통시장이 있습니다. 남광주역시장은 원래 1930년 광주에서 여수까지 광여선(光麗線) 역사(驛舍)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철도가 놓일 당시 역사 이름은 '신광주역'이라 했는데, 1938년 4월에 '남광주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추억과 역사가 있는 남광주역시장

남광주역 새벽시장에는 기차 모형의 추억의 포토존이 있습니다.
 남광주역 새벽시장에는 기차 모형의 추억의 포토존이 있습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옛 남광주역은 광주 인근지역 화순이나 나주 등지에서 광주로 유학하는 학생들의 통학길 중심지이자, 남광주시장에 농수산물을 팔러오는 장사꾼들의 관문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광주에서 화순, 여수 더 나아가 부산까지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길목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초창기 한적했던 철길은 도시가 점차 넓어지고, 시내 한복판을 지나게 됨으로써 철길로 인한 피로감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게 되었습니다. 소리 내어 달리는 철마가 낭만을 뛰어넘어 소음이라는 고통을 남겨주기에 이른 것입니다. 결국 경전선이 도시외곽으로 옮겨지고, 남광주역도 문을 닫았습니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공간은 '푸른 길 공원'이란 선물로 태어났습니다. 시민들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것입니다. 연장 7.9km나 되는 '푸른 길'은 걸어 이동하기에 좋은 길과 산책길이 되었습니다. 폐선(廢線) 부지 기찻길에 꽃과 나무를 심고, 철길은 초록의 길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남광주역에는 '푸른길 공원'과 상설시장 주차장에 새벽시장이 열립니다.
 남광주역에는 '푸른길 공원'과 상설시장 주차장에 새벽시장이 열립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남광주역에는 보기 드문 진기한 새벽시장이 펼쳐집니다. 꼭두새벽 푸른 길 공원길과 남광주 상설시장 주차장에 도깨비시장 같은 새벽장터가 열립니다. 도깨비시장은 동이 뜨기 훨씬 전부터 상인들이 장보타리를 풀고, 아침 9시가 되면 일찍 짐을 싸는 번개시장입니다.

그야말로 반짝 서는 장은 적게는 200개, 많게는 300개 남짓 노점상들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곳 새벽장은 여느 곳보다 값도 싸고 싱싱한 채소와 생선이 거래되어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펼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며 정겨움이 묻어납니다.

아침 9시가 되면 떠들썩한 새벽시장은 관리인의 휘파람소리에 장사꾼들은 하나 둘씩 장을 떠납니다. 순식간에 벌어집니다. 노점상들이 떠난 자리는 다시 '푸른 길'이 열리고, 상설시장 주차장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남광주시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밤기차야시장'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남광주역시장은 하루에도 각기 다른 모습의 얼굴이 바뀌는 참 재미있는 시장입니다. 건물 안 상설시장은 상설시장대로 노점상은 노점상대로 상생하는 보기 드문 시장인 것입니다.

남광주시장의 특별한 기차도서관

아내와 함께 광주에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남광주시장 옆 여동생이 사는 집에 며칠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둑어둑한 새벽이 밝아오자 나는 아내를 깨웠습니다.

"새벽시장 구경 가지 않을래?"
"날도 추운데... 좀 있다가!"
"이 사람, 반짝시장이라 이따 가면 장 파한다고!"
"그럴까? 그럼 서두릅시다!"

아내도 새벽시장에 대한 기대가 큰 모양입니다.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납니다. 장터 초입 '푸른 길'을 따라 많은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손님을 부릅니다. 주말 아침이라 장터는 시끌벅적합니다.

'푸른 길 공원'에는이른 새벽부터 새벽시장이 열립니다.
 '푸른 길 공원'에는이른 새벽부터 새벽시장이 열립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싱싱한 해산물도 새벽시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싱싱한 해산물도 새벽시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옛 철길을 따라 장꾼들 보따리를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 각종 해산물이 사람들을 부릅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흥정하는 모습도 정겹습니다.

천천히 발길을 옮기니 폐 열차를 이용한 기차도서관이 보입니다. 아직 문은 열지 않았지만, 이색적인 작은 도서관입니다. 운행이 중단 된 기차 칸을 도서관으로 변신시켰습니다. 옆에는 기차 카페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광주역 '푸른 길 공원'에 있는 기차도서관. 폐 열차 칸을 이용하여 작은도서관을 꾸며 놓았습니다.
 남광주역 '푸른 길 공원'에 있는 기차도서관. 폐 열차 칸을 이용하여 작은도서관을 꾸며 놓았습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남광주역 '푸른 길 공원'에는 기차도서관과 기차까페가 있습니다. 쉬어가는 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남광주역 '푸른 길 공원'에는 기차도서관과 기차까페가 있습니다. 쉬어가는 공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푸른 길 기차도서관은 인근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이면서 놀이공간을 꾸며놓았다고 합니다. 바닥에서 놀며 편안하게 독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어른들도 간이도서관에서 마치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책 읽는 기쁨을 주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기차도서관, 누가 생각했는지 참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철길을 정비하면서 사라지는 것들을 유용하게 활용한 생각이 신선합니다. 아내가 기차도서관 기웃기웃하다 발길을 멈추고,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광주에서 평양 가는 기차도서관의 행선지. '푸른길'호 입니다.
 광주에서 평양 가는 기차도서관의 행선지. '푸른길'호 입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기차도서관의 내부입니다. 밖에서 촬영했는데, 마룻바닥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차도서관의 내부입니다. 밖에서 촬영했는데, 마룻바닥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기차도서관 옆 행선지를 좀 봐?"
"도서관 열차에 무슨 행선지가 다 있어?"
"저걸 보라고! 광주에서 평양이라고 되어 있잖아!"
"정말이네!"

기차도서관에 몸에 붙은 행선지 표지 광주→평양이 생뚱맞습니다. 무궁화호나 통일호 이름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푸른길'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른바 '푸른길호' 열차라는 것입니다.

행선지를 보고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혹시 광주→광양이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광주에서 평양 가는 행선지가 맞습니다. 한자와 영어까지 정확하게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기차도서관이 광주에서 평양까지 쭉 달렸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놓은 듯싶습니다. 통일의 염원처럼 들립니다.

'기차도서관을 타고 책 읽으면서 평양까지 가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아내는 지름신이 강령하셨는지 푸성귀, 과일, 싱싱한 생선 등 이것저것 많은 것을 삽니다.

새벽 가로등이 불빛을 잃고, 날이 훤하게 밝아옵니다. 손에 들린 보따리의 무게도, 볼에 닿는 차가움도 싫지 않습니다. 발길을 돌리는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인심 좋고 싱싱한 물건 싸게 사고, 평양 가는 기차 상상도 하고! 남광주역 새벽장 구경 잘했네!"


태그:#남광주역, #남광주시장, #새벽시장, #기차도서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