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줄 서서 가는 차
▲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줄 서서 가는 차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2년 전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본부장실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때는 이미 퇴사 처리가 다 된 상태였고 온갖 회유와 협박(?)도 폭풍처럼 지나간 후라 나도 그들도 참 마음이 평안했다. 정년이 아직 5년 남은 본부장님과 여전히 40대로 보이는 차장님과 셋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차를 마셨다.

"그래, 문화 쪽 일을 할 거라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본부장님이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말은 안했는데 나도 가끔 색소폰을 분다고. 젊었을 때는 카페에서 DJ도 했었고. 음악다방이라고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지. 책도 많이 봐. 요즘도 소설은 좋아해요. 김훈 <칼의 노래> 읽어봤나?"

본부장실에서 나오자 차장님이 슬며시 내 팔을 끌었다.

"내가 원래는 드러머였거든.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걸 직업으로 했다구. 강동구 나이트클럽에서 우리 밴드가 반주를 했었어. 예술 할 거니까 이해하지? 나도 내가 이렇게 회사만 다닐 줄 몰랐다고."

차장님은 지갑에서 조심스레 젊은 시절 자신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귀퉁이가 닳은 낡은 사진 속엔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 장발(!)의 젊은이가 선글라스를 쓰고 드럼을 치고 있었다.

추억의 사진
 추억의 사진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이해하지 않냐고, 우리는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니냐고,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실은 나도 자유로운 영혼인데. 동의를 구하듯 눈을 맞추는 그들의 모습이 문득 슬펐다. 비로소 '외부인'이 된 내게 대단한 것인양 털어놓았던 그들의 보잘 것 없는 비밀이 쓸쓸했다.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남들이 관심 갖지 않을 비밀을 보석인양 몰래몰래 닦아보지 않을까. '난 사실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중얼거리지 않을까. 아마 그들 역시 오십 대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 속은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청년일 텐데 말이다.

가끔 그날을 생각하면 의사 앞에서 시한부 선고를 기다리는 환자처럼 한없이 쪼그라든다(실상 우리는 모두 시한부가 아니던가). 왜 본부장님은, 그리고 차장님은 계속 '딴짓'을 하지 않았을까? 회사원이면서 소설가일 수도, 직장인이면서 드러머일 수는 없었던 걸까?

어제와 비슷한 오늘, 오늘과 비슷한 내일에서 벗어나기

비상구
▲ 비상구 비상구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라이프' 잡지사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는 월터에 대한 이야기다. 해본 것도, 가본 곳도 없이 늘 상상하기만을 즐기는 월터는 어느 날 유명한 사진작가가 보내온 표지 사진을 잃어버린다.

사진작가를 찾아나선 그는 상상으로만 했던 일들을 경험한다. 그린란드를 여행하고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상어와 싸운다. 이 모든 걸 경험한 후의 월터는 이전의 그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변한 그에게 인터넷 만남 사이트 관리자는 말한다.

"전화 속에서 들었을 때는 안경 쓴 꼰대 아저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살아 있는 인디아나 존스를 만났군요!"

직장인에게 이만한 판타지 영화가 있을까. 폭발하는 화산 속으로 뛰어가던 월터의 하루는 틀림없이 그 이전의 하루보다 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영영 '판타지'인 것은 우리에겐 오지로 떠난 사진 작가를 찾아낼 극적인 일도, 그 와중에 대단한 모험을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회사
▲ 회사 회사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어딘가로 떠난다고 해서, 인생의 멘토를 만난다고 해서 삶이 영화처럼 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의 날들은 결코 쇠털만큼 많지도, 무조건 특별하지도 않다.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만큼만, 내가 이름을 부르는 만큼만 변한다.

어제와 오늘을, 오늘과 내일을 다르게 만드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조금 해보는 것. 자기 전에 펜을 들거나, 시를 낭독하는 것. 카메라를 들고 골목으로 나가는 것. 빈 종이에 배운 적 없는 스케치를 해보는 것. 유튜브 동영상으로 어설프게 기타를 따라 쳐보는 것. 새벽 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는 것.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그런 소소한 일이다.

한 방향으로만
▲ one way 한 방향으로만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계간지 <딴짓>은 그런 일들을 '딴짓'이라 부른다. 딴짓으로 돈을 벌 필요는 없다. 물론 그 분야에서 유명인이 되거나 거장이 될 필요 역시 없다. 대단한 성과를 달성할 필요도, 제 2의 인생을 위한 디딤돌이 될 압박도 없다.

그 유명한 일만시간의 법칙을 달성해서 비틀즈가 될 것도 아니며 조기축구를 한다고 나이 마흔에 베컴이 될 것도, 지단이 될 것도 아니거늘. 야구선수만 야구를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딴짓에는 하나의 조건만 필요하다. 프랑수와즈 사강식으로 말하자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딴짓은 즐거우면 된다.'

stay focus
 stay focus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딴짓을 하면 진시황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꿈꿨던 '생명 연장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궤변도 있다. 무슨 헛소리인고 하니 매일 하는 반복적인 일에서 벗어나 무언가 '낯선 일'을 하면 시간은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면 그 하루하루가 얽히고 설켜 알 수 없는 뭉텅이로 남는다. 지난 주 수요일은 무얼 했더라? 회의였나. 그건 화요일이었지. 회식이었나. 그건 목요일이었던가? 하는 식이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 시간은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길보다 낯선 길을 갈 때 더 오래 걸리는 것처럼. 새로운 도전을 하면 하루가 길어지는 셈이다.

가끔 미래의 내가 '왕년에'와 '한때는'을 남발하는 55세가 될까 두렵다. 정신을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린 젊은이를 억지로 앉혀 두고 "사실 난 이런 데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할것 같아서. 내가 당도할 '이런 데'란 대체 어디일까.

그러니 '원래는'과 '예전엔'과 '젊을 땐'에 이어지는 삶을 사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당도한 곳이 설사 '이런 데'라 할지라도 덜 억울할 것 같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여기'를 희생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딴짓'하며 살았으니까.

딴짓 좀 한다고 우리가 월터처럼 '인디아나 존스'가 될 리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딴짓은 '어떤 것을 위한 무엇'은 아니다. 딴짓은 하는 것 자체로 이미 내게 의미가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우리는 딴짓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쓸모' 있는 무엇에 지친 직장인에게 쓸데없는 딴짓을 적극 권장한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태그:#딴짓, #직장인, #회사원, #퇴사, #일상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