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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이 오다, 새벽. 멀리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잔잔히 작게 들기는 차 소리가 아직 아침을 열기에는 역부족인가 보다. 눈을 뜨고 먼저 영순이 얼굴을 살핀다. 곤하게 자고 있다. 일어나 행동도 마음도 조심스레 움직인다.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무위 광장하일호텔 로비에 집결 시간은 7시 30분이다. 식사 후 화장실로 이를 닦으러간 영순이가 늦는다. 두 개의 캐리어와 백팩을 확인해 짐칸에 넣고 작은 숄더백만 챙겨 버스에 오른다.

잠시 후 영순이가 옆자리에 와서 앉는다. 수십 년을 함께 시간을 걸어 온 지기, 친우다. 바로 뒤에는 후배 진경이가 앉는다. 진경이가 자리에 앉는 순간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선후배와 학계 지인이 의기투합해 떠나온 여행이다. 진경이는 투병중인 몸으로 함께 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오늘도 무사히 진경이의 몸 상태를 주관해주세요. 진경이와 함께해 주세요.' 염원은 간절함으로 목이 멘다. 곧이어 이 여행탐방을 주관한 사마천의 대가 김영수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이날의 일정을 설명한다.

낙타를 타고 명사산을 오르다
▲ 명사산을 오르는 낙타 행렬 낙타를 타고 명사산을 오르다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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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돈황으로 간다. 무위에서 돈황까지 5시간 정도 걸릴 것이고 가는 도중 휴게소 두 곳에서 잠시 머물 예정이다. 돈황으로 가는 길 내내 짙은 황사가 시야를 가렸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무진을 뺑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안개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던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생각난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안개뿐이고 형체조차 뿌연 <무진기행>의 표지가 순식간에 떠오른다.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볼 수가 없다. 안개가 아닌 황사가 주는 느낌은 안개보다 더욱 두려운 느낌이 든다. 안개는 햇살 속에 감춰지며 형체를 서서히 드러내는데 황사는 도저히 개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새삼 일행이 탄 버스만이 안전한 공간이라는 생각에, 이 짙은 황사 속을 뚫고 운전을 하는 분께 깊은 감사를 느낀다. 황사가 내내 계속 될 것 같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끝이 없는 황사뿐이다.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뿌연 황사. 도저히 어떤 물체의 모습도 드러날 것 같지 않다.

모든 탐방원들은 이 거대한 황사에도 불구하고 아침 잠에 빠져 있다. 잠시 눈을 감아 보았다. 그저 아주 잠시.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니, 이게 웬일!' 버스만 타면, 차만 타면 눈을 감고 잠을 청하던 영순이가 오늘의 일정을 공부하고 있다. 열심히. 뒷자리에 앉은 진경이를 체크하려 뒤돌아보니 그 녀석도 공부를 하고 있다.

무위를 떠난 지 1시간 20분쯤 앞을 가리는 황사가 계속되고 있다.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눈을 뜬 영순이가 황사 낀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며 가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거리는 얼마나 될까? 100여 미터나 될까? 가늠으로 하는 말이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도로와 도로를 따라 지나는 흐릿한 이정표와 도로 펜스뿐이다.

황사 짙은 아침 무위에서 돈황으로 간다. 막고굴, 명사산을 눈에 담기 위해... 드디어 명사산에 도착했다. 안타깝게도 먼저 반기는 것은 오는 수 시간 내내 계속되었던 황사에 버금가는 모래바람이었다. 물론 황사와 다름이 아니지만 굳이 모래바람이라고 명명하고 싶었다. 명사산에서 부는 모래바람이기에...

황사는 오로지 돈황으로 오는 길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명사산에서 부는 모래바람을 막고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썼다. 또한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한 탐방에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황사. 모래바람만이 아니었다.

명사산을 오르다
▲ 명사산 명사산을 오르다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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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산을 오르기 위해 낙타를 기다리며 늘어선 줄도 황사를 뚫고 지나온 길만큼이나 끝이 없었다. 망연히 긴 줄 맨 뒤에 섰다. 그때 갑자기 낙타 냄새가 갑자기 역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낙타 냄새를 맡으며 한 시간여를 기다렸다.

차례가 되자 낙타부가 다가왔다. 낙타부는 능숙하게 낙타를 다뤘다. 낙타부 지시에 따라 낙타가 앉았다. 낙타등에 타자 그 순간 낙타가 다리를 세우며 휘청하더니 금방 완전하게 섰다. 현기증이 순간 일었다. '괜찮아!' 영순이 소리가 멀리 들렸다.

명사산. 모래바람으로 반긴 명사산을 낙타를 타고 올랐다. 산에 오르며 보이는 전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끝을 모르는 낙타 행렬이 줄을 지어 계속되었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모래산을 오르고 내리는 모습은 숭고하고 거대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삶에서 예외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이라는 것을.

앞을 가늠할 수 없는 황사, 모래바람 또는 미세먼지 속에서 실크로드를 따라가며 다다른 명사산에서 그 옛날 대상들이 느꼈을 환희와 애환이 보였다. 대상들은 닥칠 상황을 모르기에 모든 것이 경이로운 애환이었을 것이고 또 이미 지난 험난한 여정이 있었기에 다가올 모든 상황에 대한 예측은 빛나는 환희였을 것이다.

어쩜 우린 모두 그 시간을 거슬러 가고 싶었던 마음이 강렬했기에 지금 명사산에서 한 손으로는 입을 막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낙타 줄을 잡고 과거의 대상처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환과 환희 속에서...

낙타 키홀더
▲ 명사산 낙타 낙타 키홀더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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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위에서 돈황으로 가는 길, 짙은 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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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 전공. 문학은 세계로 향하는 창이며, 성찰로 자신을 알게 한다. 치유로서 인문학을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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