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명가 리버풀과 맨시티의 명 경기가 지난 15일 새벽에 진행됐다.

축구명가 리버풀과 맨시티의 명 경기가 지난 15일 새벽에 진행됐다. ⓒ 연합뉴스


월요일 새벽 잠을 설친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축구였다.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 중 하나인 안필드에서 예상했던 대로 축구장을 넘어 감동적인 극장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 벌어졌다. 골을 넣기 위한 개인 기량의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며 팀은 조직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명경기가 나온 것. 중국 쿤샨에서 진행중인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의 한국대표팀을 위한 처방전처럼 여러 번 돌려보면서 깨달아야 할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이끌고 있는 리버풀 FC가 한국 시각으로 15일 오전 1시 안필드에서 벌어진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홈 경기에서 4-3으로 멋진 승리를 거두고 리그 3위까지 뛰어올라 상위권 순위표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놓았다.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존재감

아무리 리버풀의 홈 구장 안필드라고 하지만 상대는 리그 22경기 연속 무패(20승 2무) 기록을 자랑하며 일찌감치 우승 트로피를 점찍어 둔 최강 팀 맨시티였다. 2위 맨유와의 승점 차이가 15점이나 벌어져 있기 때문에 이변이 연속해서 벌어지지 않는 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끌고 있는 맨시티의 독주 우승은 의심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리버풀은 위르겐 클롭 감독의 상징전술인 압박 축구를 보기 좋게 성공해냈다. 팀의 간판 공격수였던 필리페 쿠티뉴가 FC 바르셀로나(스페인)로 떠났기 때문에 공격력에 문제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리버풀은 흔들리지 않았다.

맨시티는 리그 22경기를 치르며 단 13골밖에 내주지 않은 최소 실점 팀이었지만 '사디오 마네-호베르투 피르미누-모하메드 살라'의 쓰리 톱은 자신들의 장점을 보란듯이 다 쏟아냈다. 이 쓰리 톱이 만든 공격 포인트는 '3득점 2도움'이었다.

이들은 쓰리 톱이기 전에 맨 앞에서 뛰는 첫 번째 수비수들이었다. 공간으로 빠져들어가며 동료의 패스를 기다렸다가 받아먹는 것은 리버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이 쓰리 톱은 쉼 없이 상대 수비수와 공 다툼을 펼쳤다.

경기 시작 후 9분만에 리버풀의 선취골이 터질 때에도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맨시티 수비수 파비안 델프와 적극적인 공 다툼을 펼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공을 받아들고 속도를 낸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은 박스 밖에서 과감한 오른발 슛을 성공시켰다.

상대 수비수들이 예상할 수 있는 공격 흐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간파당하고 막힐 수밖에 없다. 어차피 축구는 상대를 쉽게 예측하지 못하게 하며 뜻밖의 거리, 각도, 타이밍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낼 줄 알아야 이기는 법이다. 선취골 주인공 체임벌린도 그랬고 그 공을 도운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더욱 예측하기 까다로운 존재였다.

1-1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후반전 초반에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존재감은 빛났다. 축구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역습 상황에서 두 선수가 어떻게 짝을 이뤄 속도를 높이고, 결정력을 자랑하는가를 잘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59분, 역습 드리블 속도를 높인 주인공은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었고 공간으로 빠져들어가는 파트너는 호베르투 피르미누였다. 체임벌린의 패스 타이밍도 훌륭했지만 맨시티 센터백 존 스톤스와의 어깨 싸움을 이겨낸 피르미누의 낮은 중심과 드리블 방향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체격 조건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존 스톤스가 피르미누의 어깨 싸움에 떨어져나갔다. 맨시티 팬 입장에서는 밀기 반칙이라고 항의할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안드레 마리너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그리고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맨시티 골키퍼 에데르손이 각도를 줄이며 달려나오는 것을 예상하여 오른발 찍어차기로 골을 노렸다. 결코 쉽지 않은 각도였고 비교적 느린 궤적이었지만 피르미누의 오른발 끝을 떠난 공은 맨시티 골문 오른쪽 기둥을 스치며 골 라인 안에 떨어졌다.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경고를 각오하면서까지 유니폼 상의를 벗어던지며 자신의 가치를 5만의 홈팬들 앞에서 맘껏 자랑했다.

몇 시간 전 중국 쿤샨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 D조 경기에서 조 최하위 시리아를 상대로 위력적인 슛을 거의 만들어내지도 못한 채 득점 없이 비긴 한국 대표팀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경기다. 역습의 속도와 패스 방향, 마무리의 섬세함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흉내낼 수는 없지만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명장면임에 틀림없었다.

상대의 실수 놓치지 않기

승리를 위해선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피르미누의 추가골을 확인한 리버풀 선수들은 미리 약속한 것처럼 더 적극적인 압박 축구로 맨시티 선수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쓰리 톱 바로 그들이 시작한 높은 곳에서의 압박 수비가 압권이었다.

그 덕분에 61분에 빌드 업을 시작하던 맨시티의 수비형 미드필더 페르난지뉴가 어이 없는 백 패스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리버풀의 사디오 마네가 오른발 감아차기 슛을 날렸다. 비록 그 공이 오른쪽 기둥에 맞고 나갔지만 리버풀의 강력한 압박이 적절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맨시티는 곧바로 짧은 패스로 빌드 업을 또 시작했다. 하지만 리버풀 선수들은 제대로 물이 올랐다. 맨시티 센터백과 미드필더들이 3각 패스로 공을 돌린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여기서 맨시티 센터백 오타멘디의 패스 미스가 나왔다. 그의 바로 앞에 모하메드 살라가 바짝 붙어있었던 것이다. 리버풀은 이렇게 리그 무패의 최강 팀 선수들의 실수를 적극 유도한 것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공을 소유한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는 여유 있는 드리블로 동료 사디오 마네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확인했고 패스를 받은 사디오 마네는 회심의 왼발 슛으로 맨시티 골문 왼쪽 톱 코너를 꿰뚫었다.

그로부터 7분 뒤에도 리버풀 선수들은 무서울 정도로 달려들어 상대의 실수를 또 이끌어냈다. 이번에는 맨시티 골키퍼 에데르손의 킥 실수가 나왔다. 그 짧은 공을 잡은 모하메드 살라는 기다렸다는 듯 자로 잰 듯한 왼발 감아차기로 빈 골문 안에 정확하게 공을 떨어뜨렸다. 1-1이었던 후반전 초반의 점수판이 9분만에 4-1로 변했으니 맨시티 선수들 입장에서는 빨강색 옷을 입은 귀신에 홀린 듯 보였을 것이다.

비록 종료 직전까지 맨시티가 2골을 추가했지만 리버풀의 승기를 휘어잡지 못했다. 리버풀은 맨시티를 맞이하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가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실천했다. 결국팬들은 리버풀의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를 수 있었다.

3위로 끼어든 리버풀 덕분에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순위표가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변했다. 맨시티의 단독 선두 질주는 아직 유효하지만 2위 맨유부터 4위 첼시 FC에 이르기까지 같은 승점(47점)에 놓였고 손흥민이 활약하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가 바로 뒤 5위(44점)로 따라붙었다. 다음 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 팀을 점치기가 매우 어렵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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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결과(15일 오전 1시, 안필드)

★ 리버풀 FC 4-3 맨체스터 시티 FC [득점 :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9분,도움-호베르투 피르미누), 호베르투 피르미누(59분,도움-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사디오 마네(61분,도움-모하메드 살라), 모하메드 살라(68분) / 르로이 사네(40분,도움-카일 워커), 베르나르두 실바(84분), 일카이 귄도안(90+1분,도움-세르히오 아게로)]

◎ 리버풀 선수들
FW : 사디오 마네(90+4분↔라그나르 클라반), 호베르투 피르미누, 모하메드 살라(88분↔애덤 랠러나)
MF : 조르지니오 베이날덤, 엠레 잔(79분↔제임스 밀너),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DF : 앤드류 로버트슨, 데얀 로브렌, 조엘 마티프, 조셉 고메스
GK : 로리스 카리우스

◎ 맨시티 선수들
FW : 르로이 사네, 세르히오 아게로, 라힘 스털링(71분↔베르나르두 실바)
MF : 일카이 귄도안, 페르난지뉴, 케빈 데 브라위너
DF : 파비안 델프(31분↔다닐루), 니콜라스 오타멘디, 존 스톤스, 카일 워커
GK : 에데르손

◇ 2017-2018 잉글리스 프리미어리그 현재 순위표(상위 10팀)
1 맨체스터 시티 62점 20승 2무 1패 67득점 17실점 +50
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7점 14승 5무 3패 45득점 16실점 +29
3 리버풀 FC 47점 13승 8무 2패 54득점 28실점 +26
4 첼시 FC 47점 14승 5무 4패 41득점 16실점 +25
5 토트넘 홋스퍼 44점 13승 5무 5패 46득점 21실점 +25
6 아스널 FC 39점 11승 6무 6패 41득점 30실점 +11
7 번리 34점 9승 7무 7패 19득점 20실점 -1
8 레스터 시티 31점 8승 7무 8패 34득점 32실점 +2
9 에버턴 27점 7승 6무 10패 25득점 38실점 -13
10 왓포드 26점 7승 5무 11패 33득점 42실점 -9
축구 호베르투 피르미누 리버풀 프리미어리그 맨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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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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