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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 26일 뉴욕타임즈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장의 사진이 실린다. 보도사진 작가 케빈 카터가 1993년 수단에서 찍은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다. 그 사진은 아프리카의 참상을 드러내는 아이콘이 되었고 그해 4월 12일 케빈 카터는 그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는다.

그는 유명해졌지만 보도를 위해 생명 윤리를 저버렸다는 비난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고 한다. 세간의 비난과 생활고를 비관한 그는 3개월 후인 7월 27일에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아프리카 하면 제일 먼저 기아가 떠오르는 것은 그런 사진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더 많은 아이들이 기아만이 아니라 전쟁, 불결한 환경으로 인한 전염병 등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선의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유니세프 총제 짐 그랜트 이야기
▲ 휴머니스트 오블리주 선의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유니세프 총제 짐 그랜트 이야기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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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오블리주>(부키)는 전 세계 모든 아이들에게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유엔아동기금 총재 제임스 피네오 그랜트의 삶과 업적을 짚어 본 책이다. 자신도 두 번이나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던 짐 그랜트는 전 지구촌 아동에 대한 예방접종을 목표로 삼아 실제로 4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 목숨을 살려냈다.

그는 아프리카, 중국, 인도만이 아니라 전쟁 중인 나라들도 마다지 않고 협상을 하고 설득을 해서 어찌하든 예방 접종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전략가, 세일즈맨, 행동가, 쇼맨십을 지닌 사람 등 다양한 명칭이 따라다녔다.

그는 예방 접종을 위해서라면 독재자나 살인광과의 협상도 마다지 않았다. 유엔의 관료주의 장벽도 훌쩍 뛰어넘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매체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쇼맨십도 뛰어났다.

그는 재임 기간 중 유니세프 재원을 세 배나 늘렸다. 그는 늘 자신과 직원들을 채찍질하며 일에 매달렸다. 그의 삶은 온전히 아이들의 생명에 대한 관심뿐이었다. 암으로 마지막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그는 일에 매달렸고 새로운 일을 기획했다. 그는 뒤돌아보는 일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었다.

"당신 아이는 죽지 않을 겁니다"

재임 15년 동안 그가 이뤄낸 업적을 뛰어넘는 사람이 없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독재자와 대화를 했고 설득을 했으며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살인광과도 손을 잡았다.

심적 갈등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는 오직 어린이들의 생명만 생각했던 것 같다. 숙소에서 손수 빨아서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었고, 늘 주머니가 불룩하게 소아마비 백신 재수화염 봉지, 요오드 첨가 소금시험용 잠적기 등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국왕 앞이건, 대통령 앞이건 독재자 앞이건 가리지 않고 그 물건들을 꺼내들고 그것이 어떻게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하곤 했다. 
마르고 약간 등이 구부정한 70세 정도 되는 백인 한 명이 텐트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물건이 잔뜩 들어있어 주머니가 불룩해진 파란셔츠를 바지에 넣지 않은 차림이었다. 주변을 훑어본 그가 말했다. "누가 저에게 물 한잔 주시겠습니까?"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똑 부러지는 말투였다. 누군가 물을 건네자 그는 셔츠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고 가지고 있던 숟가락도 꺼내들었다. 그런 다음 봉지를 뜯어 그 안에 든 가루를 물컵에 넣고 저었다. 그가 만든 음료는 소금과 설탕이 들어 있어서 심각한 탈수로 인한 치명적 증상을 신속하게 멎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컵을 내려놓고 그 음료를 아가에게 떠먹이기 시작했다. 아기 엄마 눈이 휘둥그래졌다. "다 괜찮을 겁니다." 아기 입에 물을 떠넣으며 엄마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아기는 살 수 있어요. 당신 아이는 죽지 않을 겁니다." 근처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통역했다. 10분 쯤 아가에게 음료를 떠넣던 그는 손을 멈추고 큰 소리로 "여기 있는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조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고는 텐트에서 나갔다. -10쪽
소말리아를 방문해서 있었던 일이고 저자에 의하면 유니세프 총재 그랜트의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그 아기가 회복을 했다니 말이다. 그랜트는 유엔의 이단아로 불리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일들을 가능한 일로 만들어 냈다.

그가 어린이를 위한 '세계 어린이 정상 회담'을 열겠다고 했을 때 모두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부시를 비롯해  71명의 국가수반이 한 자리에 모이는 정상회담을 이뤄냈고 그 회담은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정상회담이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꼼꼼하게 사전준비를 해 중장기 어린이를 위한 정책이나 지원금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고 그 약속은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가 그 정상회담에서 한 연설은 그의 신념과 어린이에 대한 그의 사랑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세상은 선의만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실천한 행동가였고 그가 옳았다. 어린이들의 생명의 소중함은 이념이나 정치권력,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차별받아선 안되고 그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실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정상회담을 통해 90년대가 세상의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10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계가 오늘 심의될 사업계획서를 통해 새로 규정될 것입니다. 사업계획서에는 어린이 사망률을 3분의 1이나 줄일 수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린이 영양실조를 반으로 줄일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아이들이 더 양질의 삶을 누리도록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이 노력을 계속하려고 여기 모인 우리는 오늘, 현재와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적용될 더 높은 기준을 새로 정할 것입니다. 그 원칙과 기치 아래 쓰인 가장 큰 원칙,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인류가 거둔 성공의 가장 첫 수혜자는 어린이들이 되어야하고, 인류가 한 실패의 가장 마지막 피해자가 어린이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364쪽

덧붙이는 글 | 휴머니스트 오블리주/애덤 파이필드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18,000원



휴머니스트 오블리주 - 선의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애덤 파이필드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2017)


태그:#유니세프, #짐 그랜트 , #에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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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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