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어 방과후 수업 금지'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뜨겁습니다. 교육부는 올 3월부터 시행되는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 학교과정 금지' 방침에 맞춰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도 금지하려 했지만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로 일단 한발 물러섰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서울시의 한 학원가 밀집 지역의 모습
 서울시의 한 학원가 밀집 지역의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올해 2학년으로 올라가면 방과후 영어수업 못 한다는데... 다른 계획 있으세요?"
"네, 그룹과외 알아보려고요. 그런데 비용이 만만치 않네요."

2018년 새 학기부터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 수업이 전면 금지된다기에 영어 그룹과외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수업이 한 달 기준으로 주 2회에 25만 원이었다. 학원은 좀 쌀까 싶었는데, 유명 대형학원은 주 3회에 30만 원을 불렀다. 지난해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의 방과후 영어 수업은 주 4회에 7만 5천 원 정도였다. 너무 차이가 났다.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의 영어 수업은 종일반 과정에 포함돼 있어 별도의 비용을 내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도 금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교육부가 일단 정책 시행을 내년 초까지 보류한다고 16일 발표했지만, 만약 그 이후에라도 금지된다면 둘째의 영어교육에도 추가로 돈이 들게 된다. 두 아이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는 비용은 총 50만 원이다. 아무리 가계부를 들여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아 한숨이 푹푹 나왔다.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내게 아는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진작 대형학원 보내지 그랬어. 학원이 답이라니까."

생각해보니 첫째의 학교에서 영어 방과후 수업을 듣는 학생은 1학년 중 겨우 4명뿐이었다. 다들 학원과 그룹과외로 영어를 배웠다. 방과후 영어는 매년 업체가 바뀌니 교육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저렴한 금액으로 원어민 영어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대형학원보다는 방과후 영어 수업을 고집했다. 하지만, 요즘 정책을 보면 내 선택에 후회가 밀려온다.

이미 '맘카페' 회원과 수많은 엄마들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청원을 넣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은 요지부동이다.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 수업 금지 방침은 2014년 제정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법 제정 당시 현장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로 영어 방과후 수업은 오는 2월 28일까지 적용 예외 대상으로 두었다. 일종의 유예기간을 줬으니 알아서 미리 준비해야 했다는 말인가? 뭘, 어떻게 준비해야 했던 걸까?

많은 학부모의 반발과 청원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이처럼 정책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선행학습 금지와 놀이 중심으로 방과후 수업을 개편한다는 의지가 있다. 영어교육 광풍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과도하게 선행학습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놀이 중심의 교육으로 창의성을 기르겠다는 뜻이다. 취지만 놓고 보면 좋은데도, 정부의 이같은 의도가 학부모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행학습 권하는 사회

요즘 엄마들도 과도한 선행학습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선행학습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와 각자의 기준만 다를 뿐, 선행학습은 영어를 포함해 전과목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요즘 엄마들도 과도한 선행학습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선행학습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와 각자의 기준만 다를 뿐, 선행학습은 영어를 포함해 전과목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정부가 주장하는 선행학습 금지 측면에서 보자. 선행학습은 말 그대로 학교 정규과정에 앞서 미리 학습을 한다는 의미이다. 과도한 선행학습이 오히려 학습을 방해하고 아이를 망친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TV에서도 여러 번 다뤘고, 육아서와 교육과 관련된 지침서들도 한목소리로 지적해왔다.

요즘 엄마들도 과도한 선행학습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선행학습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와 각자의 기준만 다를 뿐, 선행학습은 영어를 포함해 전과목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바로 대학 입시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회는 대학 입시의 문이 상당히 좁은 곳이다. 대학 입시는 아이들에게 잔인하리만치 공부를 강요하고, 그 좁은 문턱에서 낙오한 아이들에게 다른 대안을 주지 않는다. 현실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본 적이 없고, 배운 적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에게 사회는 더욱 냉혹하다. 사회의 많은 부분이 학교 서열과 인맥, 학맥으로 돌아가고 있고, 그 집단에 끼지 못하면 취직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게 현실이다. 취직은 무엇인가? 먹고 사는 길 아니던가.

지금의 학부모들은 이 과정을 모두 거쳤다. 그래서 그들은 안다. 내 아이의 미래가 대학 입시에 달려있다는 것을. 그것 말고는 사실상 대안이 없으며, 그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아이가 받아야 할 차별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대학 입시의 주요 과목 중 하나가 영어다. 영어, 수학, 국어는 선행학습이 이루어지는 가장 대표적인 과목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가 대학입시의 주요 과목 중 하나라는 사실이 학부모들을 영어 공부에 매달리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여전히 영어를 대학 입시의 필수 과목으로 선택하고 있으면서 방과후 영어를 금지한다는 것은 앞뒤 장단이 맞지 않는 정책일 뿐이다.

영어 권하는 사회

정부가 주장하는 '놀이 중심의 학습' 측면에서 보자.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어가 대학 입시의 주요과목 중 하나고, 10년 넘게 영어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대다수는 외국인과 자유롭게 대화하지 못한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 입시를 통과해 사회에 나왔다고 치자. 사회에서 요구하는 영어는 입시를 위한 지식이 아닌 말하기 능력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니 또 말하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 또다시 별도의 학원에 다니면서 배워야 하는 게 영어 공부의 현실이다. 대학 입시를 위한 영어와 실생활에서 써먹기 위한 영어가 다르다는 뜻이다.

영어회화를 잘하면 일단 취업에서 유리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취업도 노려볼 수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영어를 잘하는 인재를 우대한다. 국내사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업 영역에서도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토플이나 토익점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절차를 이미 경험한 학부모들은 안다. 내 아이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이 사회에서 누릴 기회가 훨씬 많다는 것을.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말하는 훈련을 시키고 싶어 한다.

이런 학부모들의 요구에 부합하듯 요즘 아이들의 영어교육은 말하기 중심이다.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세이펜으로 발음을 들으며 말하고, 노래한다. 놀이를 통해 영어를 배우고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어린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서 단어를 외우며 입시 준비하듯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가 말하는 놀이식 수업은 이미 수요에 따라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나 또한 사교육과 과도한 선행학습 반대론자였다. 정부가 어떤 의도로 그러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과 선행학습으로 인한 폐단을 없애고 싶었을 것이다. 거대한 물길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밖에 답이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어렵지만 제도가 자리 잡게 되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과 선행학습을 없앴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을 테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다

유아기의 영어는 놀이입니다
 유아기의 영어는 놀이입니다
ⓒ ⓒ rfieldss, 출처 Unsplash

관련사진보기


다만, 정부의 정책에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정책의 방향과 이유에 대해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획일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이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신뢰감을 가지고 있을까?

이랬다저랬다 흔들리는 교육정책에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서민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이런 마당에 획일적으로 이루어지는 선행학습 금지가 다수의 학부모를 설득할 수 있을까? 지금 선행학습 금지로 영어 방과후 수업을 못 받는 서민들은 '나만 피해 본다'고 생각하는데, 정부는 그런 국민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의 큰 그림을 알고 싶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다. 백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교육이다.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교육이다. 정부의 교육정책을 볼 때마다 백 년을 대비하는 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건 나뿐인가?

언제나처럼 책임과 선택은 개인의 몫으로 넘어왔다. 이 정책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이어지는 요즘이다.

올 3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첫째는 현재 주 4회 방과후 영어 수업을, 둘째는 유치원에서 주 2회 영어수업을 받는다. 이외에 별도로 영어 사교육을 하지 않는다. 두 아이 모두 영어를 좋아한다. 영어 노래를 흥얼거리고, 유튜브로 영어 만화를 본다. 가끔 국외여행을 가서 낯선 이에게 "Hello~", "Good Morning~" 하고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영어라는 외국어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이다.

나는 아이들의 이런 지적 호기심을 방관하지 않고 싶다. 지금까지는 별도의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사교육 시장에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정부도 이런 걸 의도한 건 아니었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방과후영어, #폐지반대, #사교육, #선행학습, #영어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