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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논란에서는 흔히 두 가지 역사가 거론된다. 금 본위제와 튤립 버블이다. 가상화폐 낙관론자는 가상화폐가 장기적으로 금이나 달러처럼 기축 통화 역할을 할 것이라 주장한다. 비관론자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버블처럼 곧 꺼질 거품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니다. 현재 가상화폐 현상에는 튤립 버블, 금본위제와 각각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투기 수요가 과도하게 몰린다는 점에선 튤립 버블, '화폐' 형태로 쓰이고, 산출량이 정해져 있는 점에선 '금'을 닮았다.

너도나도 돈다발 들고 찾아왔던 '튤립'과 '가상화폐'

네덜란드 튤립 버블은 지난 1600년대 발생한 거품 현상이다. 영국의 남해거품사건, 프랑스의 미시시피 거품과 더불어 고전경제사에서 3대 거품으로 불린다. 튤립 버블의 역사는 식물학자인 샤를 드 레클루제가 지난 1593년 터키에서 유럽으로 가져오면서 시작된다.

네덜란드 귀족 등 상류층들이 이 튤립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변종 작물들도 재배되면서 튤립에 대한 '투기' 열풍이 시작된다. 투기 대상은 튤립의 '알뿌리'였다. 당시 귀족이나 상인은 물론 하녀 등 서민들도 튤립 투기에 뛰어들었다. 

튤립 버블이 절정에 달하던 1636년 튤립 가격은 50배 이상 폭등한다. 당시 가장 비쌌던 튤립 '영원한 황제'의 알뿌리 하나의 가격은 2500길더였다. 이 돈으로는 통통한 돼지 8마리와 튼실한 황소 4마리, 살찐 양 12마리와 밀 24톤, 와인 2통, 맥주 600리터를 비롯해 치즈, 버터, 은 술잔, 옷감, 침대 세트까지 살 수 있었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 원에 불과했던 1비트코인이 지금은 1000만 원이 넘게 오른  현상과 비슷하다. 너도나도 투자에 뛰어들었다는 점도 닮았다.

튤립 버블은 1637년 2월부터 꺼지기 시작한다. 튤립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가격은 급락했다. 여기에 네덜란드 법원이 튤립에 대한 재산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리면서, 가격 급락세에 기름을 부었다. 튤립 투자자들은 본전의 10%도 건지지 못했다.

튤립과 달리 미국과 스위스 등은 상품 거래 허용하며 가치 인정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을 금과 비교하고 싶어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튤립에 비교한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을 금과 비교하고 싶어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튤립에 비교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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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와 차이점이 있다면, 재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튤립과 달리, 가상화폐는 그렇지 않다. 스위스가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한 상태고, 미국의 경우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비트코인이 거래되고 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는 가상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흐름상으로 보면, 정부의 시장 개입이 비교적 강한 나라에서 가상화폐 거래 금지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면, 튤립처럼 구매자 품귀 현상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튤립 버블을 이야기하는 비관론자들의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지점이다.

가상화폐 논란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역사는 금 본위제다. 낙관론자들은 가상화폐의 미래를 말할 때 '금'이나 '달러'를 대체할 교환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금 본위제란 '금'을 화폐로 쓰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가치에 더해, 기존 통화보다 안정성은 더 뛰어나

금 본위제는 과거 리디아 제국과 동로마 제국 역사부터 시작해 근대 국가까지 이 제도를 채택해왔다. 오랜 기간 견고하게 유지돼왔던 금 본위제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각 나라가 통화를 찍어내면서 타격을 입었고, 지난 1929년 발생한 대공황으로 인해 사실상 와해됐다.

금이 중세 시대부터 오랜 기간 '화폐'로 쓰였던 것은 가치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작물이나 동식물들은 시간이 지나면 썩거나, 감가상각이 되지만, 금은 변하지 않는다. 농작물처럼 계절적 수급 변동에 따라 가격 낙폭이 큰 것도 아니었다.

가상화폐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와 모바일에 저장된 데이터 형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 '세상의 컴퓨터와 모바일이 다 사라진다'는 불가능한 가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

금이 한정적인 자원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상화폐도 '한정적'이다. 가장 유명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2100만 개만 채굴이 가능하고, 다른 종류의 가상화폐도 채굴량에 한계를 정하고 있다. 최소한 과잉 생산으로 인한 인플레는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 가상화폐는 금보다 보완성이 뛰어나다. 20~30명의 도적떼들이 금 수송 마차를 습격해 약탈해가거나, 해커들이 해킹을 해서 돈을 빼내는 일이 가상화폐 세계에선 이뤄지기 어렵다. 가상화폐는 분산데이터저장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결론적으로 이 기술은 해킹에 매우 강하다. 기존 은행 계좌를 해킹하려면 컴퓨터 한 대만 공략하면 된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가상화폐는 화폐 1개를 여러 대의 컴퓨터에 쪼개 저장하는 형태다.

가상화폐를 빼내기 위해 해킹해야 하는 컴퓨터는 수십~수백 대까지 늘어난다. 금고를 열기 위해 지금까진 은행 계좌 1개 자물쇠만 따면 됐는데, 가상화폐의 경우 여러 개 걸려있는 문을 따야하는 셈이다.

황금과 달리 가상화폐는 정부 통제 밖 "정부가 그냥 두고만 볼까?"

하지만 가상화폐는 금 본위제와 달리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금 본위제 아래서 정부는 안정적인 통화 관리를 위해 수급 조절을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무역수지와 재정수지의 균형을 맞추기도 했다.

가상화폐는 수급에 있어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부가 무역수지와 재정수지 등을 책정할 때, 가상화폐를 감안하지도 않는다. 가상화폐는 '국가적 경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특정 국가의 정부가 통제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금 거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가상화폐 거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대부분 가상화폐 거래는 익명성이 보장된다. 누가 돈을 보내고, 누가 돈을 받았는지 아예 알 수 없게 막아놓은 가상화폐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검은 돈'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항상 열려있다. 이미 일부 가상화폐는 마약 거래 세력들의 주요 통화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가상화폐가 검은돈 스캔들에 휘말리면 각국 정부의 추가적인 규제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서 낙관론자에게 추가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정부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화폐에 대해 얼마나 힘을 실어줄 수 있나?


태그:#가상화폐, #비트코인, #튤립, #금본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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