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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날씨가 좋아서, 주변 사람들이 여행을 간다고 해서, 좋은 휴양지를 미디어로 접했을 때,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쌓였을 때 등등 저마다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여행이라는 한 낱말에는 설렘이 담겨 있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 선택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나마 여행의 향기를 스케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손꼽히는 것이 여행에 관한 책을 보는 것은 아닐까.

다카하라 이즈미 지음, 김정미 옮김 <가끔은 길을 헤매도 좋은 유럽 작은 마을 스케치 여행>
 다카하라 이즈미 지음, 김정미 옮김 <가끔은 길을 헤매도 좋은 유럽 작은 마을 스케치 여행>
ⓒ 카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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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길을 헤매도 좋은 유럽 작은 마을 스케치 여행>이란 책은 다카하라 이즈미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유럽의 마을을 둘러보며 사진, 그림 그리고 짧은 글로 구성한 것이다.
그로즈냔은 '예술가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이 2백 명도 안 되는데 아틀리에 숍은 40여 개에 이른다. 황량하고 오래된 마을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납작납작한 집들 사이로 잔잔하게 바이올린과 첼로 선율이 흐르는 골목, 자리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어느새 고양이 한 마리가 가만히 옆에 와 앉았다. (128쪽)

통통하게 살이 오른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정오의 따뜻한 햇살을 주택의 계단에서 맞으며 졸음 겨운 하품을 하고 있는 곳이 그로즈냔이지 않을까. 그림으로만 본다면 오래된 마을에 집들은 대부분 석조 건물인 듯하다.

태양의 열이 올라 적당이 따뜻한 돌 위에 푸른 잎들이 하늘하늘 시원한 바람에 흔들거리고 그 사이로 옆집에서 들리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연주는 설핏 졸음이 오기도 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와도 관계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 하나만을 의지한 채 맞이하는 자유는 어떤 빛깔일까. 저자의 그림들은 마치 판타지 속에 빠진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침식사는 갓 낳은 달걀로 만든 오믈렛에 따스한 빵과 수제 잼을 곁들인다. 파란 하늘 아래 아침 풀 향기 가득한 안뜰에서 그날그날 마음이 가는 탁자에 앉아 맛있게 먹었다. 소냐 아주머니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었다. 강아지들은 내키는 대로 누군가의 다리에 기대어 눕는다. 나도 도구를 챙겨 와 그림을 그렸다. 지친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공간이다. (138쪽)

마음은 어디로 흘러갈까. 뜨거운 커피향이 실내를 데우고, 창문을 활짝 열었을 때 아무렇게나 아무자리나 편안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일상의 생활이라면 인연이 없었을 그들과 빵에 관해, 커피에 관해 수다도 떨어보는 것은 어떨까. 상상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것이다. 조금은 거칠게 느껴지는 빵을 질겅질겅 씹어도 보고, 수제 잼을 만드는 방법도 눈치껏 살펴보는 맛도 있을 듯하다.

붙임성 좋은 강아지가 조용히 다가와 꼬리를 흔든다면, 손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도 좋을 듯하다. 패널티를 줄 세계란 없다. 노력한 삶이었기에, 멀리멀리 돌아온 삶이었기에 지금은 그대로 지친 종아리를 주물러 주어도 좋을 듯하다.  

저자는 프랑스, 스페인 북부& 포르투칼, 이탈리아&크로아티아, 스페인 남부, 영국의 작은 마을을 아들과 함께 돌아다녔다고 했다. "정해진 투어를 쫓아가는 것이 아닌, 항공과 호텔은 물론 지역 버스나 기차, 식사까지 모두 직접 예약하고 찾아가는 온전한 자유 여행입니다."(4쪽)라고 일상을 벗어난 삶에 대해 행복을 말했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을 평생에 단 한번 뿐인 만남처럼 소중히 하라는 뜻이다. 여행을 하며 그리는 스케치도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도 모두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이니까. (266쪽)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떠남'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일상을 등지고 어디론가 가야만 가능한 것일까. 잠깐의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봤다. 

어쩌면 일시적인 처방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국적인 것들이 주는 신선함에 매료되어, 다시 일상의 삶에 활기 에너지를 부여하는 방식 말이다. 떠남과 일상의 삶을 구별 지을 필요가 있을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내게는 있었는가.

반대로 생각하면 유럽의 주민들은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때, 그리고 그 일상에서 더 행복함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나는 단지 내 삶에서 '떠남'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덮고 내 일상을 여행하듯 사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저자는 펍에서 식사를 하면서 만난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델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할머니!" (266쪽). 나 역시 그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야 될 것 같다. "모델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유럽의 낯선 스케치!"

덧붙이는 글 | 다카하라 이즈미 지음, 김정미 옮김 <가끔은 길을 헤매도 좋은 유럽 작은 마을 스케치 여행>(카라북스/2017).전체 288쪽, 값, 16,500원.



가끔은 길을 헤매도 좋은 유럽 작은 마을 스케치 여행

다카하라 이즈미 지음, 김정미 옮김, 키라북스(2017)


태그:#다카하라 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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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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