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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감빵'과 인연이 깊습니다. 학창시절에는 학생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했고, 사회로 나와서는 인권활동가로서 구금시설 인권 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가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고 느낀 점을 담은 '감빵'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공식 포스터.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공식 포스터.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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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참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작가와 피디가 그동안 제작된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감빵'에 대해 더 조사하고 연구한 듯하다(감방이 맞는 표현이나, 드라마에서 쓰이는 표기 방식대로 감빵이라고 씁니다 – 편집기자 주).

감옥에서 사용하는 식기, 수저, 의복, 수용거실, 목욕탕, 작업장은 물론이고 감옥에서 쓰는 고유의 은어들과 생활방식까지 제대로 고증했다. 법무부 교정본부의 협조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빵잽이(수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은어)'들만 알 수 있는 아주 세심한 부분들까지 재연한 장면들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교도관들을 계급에 따라 교도는 담당, 교사는 부장, 교위는 주임, 교감은 계장 등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냥 취재만 해서는 알기 힘든 부분이다. 이밖에도 거실, 명찰, 목찰, 공범분류와 급수표시, 구매 물품 종류, 배식 방법, 범치기, 술을 담가 마시는 일, 소지(사동도우미)들이 반찬을 남겨두고 몰래 먹는 일, 징역을 오래 산 재소자들의 약한 규정 위반들을 교도관들이 슬쩍 묵인해주는 일, 영치금이 없는 수용자들이 나이를 불문하고 거실에서 궂은 일 하면서 살아가는 것, 공장으로 출역(교도소 밖에서 일하는 것) 나가면서 발주 업체에서 제공하는 특식 먹는 것, 손목시계에 사진 넣는 것, 노래자랑 대회, 체육대회, 라면 끓여 먹기 등 모두 감빵의 일상을 현실감 있게 잘 표현했다.

우유팩을 활용해 불 만드는 일도 인상적이다(내가 알기로는 껌은 구매할 수 없는 것으로 아는데, 종교위원이나 친한 교도관에게 하나 정도는 얻을 수도 있으니 껌 종이를 불을 붙이는 필터로 사용한 것은 넘어가기로 한다. 원래는 진공 우유 팩을 펼쳐서 안쪽 얇은 비닐을 벗기면 나오는 은박지를 이용한다).

극 중 김민철(최무성)이 고 박사(정민성)에게 "진정서나 고소장을 내지 말고 보고전을 쓰이소"라고 하는 대사는 정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교도소에서는 15척 담장 안에서 벌어진 일이 그 담장을 넘어가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외부로 일이 알려지지 않으면 어떻게든 내부에서 무마하려하기 때문에 진정이나 고소를 하는 것보다는 보고전을 써서 소측과 협상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이 사실이다. 외부로 알리게 되면 '코걸이'라고 부르면서 교도관들뿐만 아니라 다른 수용자들도 멀리하려고 한다. 

'현실 감빵'에서 교통카드 대신 쓰이는 화폐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한 장면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한 장면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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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실제 구금시설과 다른 장면들이 종종 포착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티머니 카드다. 구금시설에서는 교통카드인 티머니 카드를 구입해 화폐처럼 사용할 수 없다. 고로 드라마에서처럼 티머니 카드로 담배를 사거나 뇌물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화카드가 있기는 하지만 미결수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 통화가 어렵고 전화카드를 매일 한 장씩 구매할 수도 없다.

보통은 우표가 화폐처럼 활용되고는 하는데, 한 장에 330원이니 계산이 그리 어렵지도 않다. 마른오징어라든지, 영양제(아로나민X드 등)를 구매 가격으로 환산해 각종 소소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수용거실의 면적이 지나치게 넓다는 점도 현실과 다르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공익소송으로 진행한 구금시설 과밀수용 헌법소원에서 승소해 법무부 교정본부 내에 과밀수용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구성되긴 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개선되지는 못했다.

- 원칙적으로는 '마약사범(향정신성의약품에관한법률위반) 수용자와 일반 수용자들을 같은 거실에 배정하지 않는다는 점
- 사동을 지키는 보안과 소속 교도관들과 검찰이나 법원 출정을 담당하는 출정과 교도관들은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저녁에 사동 근무를 서고 아침에 법원 출정 업무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
- 소지(사동도우미)도 폐방시간 이후에는 돌아다닐 수가 없다는 점
- 메이저리그급 특급 스타를 혼거실에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물론 본인이 강력하게 혼거수용을 원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 그 특급 스타가 있는 거실에 다른 관심 수용자들을 수용하지도 않는다는 점
- 아무리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구치소에서 어깨를 찔러 다치게 한 가해자를 피해자가 있는 거실에 수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점
- 기독교, 불교, 천주교 종교집회를 3일 연속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수용자는 총반장 정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
- 아무리 의도가 있다고 해도 검방까지 직접 진두지휘하는 사명감 넘치는 보안과장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
- 수용자 편을 들면서 보안과장에 '개길 수' 있는 교사(교도관)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점
- 교사 정도 계급의 교도관과 수용자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의무과장 따위도 없다는 점

위와 같은 차이점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는 대세에 전혀 지장 없는 작은 부분들이다. 1층과 2층이 터져 있는 구조의 사동이 있는지는 내가 직접 살아보거나 신축 구금시설(남부, 동부, 여주, 통영, 밀양 등과 민영교도소인 소망교도소 등)을 실태 조사해보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흔하지 않은 구조인 건 맞다.

또한 아직 극 중 김제혁(박해수)처럼 슈퍼스타급 현역 야구선수가 구금시설에 간 적이 없었겠지만, 정부의 허락을 얻어 온실을 개조해 야구연습장을 만들어 주는 일은 아마 '현실 감빵'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7주간의 단체생활이 내게 남긴 것

나의 과거 감빵생활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999년 3월 학생운동으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나왔지만, 같은 해 12월 민중대회 참가로 또 다시 구속됐다.

나는 공안관련사범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독거실 배정이 원칙이었는데, 갑자기 재벌 총수들과 전국구 조직폭력배들이 줄줄이 구속돼 들어오는 통에 드라마에서처럼 서울구치소에 일시적으로 독거실이 부족했다. 입소하는 날 당직계장이 간곡하게 '당분간만 혼거실 사용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큰맘 먹고 들어주는 척을 했는데, 7주나 혼거실에서 살았다. 내 생애 마지막 단체생활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형제·자매들과도 24시간을 한 공간 안에서 보내는 일이 없을 텐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한 방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어깨와 어깨가 맞닿은 상태에서 잠을 자면 코골이, 이갈이를 비롯해 수면무호흡증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신진대사를 실시간으로 적나라하게 공유하고 하는 일은 감빵생활에서 언제나 상수다. 그래서 감빵에서는 독거실 수용이 특혜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서 독거수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구금시설에는 독거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내가 살던 혼거실은 교통사고특례법 위반자들만 수용되는 방이었다. 주로 사망사고를 냈거나 상습 음주운전으로 들어온 분들이다. 이분들은 피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보석으로 금세 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4주 만에 내가 방장을 하게 됐다.

그때도 신입이 들어오면 밤에 자기 전에 "막내 불 끄세요"라고 했는데, 스위치가 없다고 말을 안 해주면 한 5분은 헤매고 그랬다. 또 새벽 4시에 달걀이 배달 오면 그걸 막내가 일어나서 받아야 했다.'못 받으면 우리 방만 달걀을 못 먹는다'고 엄포를 놓으면 새벽에 그걸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진짜로 있었다.

 의정부교도소 재소자 시절
 의정부교도소 재소자 시절
ⓒ 김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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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노래자랑 장면을 보고 옛 생각이 떠올라 물건들을 뒤졌다. 2001년 의정부 교도소 재소자 노래자랑에서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러 20여 명 중 당당히 1등을 차지했던 때의 사진을 찾았다.

당시 부상은 영치금 5만 원이었다. 그 5만 원을 어디에 쓰겠냐는 질문에 "영치금 없는 어르신 수용자 5분께 1만 원씩 나누어 주겠다"고 답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었다. 의정부교도소에서 친했던 교무과 직원이 교무과장의 허락을 얻어 내게 준 추억의 사진들이다.

나는 감빵에 갈 때마다 다이어트에 성공을 하고는 했다. 당시에도 석 달 만에 25kg을 감량하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다만, 출소 후 석 달 만에 마치 형상기억합금처럼 다시 30kg이 늘어났지만...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요즘도 지나가는 말처럼 한번씩 "살 빼러 징역 한 번 더 다녀오라"고 하고 내 눈치를 보고는 한다.

(*다음 편에 계속)

김덕진 시민기자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인권활동 16년 차.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집시법 위반 등으로 두 차례 구속돼 실형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감빵생활'을 하던 중, 열악한 구금시설 인권상황에 분노하며 인권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출소 직후 유일하게 감옥인권활동을 하던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인권활동을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 전문위원으로 전국 30여 개 구금시설에 대한 방문조사와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등 구금시설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 '감빵' 수용자들의 인권 보장이 사회 전체 인권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수정·보완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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