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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춤을 추면서 살아갑니다. 걸레를 빨 적에도, 잘 빨아서 물기를 꼬옥 짜고는 마루나 방바닥을 훔칠 적에도, 우는 아기를 달래려고 안을 적에도, 아기한테 젖을 물리거나 물을 떠먹일 적에도, 잠든 아기를 등에 업고 저자마실을 할 적에도, 무거운 등짐을 짊어지고 길을 걸을 적에도, 밥을 지을 적에도, 설거지를 할 적에도, 밥상을 차릴 적에도, 책을 읽을 적에도, 그림을 그릴 적에도, 잠을 자다가 뒤척일 적에도, 참말 모두 춤을 춘다고 할 만합니다.

춤을 추라고 시키면 선뜻 못 나서는 사람이 많아요. 따로 '춤을 추라'고 말하니 못 춥니다. 그렇지만 못 걷는 사람이 없고, 아기를 못 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기 안기가 서툰 사람은 있겠지요. 달리지 못하는 어린이는 없으며, 뜀박질이 싫은 어린이도 없지 싶습니다.

더 빨리 달려야 춤이 되지 않습니다. 더 높이 뛰어야 춤이 되지 않아요. 수수한 몸짓은 모두 춤이 되고, 투박한 몸짓까지 언제나 춤이 됩니다.

<밥·춤>하고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밥·춤>하고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고래뱃속/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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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조던 매튜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책 한 권이 나온 적 있습니다. 이 사진책은 언제 어디에서나 하늘로 펄쩍 뛰어오르는 몸짓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늘 어디에서나 춤을 추듯이 살아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다뤄요.

어쩌면 우리 스스로 잊던 모습을 잘 잡아챈 사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이 사진책에 나오는 이들이 전문 배우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멋진 사진책이기는 하되 한 가지가 살짝 아쉬웠어요. 굳이 전문 배우를 쓰지 말고 수수한 사람을 지켜보다가 찍을 수 있으니까요. 수수한 이웃한테 한번 춤짓을 보여주면 어떻겠느냐 여쭈면서 수수한 이웃이 수수하게 살아가는 자리에서 새롭게 춤짓을 보여줄 만합니다.

<밥·춤>하고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밥·춤>하고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고래뱃속/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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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그림책 <밥·춤>(정인하 그림)이 나옵니다. 이 그림책은 마치 사진책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사진책은 '흔히 볼 수 있는 자리'에서 '전문 배우'를 써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림책 <밥·춤>은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사람이 춤을 추는 몸짓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살림살이는 늘 춤이라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흔한 일을 하는 몸짓이어도 춤이 되고, 늘 하는 일이지만 춤을 추듯이 받아들여서 누린다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그림책 <밥·춤>은 여러모로 뜻있고 재미있습니다. 이 땅에서 오래도록 일하며 살림을 지은 가시내만 모아서 보여주면서 '일이란 무엇인가?' 하고 '일하는 가시내란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밥·춤>하고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밥·춤>하고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고래뱃속/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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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한 가지를 조용히 묻고 싶어요. 집에서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내주는 어버이로 '가시내 아닌 머스마'를 그려 볼 수 있어요. 머리에 밥판을 잔뜩 이고 걸어가는 일꾼을 '아줌마인 가시내' 말고 '아저씨인 머스마'로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남새를 파는 '할머니인 가시내' 말고 '할아버지인 머스마'를 그려 보아도 됩니다.

아기를 안고 달래는 머스마를 그리고, '때밀이 아저씨'를 그릴 만합니다. 김치를 담그는 머스마를 그리고, 재봉틀을 밟는 머스마를 그려 볼 만하지요. 삶을 꿈꾸는 몸짓인 춤이라면, 울타리를 더 신나게 허물면서 함께 춤을 추면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바지 입은 가시내'를 그려도 나쁘지 않지만 '치마 두른 머스마'를 그릴 수 있어요. '함께 꽃치마를 두른 가시내랑 머스마'가 서로 손을 잡고 휴전선 가시울타리를 폴짝 뛰어넘는 그림을 그려 본다면 얼마나 신날까 하고 꿈꾸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밥·춤>(정인하 글·그림 / 고래뱃속 / 2017.5.22.)



밥.춤

정인하 지음, 고래뱃속(아지북스)(2017)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시공아트(2013)


태그:#밥·춤, #정인하, #그림책,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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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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