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11일 공개한 특검이 김희범 전 문체부 차관 주거지에서 압수한 문건. '김영한 수석 비망록에 언급된 김기춘 비서실장의 문화예술 분야 개입 관련'으로 명시된 자료에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이동관'으로 오기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11일 공개한 특검이 김희범 전 문체부 차관 주거지에서 압수한 문건. '김영한 수석 비망록에 언급된 김기춘 비서실장의 문화예술 분야 개입 관련'으로 명시된 자료에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이동관'으로 오기했다.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박근혜 정부가 부산영화제에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영화제 사태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가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했고, 서 시장이 이에 대해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문건이 나왔다.

또 당시 청와대가 문체부에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작품 선정 과정, 선정 사유, 상영예매 현황 등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가 부산국제영화제 이후에도 <다이빙벨> 상영을 막기 위해 '각종 상영관에서의 상영중단 및 축소대책 마련 강구 보고 및 언론 대상 상영 부당성 보도 관련 대책'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아래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 11일 오후 이 같은 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이런 내용은 그동안 의혹으로 제기돼 왔던 사안들을 문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사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는 부산영화제 출품작인 <다이빙벨>과 관련해 무려 26건의 보고를 받는 등 관련 사항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했다. 부산영화제에 대한 예산 대폭 삭감과 함께 여타의 다른 영화제 상영 작품에 대한 모니터링도 지시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는 전주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제천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상영작 전체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해 보고했다.

또 당시 청와대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다이빙벨>, <불안한 외출> 상영 대응 미흡 등의 이유로 담당 국장과 과장, 사무관 등 문체부 직원 3명에 대해 중징계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유능한 직원으로 꼽히던 문체부 김혜선 과장은 징계를 받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지병이 악화돼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특검 압수수색으로 자료 확보, 서병수 부산시장 연루 정황도 포착

 문체부가 작성한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다이빙벨> 상영 추진 경과

문체부가 작성한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다이빙벨> 상영 추진 경과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가 의혹이 많았던 사안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특검이 김희범 전 문체부 차관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해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서였다. 이로써 청와대와 문체부 등 박근혜 정부가 서병수 시장에게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인사 조치를 직접 요구하고 관여했을 것이란 심증이 물증을 통해 확인됐다.

조사위가 공개한 문건에는, 김 전 차관이 작성한 '김영한 수석 비망록에 언급된 김기춘 실장의 문화예술 분야개입 관련' 등 관련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문건에는 "청와대 김소영 문화비서관이 (다이빙벨) 상영 여부, 이용관 영화제 집행위원장 인사조치 등에 대해 서 시장으로부터 책임 있는 답변을 받아낼 것을 주문"했다며 "본인은 부산시 출장 계기로 서 시장을 개별 면담하고 서 시장이 정부의 뜻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여 이를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적시돼 있다. 또 "송광용 교문수석은 김종덕 장관으로 하여금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전화할 것을 주문했고, 김 장관이 전화로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고 적혀 있다.

세부적인 내용으로는, 서병수 시장 등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상영 중단과 관련해 청와대 등과 다섯 차례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 시장은 청와대 김기춘 실장과의 직접 통화 1회, 송광용 청와대 교문수석의 지시를 받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의 직접 통화 1회, 김희범 전 문체부 차관과의 독대 1회 등 3번에 걸쳐 직접 논의를 했음이 파악됐다.

그 외 김기춘 전 비서관의 지시를 받은 김 전 차관은 서 시장과의 독대 외에 당시 부산시 경제부시장과도 통화해 <다이빙벨> 상영 중단을 요청했다. 문체부 콘텐츠문화산업실장 역시 김소영 문화비서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부산시 정무부시장과의 직접통화 1회를 통해 청와대의 관심사항이라는 것을 전하고, 이 내용을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보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2017년 10월 24일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서 시장은 의원들의 부산영화제 관련 추궁에 '외압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부인해 왔다.

지난 2017년 10월 24일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서 시장은 의원들의 부산영화제 관련 추궁에 '외압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부인해 왔다. ⓒ 정민규


이런 과정을 거쳐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었던 서병수 부산시장은 <다이빙벨> 상영 철회를 영화제 측에 요청했으나, 부산영화제는 이를 거부했다. 2014년 영화제가 종료된 후 정경진 부산시 행정부시장과 김광회 문화관광국장 등이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만나 사퇴 문제를 거론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서 시장은 지난 2017년 10월 24일 부산시 국정감사에서 관련 사항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압박'과 '<다이빙벨> 상영 문제' 등에 대해 정치적 외압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서 시장은 앞서 8월에도 '시와 영화제 간 갈등은 오해', 블랙리스트 등과는 관련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부인과 모르쇠로 일관했고, 부산영화제 사태의 주범으로 사과하라는 영화계의 요구에도 "영화인들이 망친 영화제인데 왜 제게 묻냐"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가 확인한 김 전 문체부 차관이 작성한 문건 등 자료들은 서 시장의 그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어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현재 추가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더 밝혀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용관 전 위원장 "영화제 기간 중 하루 두 번씩 찾아와 압박"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 진술을 위해 출석한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 진술을 위해 출석한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이용관 전 위원장 역시 블랙리스트 조사위에 출석해 당신 상황을 진술하면서 영화제 개최 이전에 부산시 관계자들을 직접 만난 내용도 공개됐다. 부산시 측 인사들은 '<다이빙벨> 영화상 영은 절대 안 된다, 큰일 난다'며 중단을 요구했고, 영화제 진행 중에는 부시장과 전임 국장들이 하루에 2번씩 찾아와서 "사퇴해라" 아니면 "프로그래머와 사무국장을 자를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런 압박을 가한 당사자 중 정경진 전 부시장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영입돼 현재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블랙리스트 조사위 발표를 통해 부산영화제를 압박한 구체적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부시장은 당시 "사퇴를 종용한 것이 아니고 쇄신을 주문한 것"이라며 "지도점검을 통해 드러난 운영상의 문제점에 대해 개선방안을 마련해 보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전 부시장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일자 "부산시의 입장을 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 하더라도 저의 불찰이었다"며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사과를 전하고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의 고초를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2015년 1월부터는 영화제 담당 부서를 경제부시장이 총괄하게 되면서 (행정부시장이었던 나는) 책임자가 아니었다"라고 말하기도 해 책임 회피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부산시와 감사원 특별감사국이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에 대해 전방위적이고 이례적으로 벌인 감사는 김 전 차관의 문건을 볼 때 청와대 지시사항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인사조치'의 연장선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블랙리스트 실행에 당시 영진위도 '앞장'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또 당시 영화진흥위원회가 블랙리스트를 실행하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또 영진위의 각종 지원사업에 대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9인 위원회'가 청와대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라인으로 구성됐고, 이를 통해 블랙리스트를 가동한 것으로 파악됐다고도 덧붙였다.

진상조사위는 9인 위원회 소속 인물들이 <자가당착>, <다이빙벨> 등을 상영할 예정이던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제 지원을 취소하는 등 블랙리스트 실행에 적극 가담했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영진위와 관련해 직권조사를 진행 중이며, 각종 영화지원 사업에 대한 실행 체계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블랙리스트 이용관 서병수 부산영화제 영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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