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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여기 이선미 개인전 포스터
▲ 나... 지금 여기 이선미 개인전 포스터
ⓒ 갤러리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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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몹시 추우니 덩달아 마음도 몸도 춥다. 해야 할 일이 그대로 쌓여 있으니 일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휴식 속에서도 계속 일하고 있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자신을 관찰할 시간이 있어도 멍하기만 하다.

새해가 됐는데도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이런 시기에는 미술관에 가는 것이 좋다. 작품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조용히 감상하고 오는 것.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작품들.

갤러리쿱에서 하고 있는 '이선미 초대전'에서 가서 에너지를 듬뿍 채워왔다. 전시는 지난 5일부터 시작했으며, 오는 17일까지 전시한다. 토, 일요일에는 작가가 상주하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혼자 가도 좋고 둘이 가도 좋다. 나는 하루 휴가 낸 사랑하는 후배와 일정을 정한 후에 메일로 정보를 주고받았는데, 기다리는 시간은 소풍 가는 듯 설렘을 줬다.

나는 눈이 몹시 나빠 중3 때부터 안경을 썼다. 이제 거의 36년이나 됐다. 지금도 시력은 꾸준히 나빠지고 있으며, 안경 없이는 앞이 보이지 않아, 이제 내 눈이나 다름없다. 잠잘 때 누가 밟지 않도록 머리맡에 소중하게 둔 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안경을 쓰는 생활. 그래서 안경알은 그대로 내 인생을 보는 눈이기도 하다.

이선미 작가 손 안경알 작업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예술가의 손.
▲ 이선미 작가 손 안경알 작업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예술가의 손.
ⓒ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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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알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 이선미. 푸른빛으로 물든 손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일하는 손. 이 작가는 왜 안경알로 작품을 만들게 되었을까? 무척 궁금했다. 작품을 만드느라 애쓴 흔적들이 고스란히 녹아든 그 사진은 이번 전지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함께 전시회에 간 후배와 나는 이제 50대 중년 아줌마 치과위생사다. 물론 그녀는 나보다 더 젊지만, 우리 나이에 한가함이란 없다. 일은 쏟아져 들어오고, 집안일은 온전히 우리들 몫이라 시간이 남아돌아 무엇을 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야만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미술관으로 가는 거다.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작품을 구매하기 어렵다. 하지만, 작품을 구매하지 못해도 미술관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은 다른 시름을 잊을 수 있다. 작가 이야기를 듣고, 작품 의미도 알아보며,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교감으로 위로와 따뜻함을 느낀다면,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과, 작품을 설치한 작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그 힘들이 모이면 그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생기고, 누군가는 구매해서 생존에 도움 주리라는 믿음도 있다).

교대역 13번 출구와 남부터미널역 1번 출구 사이, 서울교대 사거리 근처에 있는 갤러리쿱은 2층에 있다. 아담한 그 공간으로 들어가면 배현진 큐레이터가 환한 미소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갤러리쿱(한국화가협동조합) 소속작가는 15명이며, 2월부터 소속 작가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에요. 모두 중견 회화작가들이며 최고 연장자는 77세고, 가장 어린 분은 40대 후반이죠. 지금 진행하는 이선미 작가는 독일에서 유명해요. 이 전시는 특별 기획전이며, 우리 국민들이 미술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간을 개방하고 있어요. 전시를 시작한 지는 3년 되었어요. 인스타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전시정보나 특별이벤트를 알리고 있으며, 홈페이지에서 전시 내용을 담은 <미술사랑> 잡지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지요."

이선미 작가는 안경알로 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사람의 눈이 되어 세상을 봐주는, 하지만 다른 이의 눈이 될 수는 없는 그런 것. 그것은 바로 '안경'이다. 나는 사람들이 사용했던 안경알로 작업을 한다. 안경이란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 온전히 내 것이다. 나와 함께하며 다른 이와 공유할 수 없고, 나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물건이 아닌 물건이다. 안경알 표면에 난 흠집은 개인의 습관과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나에게 있어서 안경이 주는 의미는 바로 '그 사람' 이다.

그것으로 나는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람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듯, 다 다른 굴절을 가지고 있는 안경알을 모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 때로는 얽히고, 때로는 기대기도 하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며, 우리들이 만들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만든다.

작업이 보여주는 형태나, 각기 다른 굴절률을 이용하여 나타난 그림자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성을 상징한다. 작업을 하면서 나는 손수 안경알을 깎고, 엮고, 동을 다듬는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개인과 개인의 인생을 엮어,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려왔던 마음속의 바람을 그려본다. 조형물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설치될 공간 또한 중요한 작품의 일부이다. 나의 작업은 안경알과 빛을 이용해 영상, 즉 가상공간을 제공한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공정이 선사하는 가상공간이라는 점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성'을 잘 나타내어주고 있다.

'햇빛에 바라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만드는 모든 작품은, 각 개성이 모여서 신화가 되길 바라는 당신에게 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 이선미 작가노트

스케치 대신 수학공식 계산한 작품

나...지금...여기_재료: 동, 안경알_크기 77*480cm_2018년 갤러리쿱_이선미 개인전
▲ 나...지금...여기_재료: 동, 안경알_크기 77*480cm_2018년 갤러리쿱_이선미 개인전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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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상하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처음에는 흐릿했던 내 모습을 점점 선명하게 찾아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완성기간은 5개월, 안경알은 수천 개가 들어갔다. 각 안경알 연결고리는 시판 제품이 없어 모두 직접  만들었고 볼트와 너트만 구매했다고 한다.

내 머무름 자리에__재료: 동, 안경알, 전기재료_크기 60*76*92cm _2013년   갤러리쿱_이선미 개인전
▲ 내 머무름 자리에__재료: 동, 안경알, 전기재료_크기 60*76*92cm _2013년 갤러리쿱_이선미 개인전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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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전구를 켜면 지구본처럼 올록볼록하게 오대양 육대주가 모두 보인다고 한다. 이번에는 밖에서 빛을 쏘는 방식으로 설치했는데, 지구본 형태의 작품이 빛을 통해 보이는 형상은 마치 우주 같다고들 한다. 바닷속 풍경 보는 것도 같다.

달항아리 달항아리에 대해 설명중인 배현진 큐레이터_빛이 안경알을 통과해서 빈 벽에 이야기를 만든다.
▲ 달항아리 달항아리에 대해 설명중인 배현진 큐레이터_빛이 안경알을 통과해서 빈 벽에 이야기를 만든다.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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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의 달항아리. 렌즈를 코팅한 것을 안쪽 면으로 설치했다. 외부는 모두 무채색으로 보인다. 이선미 작가 스케치북에는 그림이 없고 모두 수학공식 밖에 없단다. 설계할 때 일일이 계산을 꼼꼼하게 한 다음에 작업한단다. 이 작품은 크기가 작아서 약 2~3개월 정도 걸렸다고. 거실에 설치해서 모두 모여 옹기종기 둘러앉아 좋아하는 책들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갤러리쿱에서 나오니,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고 눈이 내려 우린 근처 찻집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며 약 세 시간 동안 열띤 대화를 나눴다. 반백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기 위한 시간, 우리를 찾느라 애타는 많은 전화들을 받으면서도 의연하게 그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했다.

온종일 다른 일 없이 작품과 눈 마주치며 놀고, 사랑하는 후배와 차 마시며 수다 떨었더니, 발바닥부터 머리카락까지 즐거움이 가득 들어차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몇 년동안 휴가도 없었는데 덕분에 제대로 놀고 왔다. 아직 입시가 끝나지 않은 수험생이 있어 마음속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진 줄 같았는데, 살짝 여유도 생겼다.

리처드 세넷은 <장인>이라는 책에서 "숙달된 장인은 그의 손과 눈을 쓸 때 리듬을 탄다. 나아가 손동작은 작업에서 생기는 리듬을 통해 더 정밀해지기도 하고 교정되기도 하는데, 역으로 이렇게 리듬을 타는 동작을 통해서 작업을 끌고 간다"라고 말했다.

리처드 세넷이 말한 리듬을 탄 장인의 눈과 손으로 만든 작품 '나... 지금 여기'. 우리 시대 장인의 예술혼을 느끼러 가보길 권한다. 미술에 문외한도 자꾸 보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나서 자신 인생의 장인이 되는 길도 찾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쿱_한국화가협동조합(KPAC) : 02-6489-8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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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