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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사람들-국가폭력피해자들이 있다. 그들의 억울함을 듣고 조사하는 과거사 위원회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을 만나는 일을 해왔다. 나는 국가폭력피해자를 음식으로 기억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기자말

 편의점 바나나우유
 편의점 바나나우유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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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들어갈 때마다 음료수가 진열된 냉장고 앞에서 늘 고민하게 된다. 뭘 마실까? 그럴 때 마다 습관적으로 바나나우유를 한 번씩 잡게 된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항상 그 녀석은 어린이집 길 건너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를 사달라고 졸랐다.

하는 수 없이 바나나우유 하나를 사서 입에 물려주면 아주 천천히 빨대로 바나나우유를 입으로 올린다. 바나나우유가 전혀 줄지 않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그렇게 10분여가 걸려야 바나나우유를 비울 수 있다. 조금이라도 늦게 어린이집에 가고 싶은 둘째 아이는 바나나우유를 그렇게 천천히 마셨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2008년 봄, 광주 송정 광주공항 내에 위치한 작은 약국을 찾았다. 공항이라고는 하지만 운행하는 여객기가 많지 않아 한가한 공항이었다. 작은 체구에 나이 많은 약사가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일어섰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약을 사러 온게 아니구요. 혹시 김규남 의원 님 부인되시나요?"

그녀는 한동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 그 자세 그대로였다.
안되겠다 싶어 먼저 말을 꺼냈다.

"좀 들어가도 될까요?"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는 듯 우리를 약국 작은 골방으로 안내했다.

"의원이라는 호칭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 호칭만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려요."

그녀는 연신 물을 마시며 놀란 자신을 달랬다.

 남사 감방의 복도철창으로 내다본 풍경(「서대문형무소-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그 역사」, 사진김동현,민경원, 글리영희, 나명순, 열화당, 2008)
 남사 감방의 복도철창으로 내다본 풍경(「서대문형무소-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그 역사」, 사진김동현,민경원, 글리영희, 나명순, 열화당, 2008)
ⓒ 김동현,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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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5월 14일 중앙정보부는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김규남이 관련된 북괴의 대남간첩단 사건을 발표한다. 구속된 국회의원은 공화당 소속 전국구 의원 김규남(당시 40세, 전남 보성)이며 이 밖에 모두 60여 명의 관련자 중 16명이 이날까지 구속되었다. 국회의원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간첩피의자가 된 남편은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남편이 국회의원 시절 운전수였던 정금주씨가 함께 연행되었는데, 그 사람이 매일 밤 중정에서 사각팬티 하나만 걸치고 수사관들에게 매질을 당하고 물고문 당했던 걸 봤다는 겁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도 그곳에 가면 아무 소용이 없던 모양이에요."

김규남은 현역 국회의원으로 연행되어 영장 없이 수일간 고문 조사를 받고서, 유럽일본을 거점으로 하는 간첩단의 수괴가 되었다. 그리고 1972년 7월 어느 습한 더운 날, 그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하루아침에 국회의원 사모에서 간첩의 아내가 되었어요.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보험판매도 해보고, 그릇을 방문판매도 해봤어요. 곱게만 자라서인지 누구한테 뭔가를 부탁하는게 쉽지 않았어요. 거기다 간첩 낙인이 찍혔으니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통에 먹고 살기 참 힘들었어요. 그래도 약대를 나왔던 게 도움이 돼서 나중에는 이렇게 약국에서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 남편은 간첩이 아니라고. 실제 그의 간첩혐의는 증거가 부족했고, 고문 수사도 밝혀졌다. 특히 수사관들은 그에게 자백을 유도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했던 점을 인정했다.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그의 간첩혐의가 조작되었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가족은 곧바로 재심을 신청, 2015년 1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최종 선고를 남겨두고 있었다.

 김규남이 재판 받는 이미지.
 김규남이 재판 받는 이미지.
ⓒ 문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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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당일 최후 변론에서 김규남의 아들 김OO씨가 피고인석에서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최후 변론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의 어렸을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하얀 아파트에서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를 만났던 기억입니다. 커다란 쇠문을 지나 들어가면 투명한 유리 건너편에 앉아 계신 아버지는 저에게 '어머님 말씀을 잘 듣고 있어라'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가족은 울기만 했고, 그런 가족을 아버지는 투명유리 건너편에서 아무 말 없이 보고만 계셨습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와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하얀 아파트 쪽으로 걸어가셨고, 우리는 면회실을 나가 구치소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주보고 걸어갈 때 창문 사이로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저 철조망을 가위로 잘랐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했었지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기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해 뒤 아버지는 아주 더운 여름날 조그만 상자에 담겨져 저희에게 돌아오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가면 볼 수 있는 하얀 아파트라 불린 미결수동 모형. 이곳에 김규남이 사형집행까지 구금되어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가면 볼 수 있는 하얀 아파트라 불린 미결수동 모형. 이곳에 김규남이 사형집행까지 구금되어 있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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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에 있던 가족은 물론이고, 법정관계자들과 교정공무원들, 그리고 판사까지도 눈시울을 훔쳐야 했다. 법정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판사는 감정을 추스르고 공판을 계속 진행했다.

"검사 최후 진술 할 것 있으면 하십시오."

검사는 슬금슬금 일어서서 준비한 의견서를 읽기 시작했다.

"본 사건은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의 민주질서를 파괴하고..."

검사의 진술이 시작되자 법정의 분위기는 일시에 분노의 탄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검사는 '판사님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합니다'라는 말로 급히 진술을 마쳤다. 그리고 이 사건은 무죄에 이르렀다.

얼마 뒤 그날 많은 사람을 울렸던 그와 강남의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마음이 좀 어떠세요?"

그는 담담히 대답했다.

"재판이 끝나고 며칠간은 잘 모르겠더라구요. 실감도 잘 안 나더라구요."
"그래도 진실이 밝혀져 후련하지 않으세요?"
"그럼요. 그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그는 아버지의 사형 뒤에 고통받았던 형제의 상처가 아물길 바랐다.

"저희가 자라면서 몇 번의 고통스런 순간이 있었어요. 수사반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버지의 이름 그대로 간첩사건이 나오는걸 지켜본 적도 있었고, 호구 조사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가장 큰 고통은 결혼을 앞둔 때였죠. 배우자 집안 사람들에게 저희 집안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많았죠. 다행히 사려가 깊은 아내는 저희 고통을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정말 고맙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사반장 이미지. 아들 김OO은 실명이 거론된 부친이 실제 간첩으로 나오는 <수사반장>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사반장 이미지. 아들 김OO은 실명이 거론된 부친이 실제 간첩으로 나오는 <수사반장>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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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커피잔을 기울이다 갑자기 잔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아버지의 무죄가 실감 안 되다가 언제 실감이 났는지 아세요? 목욕탕에서 실감이 나더라구요."
"예? 목욕탕이요?"
"예, 저희가 초등학생이 되자 어머니와 목욕탕을 가는 것이 어렵게 되었거든요. 어머니는 동네아저씨와 목욕탕을 함께 다니게 했는데 어린 마음에 그게 싫었나 봐요. 그 아저씨가 씻겨주신다고 해도 싫다고 하고 혼자 씻고 나왔어요. 그 아저씨가 목욕 끝나고 사주시는 우유도 거절하구요. 그런데 얼마 전 아들놈하고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그 녀석 몸을 씻겨주고 목욕 후에 바나나우유를 마시는데 그때서야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 바나나우유 하나 마시는 것이 저에게는 그렇게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네요."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광주공항 구내약국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한번은 보험을 팔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오다 문득 밤하늘을 올려 봤는데 별이 한가득이더라구요. 그런데 반짝반짝 빛나는 별도 서로 떨어져 있는 게 보였어요. 아, 그때 별을 보고 깨달았어요. 우리 처지가 저 별 같구나. 아름답게 빛나지만 두려움 때문에 우리 곁에 다가오지 못하는 별 같구나. 별은 서로 부딪히는 순간 소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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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지금여기에"라는 단체에서 일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