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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사학(史學)도가 두 명이다. 아버지와 내가 그 주인공이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서 팩트 체크를 하고 책을 찾아보는 집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만큼 역사 드라마는 우리 부자사학도(父子史學徒)의 즐거움이다.

최근엔 필자에게 시간이 좀 생겼다. 원하는 목표에 도전하고자 휴학을 하고, 거기에 몰두 중이다. 좋게 말하면 '준비생'이고, 뒤집어 말하면 '백수'다. 여기서 핵심은 '시간 조절권'이다. 준비생이든 백수든 나의 하루는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나는 동이 트기 전까지 공부하고, 해가 중천(中天)을 향할 때 기상한다. 특권(?)아닌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 특권은 내게 여러 가지 역사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모 케이블 채널에서 기획 편성한 '명품 드라마 몰아보기'가 그것이다. 오전 9시 30분부터 <야인시대>(SBS, 2002), <태조 왕건>(KBS, 2000) 등을 하루에 4회씩 연속으로 보여줬다. 도서관 갈 준비를 하며,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그 채널을 본다. 아버지와 함께.

그 채널에선 요즘 <영웅시대>(MBC, 2004)가 흘러나온다. '한강의 기적'을 다룬 드라마다. 문득, 오늘 <영웅시대>를 보다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드라마 <야인시대>
 드라마 <야인시대>
ⓒ 드라마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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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직접적으로 규정한 시대명은 아니지만, '야인시대'나 '영웅시대'는 그 드라마가 함축하는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어느 정도 잘 포함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지금의 대한민국, 지금의 사회를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거기에 'ㅇㅇ시대'라고 작명을 한다면 어떤 단어가 앞을 장식할까. 또, 사학자들은 어떤 시대로 이 시대를 작명할까. 궁금했다.

4회(무려 4시간이다)를 전부 몰아서 볼 수 없는 준비생(혹은 백수)이기 때문에 중간에 나오면서 아버지께 여쭤봤다.

"지금 시대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단어가 가장 적절할까요?"

아버지는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말씀을 아끼셨다. "오늘 하루 숙제를 주는구나"라고 하시면서 고민해 보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선 나는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오면서 그 질문을 나에게 해봤다. 질문 하는 동시에 여러 가지가 일들이 떠올랐다. 지난 우리 사회에 발생해온 많은 참사와 전염병들, AI와 인간, 대통령 탄핵, 사상 유례없는 취업난, 북한과의 대립 등 많은 것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을 한 쾌에 꿸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어려웠다.

물론, 야인시대와 영웅시대는 각 드라마가 초점을 맞춘 개인의 삶에 따라 작명한 것일 테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서라도, 딱 맞아 떨어지는 'ㅇㅇ'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단어는 없었다. 내가 아직 시대를 정의 내릴 수 있는 깜냥이 안돼서일까. 사회가 복잡해서, 또 빠르게 변해서일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고민을 여러 사람과 같이 하고 싶어서다. 사실 나의 깜냥으론 명쾌하게 '어떤 시대'로 현재를 정의내리기 어렵다. "굳이 시대명을 정의할 필요가 있나"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를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명(時代名)'이 있다면, 갈등과 분열, 대립과 위험으로 얼룩져 있는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대'에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담겨있고, 문제가 담겨있다. 가치와 문제를 안다면, 분열을 멈추는 데에, 우리가 화합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태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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