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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미 FTA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미 FTA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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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협상(bad deal)보다 결렬(no deal)이 낫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하겠다."

한미FTA 개정협상을 총괄하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이다. 이어 그는 "협상단에게 1차 개정협상에서 상대방이 어떤 이슈를 제기한다면 '협상장을 나오라'는 지시도 했다"고 말했다. 결기가 물씬 느껴지는 발언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협상은 결기로는 부족하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상대를 먼저 아는 것이 먼저다.

한미FTA 개정, 미국의 무역촉진권한법(TPA) 적용되나?

하지만 한국 국회와 국민은 미국의 한미FTA 개정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른다. 행정부가 제대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밝힌 한미FTA 개정절차는 지난해 7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제출한 <한미 FTA 관련 동향 및 대응방향>이 전부다. 당시 산업부는 한미FTA 개정절차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2017년 7월 26일 산업부가 국회 산업통상위원회에 보고한 '한미FTA 개정합의 시 후속절차'
 2017년 7월 26일 산업부가 국회 산업통상위원회에 보고한 '한미FTA 개정합의 시 후속절차'
ⓒ 한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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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절차가, 미국은 무역촉진권한법(TPA ; Trade Promotion Authority) 상 절차가 도식화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5일 시작된 한미FTA 개정협상은 TPA 상의 절차, 즉 협상개시 90일 전 의회 통보 절차나 공청회, 협상개시 30일 전 협상목표 공개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부는 통상조약체결계획을 국회에 보고한 12월 15일에도, 제1차 협상개시를 알린 12월 28일에도, 제1차 협상 완료 이후 1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미국 측의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대신 글머리에 적었던 '결기'만을 강조할 뿐이다.

미국은 통상조약 체결권한이 의회에 있다

'결기'만으로 성공적인 협상을 만들 수는 없다. 통상교섭본부가 미 무역대표부(USTR)와 '좋은 합의(good deal)'를 하더라도 미국 의회는 이를 뒤엎을 수 있다. 미국은 통상조약 체결권한이 행정부에 있는 한국과는 달리, 연방의회에 있기 때문이다(미국헌법 제1조 제8항).

이미 우리나라는 이같은 미국헌법에 따라 2007년 4월 협상타결 이후 가서명까지 한 한미FTA를 미국의회 요구에 따라 추가적으로 수정한 적이 있다.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미국 민주당이 <신통상정책>을 발표하면서 수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한미FTA 협상타결 이후 미국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발표한 <신통상정책>에 따라 한국 정부는 추가협의의 장으로 끌려나가야만 했다
 2007년 4월 한미FTA 협상타결 이후 미국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발표한 <신통상정책>에 따라 한국 정부는 추가협의의 장으로 끌려나가야만 했다
ⓒ 한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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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회는 TPA 시한에 쫓겨 협상 막판에 많은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회의 일방적 요구에 따라 가서명된 협정을 개정하는 것을 두고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이렇게 변명했다.

"우리 측은 미 측 신통상정책 관련 제안에 대해서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강도 높게 협상을 전개하여 ... 미 측 제안 내용의 일부 수정 및 반대급부를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 미국의 경우 미 의회의 주도로 마련된 신통상정책이 반영되지 않으면 미 의회의 한미 FTA 비준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조중표 외교통상부제1차관, 2007년 7월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미국 TPA는 '부분개정' 시에도 적용된다

한데 이번 한미FTA 개정협상은 시작부터 TPA가 적용되지 않는다. 협상완료 후 미국의회가 수정을 요구하더라도 거절할 명분조차 없다.

특히 미국 의회는 2015년 무역촉진권한(TPA) 회생 법안을 의결하면서 최초로 주권(sovereignty) 관련 조항을 추가해, TPA를 통해 무역협정이 비준되더라도 미국 국내법을 변경할 수 없으며, 국내법 변경을 위해서는 정규적인 입법절차를 거치도록 의회의 권한을 강화했다(KOTRA 통상정보, 2015년 5월 7일).

그럼에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한 행정부 누구도 미국 측 개정절차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의 침묵은 언론의 오보를 부른다. 언론에서는 "(전면개정이 아닌) 부분 개정의 경우엔 무역촉진권한법 절차를 밟지 않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에 따라 미국 대통령의 권한만으로 이른 시일 안에 개정협상을 개시할 수 있다."(한겨레, 2017년 12월 5일)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TPA는 '전면개정'과 '부분개정'을 구분하지 않는다. 협상과정에서 의회 고지, 협의 및 보고절차를 정한 TPA 제4204조는 "관세 및 비관세 장벽에 관한 협정에 대한 협상"은 모두 적용된다.

2차 협상 전 미국 측 개정절차, 명확히 밝혀야!

한미FTA 2차 협상은 앞으로 3~4주 내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회와 국민은 미국 측의 개정절차가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지, TPA 없이 시작된 개정협상의 부작용조차 모른다. 정부가 이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국회에 보고한 미국 측의 개정절차(TPA 적용)가 바뀌었다. 중대한 변화다. 통상절차법 제10조 제2항에 의하면, "협상의 진행과 관련하여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이를 즉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협상은 '결기'만으로는 안된다. 백운규 산업부장관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와 국민에게 미국 측 개정절차가 왜 변경되었으며, 향후 절차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밝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회 FTA연구모임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태그:#한미FTA, #무역촉진권한, #TPA, #김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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